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리즘'을 그만두세요. 집단지성이 망가집니다
지난 26일 오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또 한차례 시끄럽게 들썩였습니다. 구글에 '박근혜'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라고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설마, 진짜겠어?' 반신반의하며 검색해봤습니다. 그런데 진짜더군요, 오른쪽 창에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라고 나타났습니다.
조금 화가 났습니다. 글의 내용 때문이 아닙니다. 위키피디아라는 집단지성을 파괴하는 명백한 반달리즘(Vandalism)이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무슨 죄? '검색을 성실하게 한 죄'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하나씩 되짚어 볼까요. 지난 4월 구글은 지식 그래프라는 새로운 검색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특정 키워드를 검색하면 해당 키워드를 가장 자세하게 적어놓은 페이지를 찾은 뒤 이를 요약해서 최상단에 노출하는 검색방식입니다.
보통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의 내용이 나타납니다. 가장 길고 자세한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위키피디아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글에 국가정보원을 검색해볼까요. 조선닷컴 키워드의 내용이 우측 최상단에 노출됩니다. 위키피디아에 국가정보원 관련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박근혜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관해 길고 자세하게 서술된 글을 뽑아내 오른쪽 상단에 노출했습니다. 구글은 여기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모릅니다. 단지 정해진 검색 알고리즘에 따라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보여줄 뿐입니다.
문제는 위키위키에 대한 반달리즘
문제는 위키피디아에서 발생했습니다. 위키피디아(Wikipedia)란 위키위키(Wikiwiki) 형식으로 작성되는 백과사전(Cyclopedia)이라는 뜻입니다. 위키위키란 웹사이트 관리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말합니다. 즉, 위키피디아란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는 뜻이죠. 이처럼 사람들이 참여해 하나의 지적 공동체를 만드는 현상을 우리는 '집단지성'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한군데서 갱신해야 하는 일반 백과사전과 달리,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빠르고 신속하게 수록할 수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에 어울리는 방식입니다. 위키피디아 때문에 기존 백과사전 업체들이 장사가 안돼서 폐업했다는 소식은 유명하죠.
하지만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반달리즘입니다. 반달리즘이란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반달족(Vandal)이 서로마 제국을 침공하면서 각종 문화유산을 파괴한 데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각종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 단어가 인터넷으로 넘어오면서 뜻이 약간 변했습니다. 위키위키를 채택한 웹페이지는 누구나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악용해서, 특정 글의 내용을 악의적으로 변경, 삭제 또는 왜곡하는 것을 반달리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노력(문화)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네요.
이번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설명해놓은 위키피디아 페이지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추적해봤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 또는 다른 사람은 동의하지 않는 자신만의 주장, 이러한 문장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씩 작성되고 지워지고를 반복하고 있더군요.
특히 글 가장 앞 개요에 행해지는 반달리즘이 치명적입니다. 글 전체를 요약하는 핵심 문장인데, 이 부분이 구글 지식 그래프 검색으로 끌려나가 노출됩니다. 처음부터 구글 지식 그래프 노출을 노린 것입니다. 확인해보니 작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더군요(위키피디아는 어떤 작성자가 언제 어떤 글을 추가했는지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키위키(위키피디아 포함)가 그 유용함과 신속함에도 불구하고 공신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반달리즘입니다. 글 중간중간에 잘못된 내용이 섞여들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물론 누구나 글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반달리즘이 섞인 문장을 찾아 삭제하거나 바르게 고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위키위키의 가능성이자, 순기능입니다. 하지만 고치기 전까지 그 글을 읽은 다른 사용자는 어떻게 될까요. '아 원래 이게 맞나 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위키피디아는 백과사전이라는 특성상 지식을 얻기 위해 접속하는 사용자가 많습니다. 일반 위키위키 사이트보다 반달리즘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는 거죠.
반달리즘은 보통 의견이 대립하는 정치, 사회적인 이슈 관련 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라는 키워드 외에도 이석기, 천안함 등 우리 사회를 강타한 강렬한 사건과 그 관련 인물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지금도 반달리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빌어 반달리즘을 행한 분께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위키피디아에 적은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든, 어떤 글을 적든 그것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할 자유니까요.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봐서는 안됩니다. 부디 당신의 생각은 당신의 공간인 블로그나 SNS에 적어주세요. 당신의 사견을 보고 눈을 찌푸리는 사람이 생길 수록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위키피디아에서 발을 돌릴 수록 세계 최대의 집단지성이라는 위키피디아는 점점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추가: 26일 오후 5시를 전후로 구글 검색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구글 지식 페이지가 사라졌습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한 구글의 조치로 풀이됩니다. 또, 위키피디아의 박근혜 대통령 페이지는 지금도 계속 반달리즘이 진행 중입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