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외길 30년… "앞으로도 쭉 한 우물만 팔 겁니다"
올해로 애플 제품이 국내에 들어 온지 꼭 30년이 된다. 그 동안 애플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참 많이 변했다. 예쁘지만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를 물건에서 예쁘고 쓸모 있는 물건으로.
이러한 인식 변화의 뒷면에 30년간 묵묵히 애플 제품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온 이들이 있다. 대화컴퓨터, 1983년 이 땅에 애플2라는 생소한 제품을 선보인 이래 아이패드처럼 누구에게나 친숙한 제품부터 맥 프로처럼 전문가용 제품까지 모든 애플 제품을 다루는 애플 전문점이다.
이러한 대화컴퓨터의 업무를 총괄하는 홍장혁 부장을 만나 국내 애플 제품 유통의 역사를 물었다. 그는 오는 6월 1일, 애플 제품이 국내에 들어 온지 딱 30주년이 된다고 언급하며 운을 뗐다.
"1983년 6월 1일, 애플2(애플이 제작한 컴퓨터)를 홍콩에서 들어오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에 소개한 최초의 애플 제품입니다"
시작은 병행수입이었다. 보따리 장수나 다름없었다는 의미다. A/S를 받으려면 제품을 홍콩으로 다시 보내야만 했다. 그런 기간이 4년 가까이 지속됐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애플 제품을 제대로 취급하기 시작한 건 1987년부터입니다. 엘렉스컴퓨터가 애플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애플 제품을 수입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당시 주력으로 취급하던 제품이 맥 클래식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따리 장수 시절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었다. 국내 A/S 센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품이 고장 나면 여전히 홍콩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웃음) 대화컴퓨터는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어요. 그래서 관련 기술자를 육성하고 89년 국내 A/S 센터를 최초로 열었습니다. 더 이상 제품을 홍콩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게 바꿨다는 겁니다"
애플 A/S 센터를 여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특히 90년대 후반부터 애플이 ACP(Apple certification programs, 애플 공인 자격증 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하고 관련 엔지니어 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면서, A/S 센터를 여는 것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ACP란 애플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 개발자, 마케터 등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다. 애플 직영점 지니어스바(Genius Bar)의 직원은 모두 ACP 자격을 갖추고 있다.
"사실 애플 제품을 제대로 수리하려면 ACP 중 하나인 애플 공인 엔지니어 자격증(Apple Certified Macintosh Technician)이 필요합니다. 현재 국내에 많은 애플 A/S 센터가 존재하지만 공인 엔지니어가 상주하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반면 대화컴퓨터는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면 전 직원이 공인 엔지니어입니다. 애플 제품을 취급하려면 최소한 애플 제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프로가 되야 하지 않을까요"
최소한 A/S에 관해서 만큼은 자신감이 확고해 보였다. 현업 애플 엔지니어 가운데 상당수가 대화컴퓨터를 거쳐 갔다는 것이 홍장혁 부장의 설명이다.
"애플에서 관련 엔지니어 교육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면 해당 자리는 대화컴퓨터 OB 모임(직장 동문회)이나 다름없게 변합니다. 비록 대화컴퓨터를 떠났지만, 그 분들이 익힌 기술이 애플 사용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하니 대화컴퓨터 입장에서도 흡족하지요"
아이폰이 많은 것을 바꿔
아이폰 3GS의 국내 출시는 참 많은 것을 바꿨다. 스마트폰을 대중화시켰고, 태블릿PC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이런 흐름은 애플 판매점도 비껴갈 수 없었다.
"초창기 애플 제품은 사는 사람만 사는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방송, 음악, 사진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만 찾았어요. 회사 매출도 파워맥G3 등 데스크탑과 워크스테이션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출시되고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아 저 제품은 예쁘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아냐'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쁘니까 써봐야겠다'로 생각을 바꾼 거에요. 아이폰을 사용하던 분들이 아이패드를 찾고, 아이패드를 사용하던 분들이 맥북을 찾는 구조가 된 겁니다"
"사실 제품 판매의 전환기는 두 번 있었습니다. 2005년 스티브 잡스가 맥에 인텔 CPU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후 데스크탑 위주였던 판매 흐름은 맥북 등 노트북 위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되자 아이패드와 맥북 에어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매출도 급증했습니다.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보다 5배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년부터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예전에는 데스크탑 위주로 발생했던 매출이 최근에는 아이패드 위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일상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은 쉽게 눈에 띄는 제품이 됐다. 이러한 흐름에 대화컴퓨터가 한몫 거든 것만은 분명하다.
철저한 고객관리가 장수의 비결
한가지 업종에 30년을 종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화컴퓨터는 어떤 경쟁 우위가 있어 30년 동안 한 길을 꿋꿋이 걸어올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철저한 고객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한 연애기획사에서 저희 회사를 통해 맥을 대량으로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회사에 맥을 다룰 수 있는 분이 없었던 겁니다. 어찌해야 하냐고 묻기에 저희가 관련 기술자를 일주일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기술자를 통해 맥 사용법을 교육해드렸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그 회사는 제품을 구매할 때 언제나 저희 회사를 찾습니다"
"얼마 전에는 눈이 좋지 않으신 손님이 저희 매장에 방문했습니다. 그 분을 위해 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활성화시켜드리고 사용법을 반나절 가까이 설명해드렸습니다. 그 분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며 다음에도 저희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많은 대기업이 애플 판매점에 진출한 상황이다.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대화컴퓨터만의 차별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작은 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하려면 철저하게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대기업이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앞에서 밝혔듯이 저희 회사는 전 직원이 애플 공인 엔지니어입니다. 전문가의 설명에 사람들은 신뢰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국내 맥 프로(애플의 워크스테이션) 판매량의 대부분이 대화컴퓨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대 교체직전이라 조금 줄었지만, 예전에는 월 평균 10대씩 꾸준히 판매했습니다"
"지난 1995년부터 2000년 사이, 그러니까 애플이라는 회사가 힘들던 시절 저희 회사와 같이 애플 제품을 취급하던 다른 회사들은 모두 견디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습니다. 저희만 꿋꿋이 애플과 함께했어요. 그러다가 애플이 살아나자 또 다른 회사들이 애플 제품 판매와 A/S에 뛰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장 상황이 변하면 그 가운데 얼마나 남을지 조금 궁금합니다"
"기업이 지속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한 우물만 파자. 대신 깊게 파 남들이 흉내 낼 수 없게 하자. 이게 저희가 다른 회사와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이 없는지 묻자 홍장혁 부장은 사소한 팁을 몇 가지 공개했다. 10년이 넘는 그의 엔지니어 경력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어쩌면 A/S 센터에 손님이 조금 줄어들지도 모르는데 팁을 공개한 그에게 박수(?).
"맥북 사용자가 늘어나서일까요, 사소한 문제임에도 직접 해결하지 못하시고 A/S 센터에 방문해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맥북, 아이맥의 이상 증상의 대부분은 PRAM 소거라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품 전원을 켜고 키보드의 '커맨드+옵션+P+R' 키를 함께 누르고 계시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애플 제품은 사양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제품은 십자 나사, 할 수 없는 제품은 별 모양 나사로 잠급니다. 구형 맥북 프로와 아이맥은 십자 나사, 맥북 에어와 맥북프로 레티나는 별 모양 나사에요. 별 모양 나사로 잠근 제품은 A/S 센터에서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하니 구매하실 때 신중하시길 바랍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