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고급 인재들이 제시하는 '중소기업 살리기' 해법은?
국내 중소기업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인력 수급'이다. 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반드시 고급 인재가 필요한데, 중소기업이 이들을 채용하기란 쉽지 않다. 국내 고급 인재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쏠려 있는데다,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더라도 대기업이나 해외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중소기업은 인력 부족으로 경쟁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기술력이 중요한 소프트웨어(이하 SW),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중소기업이 무너져 경제가 흔들리고 사회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
이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나섰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ICT 분야의 국내 중소기업, 연구 기관, 대학교에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해외 인재 스카우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은 향후 5년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과 고용 창출을 꾀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스카웃된 해외 인재들이 사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성과 보고회가 29일 열렸다.
해외 인재 영입으로 기술력 향상, 글로벌 진출까지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한인 인재 24명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고급 인력들이다. 이들은 현재 국내 중소기업, 연구 기관, 대학교 등에 소속돼, 해당 기관의 기술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박수용 원장은 "해외 인재 스카우트 사업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이 크게 성장하길 바란다. 또한 해외 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이 참여하는 만큼, 이번 사업은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충분히 좋은 환경에서 고액의 연봉과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인재들이 굳이 국내 중소기업을 찾아온 이유는 조국을 위한 마음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중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 "회사가 성장하는 것을 보며 기쁘다", "제가 태어난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뒤이어 해외 인재 스카우팅 사업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국내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전문성부터 해외 시장 경험까지 두루 갖춘 이들이 모인 만큼,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심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아래는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동서대학교 고재혁: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대학의 경우 중소기업보다 사업 기간이 짧다. 기간이 좀 더 충분해야 하지 않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박수용: 이번 사업에서는 대학보다는 중소기업에 더 집중했다. 그래도 대학은 해외 인재를 모시는 프로그램을 자주 진행하는 편이지만,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 이에 중소기업을 더 많이 지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해 사업 기간을 달리 했다. 하지만 이같은 의견이 있다면 대학 프로그램을 보강하겠다.
나온텍 천종옥: 저는 이 사업에 참여하는 해외 인재들에게 주기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국내 산업이나 시스템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면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양대학교 정성수: 국내 중소기업이나 대학이 국제적인 컨퍼런스를 개최하거나 유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국제적인 IT 컨퍼런스가 열리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점이 매우 안타깝다. 국제적인 컨퍼런스가 열리면 해외 바이어들이 모인다. 중소기업들이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물론, 한국 중소기업이 큰 행사를 잘 준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처한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글루시큐리티 우종욱: 맞다. 그리고 국제 컨퍼런스에서 한국이 열세를 보이는 이유가 또 있다. SCI 논문에만 지나치게 집중해 교수들이 컨퍼런스에 소극적이더라. 본인의 실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적다 보니 컨퍼런스를 가지 않는 것 같다.
세이퍼존 이헌수: 이번 해외 인재 스카우트 사업도 좋지만, 역으로 처음부터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국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국내에서 시작해 해외로 나갈 수도 있겠지만, 아예 해외에서 도전하는 것도 글로벌 시장 파악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 커뮤니티를 형성하면 그것이 곧 한국의 경쟁력이 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는 인도인과 중국인들이 많다. 이들 커뮤니티가 대단하다. 인도와 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세미센스 안병국: 맞다. 처음부터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글로벌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세계 각국의 인재들과 교류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실리콘밸리 화장실에 가면 카레향이 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실리콘밸리에는 인도인들이 다수 진출했다. 중국인들도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양대학교 정성수: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은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너무나 소극적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기술력을 인증 받아 수출하는 과정이 어렵고 복잡하다. 기본적인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중소기업이 힘들 수밖에 없다.
세이퍼존 이헌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며 '한국 중소기업은 왜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성공하지 못할까?' 고민해봤다. 한국 중소기업은 기술력이 뛰어난데도 글로벌 진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자금난에 시달리는데다, 기술이나 솔루션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는 데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한 탓이다.
또한, 한국 중소기업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 어디 쉽나. 삼성전자마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생각해보면, 이러한 현실이 참 안타깝다.
마르시스 권영혜: 그렇다. 국내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열악하다. 이에 단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오히려 자금을 낭비하는 기업들이 많다. 지금 당장 급하니 폭넓은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트렌드가 지난 기술에만 집중하는 기업들을 자주 보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부터 한국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창조 경제' 문화가 조금씩 자리잡고 있다. 외부 투자자들도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를 중소기업들이 잘 알지 못한다. 약 10년 이상 중소기업을 운영해 온 경영자들도 이와 같은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글루시큐리티 우종욱: 한국 중소기업이 인력난을 겪는 이유는 미국과 비교해서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투자 문화가 잘 형성돼, 벤처캐피탈이 역량 있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반면, 한국은 투자보다는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이 정형화됐다. 결국 사업에 실패하면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빚으로 돌아와 신용불량자가 된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도전을 꺼릴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에서는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너무나 자연스레 중소기업에 지원하는데, 그 이유는 급여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키우면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반면, 한국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비교해 월급이 지나치게 적고, 대우도 좋지 않은데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라고 재촉 받는다.
마르시스 권영혜: 미국에는 소기업들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부심이 넘치고, 똑똑한 인재들도 적극적으로 소기업에 지원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그 자부심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중소기업 직원들도 '나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해서 여기 왔어'라는 좌절감을 갖고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능력 있는 인재들은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더라도 곧 대기업으로 떠난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 인력난이 정말 심각하다. 한국에도 중소기업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박수용: 맞는 말이다. 불황이 지속되다 보니 젊은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 및 이공계 학력 저하도 큰 문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또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첫째로, 젊은이들이 도전을 하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둘째로, 소프트웨어 분야에 다각도로 지원하고자 한다. 향후에는 IT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제 시작이다 보니 해외에서 참신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데 일조하셨으면 한다.
이글루시큐리티 우종욱: 한편, 문화적인 요인도 있다. 우선,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잘 형성되지 않은 것이 기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은 참 똑똑한데도 대화를 잘 못하더라.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을 때는 침묵해야 한다'는 문화(질문이나 색다른 제안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 본다.
마르시스 권영혜: 그렇다. 권위적인 분위기가 사라져야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오픈 마인드도 중요하다. 해외에 나가보니, 한국 사람들은 인도나 중국 사람들보다는 다양한 그룹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더라.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갖고 다방면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한국 중소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기자의 눈으로 본 행사
해외 인재 스카우팅 사업은 고급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중소기업에 한 줄기 희망이 될 것이다. 지금은 초기 단계지만, 이 사업이 장기적으로 추진돼 안정기에 접어든다면 국내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본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하루빨리 현실이 되길 바란다.
한편, 해외 인재 스카우팅 사업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한 국내 현실에 대해 알 수 있다. 국내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을 인위적으로 수급해야 한다는 것, 한인 인재들을 해외에서 스카우팅 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왜 그럴까? 토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국내 중소기업과 인재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결코 IT 강국이 될 수 없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굳이 스카우트를 하지 않아도, 세계 각국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찾아오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사회 전반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