튜너 빼고 값 낮춘 대형 수상기, 'TV' 개념 바꾸나
방송을 볼 때 쓰는 TV, 그리고 PC에서 주로 이용하는 모니터, 이 두 제품의 쓰임새는 다르지만 디스플레이용 기기라는 점에서는 같다. 특히 LCD 기반 장치가 대중화되면서 TV와 모니터는 외형뿐 아니라 구조까지 비슷해졌다. 모니터보다는 TV가 좀 더 큰 화면의 제품이 일반적이라는 것, 그리고 TV는 지상파 방송을 수신하는 튜너(tuner)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점이다.
다만, 전반적인 방송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런 구분도 무의미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PC로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는 사용자들이 많은데다 거실의 TV 역시 케이블TV나 IPTV, 위성TV용 셋톱박스를 연결해 방송을 수신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굳이 튜너가 없어도 방송을 보기에 지장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TV의 탈을 쓴 대형 모니터 속속 등장
이런 와중에 외형이나 화면 크기는 TV에 가깝지만, 튜너가 없어 상대적으로 같은 화면 크기의 TV에 비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대형 모니터가 출시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주로 기존의 TV 시장을 주도하던 대형 가전기업보다는 PC전문업체나 중소기업 쪽에서 주로 내놓는 추세다. 크로스오버, 아치바, 바이텍 등의 중소 모니터 업체에서 32인치 대형 모니터를 출시했으며, PC전문업체로 잘 알려진 TG삼보에서는 지난 11월, 무려 70인치 화면을 갖춘 초대형 모니터인 '빅디스플레이70(M70KA)'를 출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 제품들은 튜너가 없어 일단 '모니터'로 분류되지만 기능 면에서는 TV로 쓰기에 손색이 없다. 대부분의 제품이 풀HD급(1,920 x 1,080 해상도) 화질을 갖추고 있으며, HDMI 포트를 탑재하고 있어 블루레이 플레이어나 비디오게임기 등의 외부 기기를 연결해서 쓰는데 지장이 없다. 특히 케이블TV나 IPTV용 셋톱박스를 연결할 경우에는 TV와 전혀 다름이 없이 거실에 두고 방송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런 제품을 'TV'라고 홍보하며 파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대형온라인 쇼핑몰인 11번가에서는 '70인치 쇼킹mTV'라는 이름으로 빅디스플레이70을 출시하기도 했다.
같은 화면 크기의 TV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 매력
같은 화면 크기의 일반TV에 비해 한층 저렴한 값에 살 수 있는 것도 이들 제품의 장점이다. TG삼보 빅디스플레이70의 경우 정가가 279만 원에 책정되어 있는데, 같은 화면 크기의 일반 TV의 경우는 최소 600~700만 원을 줘야 살 수 있다. 모니터는 튜너가 없는데다 전파인증 과정 역시 TV에 비해 간단하다. 게다가 제품에 매겨지는 세금 역시 TV에 비해 적기 때문에 제품 값을 낮추는데 여러모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다만, 이런 형식의 제품이 과거에도 없던 것은 아니다. 디지털 방송의 규격이 확정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 튜너가 없는 대형 모니터를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의 업체들이 ‘분리형 디지털TV’라는 이름으로 다수 판매한 적이 있다. 특히 LG전자는 튜너 및 각종 외부입력 인터페이스를 본체 외부로 분리한 뒤 이를 종합한 ‘미디어박스’라는 이름의 무선 방식 주변기기를 따로 제공하는 제품을 '무선 LCD TV'라는 이름으로 2009년경에 판매 한 바 있다. 다만, 이후에는 이런 형식의 제품을 대기업에서 출시하지 않았다.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 다시 등장한 이러한 'TV의 탈을 쓴 모니터'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일단 호의적인 편이다. 빅디스플레이70는 사전예약판매분 400대가 매진되었으며, 앞으로 월 1,000대의 판매가 예상된다고 TG삼보는 밝혔다. TV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대형 모니터의 시장성이 어느 정도 확인된 만큼, 향후 TV시장에 유사한 제품이 등장할지, 그리고 기존 TV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도 눈독을 들일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