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저음을 즐겨라, 필립스 피델리오 M1 헤드폰 리뷰
AV(Audio / Visual) 기기는 브랜드의 이름값에 따라 판매가격이 크게 좌우된다. 비슷한 사양의 스피커나 헤드폰이라도 이른바 프리미엄 브랜드의 제품은 수십만 원인데 무명 브랜드의 제품은 불과 몇 만원에 팔린다. 이는 AV 기기라는 물건의 특성 때문이다. 수치적인 사양이 같더라도 제조사의 노하우와 튜닝에 따라 품질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필립스(Philips)의 AV 기기는 어떤 느낌일까? 필립스는 유럽 최대의 가전업체이기도 하고 역사가 무려 120년이다. 다만 필립스는 생활가전과 조명기기에 주력하는 업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이 업체에서 만드는 AV 기기는 보스나 매킨토시, JBL 같은 AV 전문업체의 제품에 비해 다소 낮은 가격에 팔린다.
하지만 따져보면 필립스도 AV 기술의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사실이다. 고음질 오디오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CD(CompactDisc), 디지털오디오 인터페이스의 표준 규격인 S/PDIF 등의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업체가 바로 필립스다. AV, 특히 오디오 면에서 가진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스는 AV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최근 모바일 관련 AV 기기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필립스의 음향기기 사업이 활기를 찾고 있다.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지도 않으면서 기본기가 좋은 모바일 스피커나 헤드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품질 제품을 표방하는 피델리오(Fidelio) 시리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모바일 기기를 위한 고음질 헤드폰인 피델리오 M1도 그 시리즈 중 하나다.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설계 엿보여
피델리오 M1 이어패드의 직경은 7.5cm 정도로 작고 제품 무게도 166g으로 가볍다. 척 봐도 실외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이용해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임을 알 수 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재질을 많이 쓰긴 했지만 헤드폰 유닛과 헤드밴드를 잇는 둥근 경첩 프레임은 알루미늄 재질이라 나름 멋스럽고 내구성 면에서도 믿음이 간다.
그리고 헤드밴드와 이어패드의 표면을 가죽으로 감쌌는데, 감촉이 제법 고급스럽고 푹신해서 귀와 머리에 닿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요즘 필립스가 피델리오 브랜드에 상당히 신경을 쏟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헤드폰 유닛은 90도 방향으로 회전하고 헤드밴드의 길이는 양쪽 각각 6cm씩 조절이 가능하다. 덕분에 가방에 넣거나 목에 걸고 다닐 때 편리하다. 이 역시 야외 이용을 고려해 설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스마트폰에 호환되는 마이크 리모컨 유닛
기본으로 포함된 케이블의 길이는 1.1m로 다소 짧은 편이지만 분리가 가능하므로 별도로 판매되는 3.5mm 커넥터가 달린 케이블을 이용하면 좀 더 먼 거리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케이블에는 마이크 기능이 포함된 리모컨이 달려있어서 통화도 가능하다.
리모컨 버튼은 1개뿐인데 짧게 누르면 음악의 재생 및 정지, 혹은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길게 누르면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구글 음성 명령 기능이, 아이폰의 경우는 시리 음성 명령 기능이 실행된다. 애플 아이폰5, 삼성 갤럭시노트2, 팬택 베가R3 등에 꽂고 시험해 봤는데 모두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넓게 퍼지는 풍부한 저음 인상적
제품의 대략적인 특성을 파악했으니 다음은 소리를 직접 들어볼 차례다. 피델리오 M1의 스피커 내부에는 보급형 헤드폰에 주로 쓰이는 일반 자석보다 강한 자력을 갖춘 네오디뮴 마그넷을 내장하고 있다. 덕분에 한층 선명한 음질이 기대된다. 그리고 유닛 측면에 저음 강화용 덕트(구멍)가 뚫려있어 저음을 중시하는 사용자라면 주목할 만하다. 다만 이 때문인지 밀폐형 헤드폰이지만 착용 후에도 주변의 소리가 약간씩은 유입된다.
피델리오 M1을 이용해 국내 가요 및 팝송,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해봤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체험한 피델리오 M1의 성향은 전반적으로 저음을 특히 강조하는 느낌이다. 특히 베이스기타나 드럼, 호른, 첼로와 같은 악기에서 들려주는 울림이 상당히 강하다. 물론 이런 와중에 중음이나 고음도 열심히 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컬의 소리가 묻혀버린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저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유닛의 크기가 큰 편도 아닌데 의외라는 느낌이다.
액션 영화 감상 시 만족도 높아
액션이나 드라마, 코미디 등의 영화도 감상해봤는데 저음이 넓게 퍼지는 느낌이다 보니 확실히 액션영화를 즐길 때 만족도가 높다. 특히 화산폭발이나 폭풍우 등의 장면에서 발생되는 저음이 감상자 주변을 입체감 있게 감싸는 느낌이라 한층 박력을 더한다. 한편, 잔잔한 장면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효과음이나 등장인물의 대사도 상당히 또렷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헤드폰 유닛 자체의 전반적인 표현능력도 수준급인 것 같다. 다만 저음이 강조되는 장면이 되면 자잘한 효과음이나 대사의 표현력이 저음에 다소 압도당하는 느낌이 있어 청취자의 취향을 다소 탈 것 같다.
참고로 피델리오 M1의 사양을 살펴보면 저항값이 12Ω(옴)으로 낮은 편이다. 저항값이 낮으면 유닛에서 들리는 음량이 커지기 때문에 출력이 약한 모바일 기기에서 쓰기에 유리하지만 대신 노이즈 제거 능력은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피델리오 M1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 저항값이 높은 헤드폰을 듣는 느낌이다. 노이즈가 느껴지지 않는데다 음량이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귀 속을 강하게 눌러주는 듯한 음압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는 제품을 튜닝한 개발자가 의도적으로 이끌어낸 결과물인 것 같다.
전문가의 손길 느껴지는 개성 있는 소리
필립스 피델리오 M1는 2013년 10월 현재 인터넷 최저가 기준 20만 원대 초반에 팔리고 있다. 아주 싼 제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비슷한 수준의 소리를 들려주는 AV 전문 브랜드 제품의 가격에 비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가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피델리오 M1의 소리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저음의 울림을 최소화하고 중~고음역의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제품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전문가의 개성 있는 손길이 분명히 느껴지는 제품이라면 최소한 한 번 들어볼 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