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로그'의 손맛을 기억한다면, 니콘 Df
필자는 학창시절 SLR로 사진을 촬영하고 직접 현상/인화하는 일에 푹 빠져있었다. SLR은 참 재미있는 도구다. 사진 한 장을 위해 셔터 속도와 조리개 수치를 계산하고, 때로는 재미있는 사진을 위해 노출 값을 반대로 설정하기도 한다. 다이얼과 조리개 링을 돌리는 동작 하나하나가 말 그대로 '창작'이다. 하지만 DSLR을 사용한 이후부터는 습관이 달라졌다. 촬영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노출을 계산하기보다는 우선 테스트 샷을 한 장 찍고, 결과물을 보면서 조리개 및 셔터속도를 조절한다. 창작이라기보다는 정답 맞추기에 가깝다. 이런 이유에서 가끔은 SLR의 손맛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데 니콘이 얼마 전 아날로그 카메라 디자인의 DSLR '니콘 Df'를 출시했다. 외형을 보면 니콘 필름카메라 F시리즈와 흡사하지만, 성능은 니콘 플래그십 DSLR인 D4 수준이다. 니콘 Df는 어떤 제품일까?
*Analog는 외국어 한글 표기법에 따라 '아날로그'로 쓰는 것이 맞지만, 복고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제목에는 예전 표기법인 '아나로그'를 썼다.
디지털로 다시 태어난 FM2
니콘 Df는 F시리즈 SLR 중 FM2와 외형이 거의 같다. 디자인은 물론, 각종 버튼의 위치나 구성도 유사하다. 여기에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필요 없어진 기능을 제거하고, 디지털카메라에 필요한 기능을 더했다. 예를 들면 리와인드 크랭크(촬영이 끝난 필름을 되감는 장치) 자리에는 ISO 감도 조절 다이얼과 노출보정 다이얼이 생겼다. 사실 SLR에도 필름에 맞는 감도를 설정하는 다이얼이 있었지만, DSLR의 감도조절과는 용도가 조금 다르다.
셔터 버튼에는 필름 어드밴스 레버(필름 재장전 손잡이)가 없어지고 그 옆에 모드 선택(M, A, S, P) 다이얼이 생겼다. 모드 선택 다이얼이 생긴 덕에, 기존 셔터 속도 다이얼에 있던 조리개 우선 측광방식(A)은 사라졌다.
단순했던 뒷면은 액정 화면과 각종 다이얼로 채워졌으며, 제품 전면에도 기능(Fn)버튼 및 브라케팅(BKT) 등 DSLR에 필요한 버튼이 생겨났다. 이 밖에도 조리개 조절용 다이얼과 각종 설정을 변경할 때 사용하는 후방 보조 다이얼을 갖췄다.
복고풍 다이얼을 적용해서 얻는 이점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큰 장점은 셔터속도, ISO 감도, 노출 보정 등을 카메라 전원을 켜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DSLR은 이를 확인하려면 카메라 전원을 켜고, 설정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Df는 카메라 전원을 켜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노출 값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그리고 손맛이 다르다. SLR을 사용하는 느낌을 DLSR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SLR을 사용해봤던 사람은 추억이, 처음 사용해보는 사람은 색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니콘 D4에 준하는 성능
니콘 Df 출시 이후 많은 사람이 레트로 디자인에 주목했지만,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성능이다. 니콘 Df는 앞서 말한 것처럼 D4수준의 성능을 가졌다. 36x23.9mm의 풀 프레임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으며, 유효화소수는 1,625만 화소다. ISO 감도는 100~12800까지 조절할 수 있으며, 최소 50~ 최대 204800까지 확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감도에서 노이즈 억제력이 뛰어나다. 최대 셔터속도는 1/4000이다. 초점 포인트 39개, 연사속도는 초당 5.5매로 D4보다 낮은 수준이다.
무게는 765g(배터리, SD카드 포함)으로, 보급형 DSLR보다 무겁다. 제품이 무거운 이유는 골격을 마그네슘 합금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견고하고, 손에 묵직하게 잡힌다. 또한, 카메라 바디 각 부분을 밀봉 처리해 D800/800E와 동일한 방진/방적 성능을 갖췄다. 라이브뷰 기능을 지원하며, 동영상 촬영 기능은 없다.
50mm 단렌즈를 통한 압도적인 아웃포커싱
이 제품은 특이하게 초점거리가 고정된 50mm 단렌즈(AF-S NIKKOR 50mm f/1.8G)를 번들렌즈로 제공한다. 왜 표준 줌렌즈가 아닌 단렌즈를 제공할까? 50mm 단렌즈는 과거 SLR시절부터 많은 사용자에게 사랑받아온 렌즈다. 초점거리가 50mm인 렌즈는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과 원근감이 유사하고 왜곡도 거의 없다. 즉 내가 본 순간을 그대로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인물은 물론 풍경이나 정물 등 대부분의 촬영에 적합하며, 특히 조리개를 많이 열 수 있어 어두운 곳에서도 밝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심도가 얕은(아웃포커싱)사진도 쉽게 만들 수 있어, 결과물에서 '뽀샤시'한 느낌이 난다.
참고로 이 번들렌즈는 Df용 특별판 렌즈다. 기존 AF-S NIKKOR 50mm f/1.8G 렌즈를 바탕으로 Df의 복고풍 디자인과 어울리도록 새로 디자인한 렌즈다. 검은색과 바탕에 은색 포인트로 조리개 링의 느낌을 냈으며, 수동 초점 렌즈의 초점 링 디자인도 적용했다.
구형 렌즈도 호환된다?
혹시 구형 렌즈를 같은 마운트(렌즈와 바디의 결합부)를 사용하는 카메라에 장착해본 적이 있는가? 이 경우 조리개 수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으며, 노출계(노출을 측정하는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니콘 Df는 CPU를 내장하지 않은 구형렌즈를 장착할 수 있다. 카메라 설정에서 렌즈 정보를 최대 9개까지 등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노출계와 조리개를 연동할 수 있다. 이때 선택할 수 있는 모드는 M(수동)과 A(조리개 우선식)이다. 왕년에 잘나갔던 니콘 F마운트 렌즈를 썩히기 아까웠던 사용자라면 이 기능이 정말 반가울 것이다. 어찌 보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음은 Df로 촬영한 사진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
니콘 Df를 사용하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보였다. 우선 CF(콤팩트 플래시)카드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D3, D4, D800 등 니콘 고급 DSLR은 저장장치로 CF카드를 지원하는데, 이는 SD카드보다 읽기/쓰기 속도가 빠르고 안정성도 높기 때문이다. 특히 용량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RAW 포맷처럼 비압축 대용량 방식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이라면 CF카드를 지원하지 않는 점이 상당히 아쉬울 것이다.
와이파이를 내장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와이파이 기능은 단순히 스마트폰 등으로 사진을 전송하는 것뿐만 아니라 촬영한 사진을 PC에 바로 전송할 수도 있기 때문에 스튜디오 촬영 등에서 활용도가 높다. 니콘 Df는 와이파이를 내장하지 않았지만, 사용자가 필요하다면 스마트 커넥터 'WU-1a'을 별도로 구매해 장착해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제품 가격은 렌즈 포함 358만 원이다. 이 제품은 사용자에게 '찍는다'는 사진 본연의 즐거움을 주는 제품이다. 특히 SLR을 사용하던 사람에게 그 시절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 줄 것이다. 필자는 이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시큼한 현상액 냄새와 붉은 암실 조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필자는 아주 만족스러운 제품이라고 느꼈지만, DSLR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가 이 제품을 구매하려 한다면 말리고 싶다. 조작법이 일반 DSLR과 조금 다르며 자동 모드(완전 자동, P, A, S 등은 반자동)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SLR 카메라의 손맛을 기억하는 하이 아마추어, 프로 사진사에게 추천한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