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배우 '미스터 고'에 인텔 CPU 탑재했다?
뛰어난 영화를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면 감독이나 연출가의 능력, 시나리오의 우수성, 배우들의 연기력 정도를 드는 것이 전통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요즘 영화에는 이외에도 또 한가지가 추가되었다. 바로 IT기술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 혹은 너무 위험해서 찍기 힘든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CG(컴퓨터 그래픽)를 동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말로 현실적인 CG를 구현하기 위해선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필수다. 당연히 제작비도 많이 든다. 때문에 이 부분은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오는 7월 17일 개봉 예정인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가 이런 편견을 깨겠다고 선언했다. 미스터 고는 허영만 원작의 만화 '제7구단'을 영화화한 것으로, 중국에서 온 고릴라 '링링'이 한국 프로야구계에 진출, 대활약을 펼치는 내용이다.
개봉을 일주일 정도 남긴 11일, 미스터 고의 CG 캐릭터를 창조한 주역들이 한데 모였다. 영화의 CG 제작을 담당한 덱스터 디지털과 제작에 필요한 슈퍼컴퓨터를 구축한 LG엔시스, 그리고 슈퍼컴퓨터용 프로세서를 공급한 인텔코리아는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영상 문화 산업용 슈퍼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관한 활용 사례를 발표했다.
영화 제작 최대의 난관은 고릴라의 '털'
행사의 시작을 알린 덱스터 디지털의 이윤석 이사는 국내 영화 업계가 점점 할리우드과 경쟁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며,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기술력과 자본력이 필요한 CG 제작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영화용 CG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요구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영화 제작사 입장에선 다른 관련 기업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라며, 이날 자리를 함께한 LG엔시스와 인텔코리아의 협력에 사의를 표했다.
이윤석 이사는 영화 미스터 고의 CG 제작과정을 소개하며, 특히 고릴라의 몸을 뒤덮은 수백만 개의 털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덱스터 디지털 사내에 15,000개의 프로세서 코어를 갖춘 랜더팜(Renderfarm, CG 랜더링을 위한 컴퓨터 클러스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으나 이것만으로는 성능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보강하기 위해 LG엔시스의 클라우드 기반 렌더팜 서비스인 '스마트 렌더'를 이용, 총 6,500 코어 수준의 컴퓨팅 성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담 적고 유연한 렌더팜, '스마트 렌더'
이윤석 이사의 뒤를 이어 LG엔시스의 김도현 대표이사도 단상에 올랐다. 김대표는 시스템, 솔루션,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이르는 자사의 사업 영역을 설명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클라우드 렌더팜 서비스인 스마트 렌더가 발전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LG엔시스의 스마트 렌더는 국내 최대 수준인 5,000코어의 컴퓨팅 성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상화 환경을 이용해 신속하고 유연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김대표는 밝혔다. 또한, 별도의 렌더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초기투자 비용 및 관리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스마트 렌더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는 종량제 서비스이므로 특히 중소기업에게 유리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CG영화 업계의 진리가 되고 있는 '슈렉의 법칙'
다음은 이날 행사를 주도한 인텔코리아의 이희성 대표의 차례였다. 이대표는 미스터 고에 사용된 데이터의 양이 600TB(테라바이트)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 의회 도서관 소장 자료의 30배, HD급 동영상 9년 10개월 분량에 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창조하는데 쓰인 슈퍼컴퓨터에 인텔의 제온 E5 프로세서가 쓰였다며, 덕분에 일반 PC라면 400년이 걸렸을 렌더링 작업을 약 5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프로세서 업계에 18개월마다 칩의 성능이 2배로 높아진다는 '무어의 법칙'이 있다면 CG영화 업계에는 '슈렉의 법칙'이 있다고 소개했다. 영화의 속편이 나올 때마다 2배 이상의 렌더링 시간이 요구된다는 것. 실제로 미국의 드림웍스는 '슈렉3'를 제작할 때는 2,000만시간을 렌더링 작업에 소요했지만 후속작인 '슈렉 포에버'를 제작할 때는 전작의 2배를 넘는 4,500만 시간을 소요했다고 한다. 이렇게 CG의 품질이 높아짐과 동시에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제온을 비롯한 인텔의 슈퍼컴퓨터 관련 솔루션이 큰 도움이 된다고 이대표는 강조했다.
기자의 눈으로 본 행사
'라이프 오브 파이'나 '킹콩' 같은 할리우드 대작 영화에서도 완전한 CG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수백 컷 남짓이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할 미스터 고는 무려 1,000컷에 고릴라 '링링'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 정도로 과감한 CG 투입은 국산영화 중에 전례가 없을 정도다.
참고로 미스터 고는 총 25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다. 워낙 대담한 시도라 투자자를 쉽게 모집할 수 없어 우선은 개발을 먼저 시작했고, 어느 정도 결과물을 만든 후에야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제작에 슈퍼컴퓨터가 필수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도 많은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그리고 서비스에 관련된 업체들이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하게 된다. 고릴라가 야구를 하는 영화 한 편을 계기로 덱스터 디지털과 LG엔시스, 그리고 인텔코리아가 한데 모여 기자간담회를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