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 벤처창업 자금 지원, 창조경제에 득일까 실일까
정부가 국내 벤처 업계를 살리고자 발 벗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 15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벤처 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이 '창조 경제' 실현에 도움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벤처 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은 그 동안 벤처 업계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엔젤투자, 회수 및 재투자, 실패 후 재도전 등을 독려하고자 마련됐다. 정부는 성공한 벤처 1세대(휴맥스, 한글과컴퓨터, 안철수연구소 등)가 후배 창업자에게 재투자와 멘토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구조를 융자에서 투자 중심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또한 엔젤 투자와 기술혁신형 M&A(인수합병) 활성화, 코넥스(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 코스닥의 하위시장 개념) 신설 등을 통해 성장 단계별 투자/회수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창업 플랫폼 다양화, 우수 인력 유입, 기술 탈취 방지, 재도전 환경 개선 등 벤처 생태계 인프라도 확충할 방침이다.
벤처 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은 창업 초기, 성장 회수, 성공 경험 환류 등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정부는 창업 초기 기업의 투자 자금 조달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투자 자금은 성공한 벤처 1세대, 일반 개인, 정책 금융을 통해 마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성공한 벤처1세대가 회수한 자금을 후배 창업자에게 투자할 경우, 세금을 나중에 걷거나 소득 공제를 할 계획이다. 또한 벤처1세대를 중심으로 올해 안에 1,000억 원 규모의 '후배육성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일반 국민이 자신이 희망하는 스타트업에 소액 투자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제도도 올해 안에 도입한다. 정책 금융도 보탠다. 정부는 5,000억 원 규모의 '미래창조펀드'를 조성하고 2,000억 원은 초기/창업 단계에, 3,000억 원은 중간/성장 단계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창업 전에 예비 평가를 통해 5억 원까지 100% 보증하는 '예비창업자 특례보증' 제도를 도입한다.
정부는 성장 회수를 위해 M&A(인수합병)를 활성화하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IPO(주식공개상장) 시장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M&A를 통한 기술 취득도 직접 개발하는 R&D(연구 개발)와 동등하게 우대한다. 또한 벤처기업 또는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5% 이상인 중소기업을 시가의 150% 이상 가액으로 인수합병하는 '기술혁신형 M&A' 개념을 도입하고, 매수 기업은 법인세를 감면한다. 또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적극 인수할 수 있도록 M&A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 이 외에도 2조원 규모의 '성장 사다리 펀드'를 조성해 지식재산권 보호, M&A, IPO, 재기 지원 등 성장 회수 단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코스닥 시장 상장요건을 완화하고 질적 심사 항목도 최소화한다.
성공 경험 환류를 위한 발판도 마련할 계획이다. 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벤처캐피탈도 국내 벤처캐피탈과 동등한 조건으로 모태펀드 출자를 받도록 한다. 해외 동포가 국내 스타트업의 엔젤 투자자로 활동할 경우, 국내 엔젤투자자와 동일하게 엔젤 매칭 펀드에서 지원한다. 또한 국내외 성공한 창업가들을 중심으로 '청년창업 멘토링 서포터즈'를 구성해, 후배 창업가에게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투자를 하도록 유도한다. 해외 동포를 국내 스타트업의 멘토 및 투자자로 적극 유치하고자 '코리아 벤처창업센터'를 마련해 현지 교두보를 확대한다.
정부는 각종 벤처 창업 인프라도 확충할 예정이다. 우선 스타트업이 국내 특허를 취득한 후 해외 특허를 출원하는 데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기술 유용 행위에 대한 제재수위도 높인다. 기술 유용은 원칙적으로 검찰에 고발하도록 기준을 강화하고, 과징금 부과 시에도 최고 등급을 적용한다.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도록 재도전기업 전용자금을 확대한다. 2013년에는 400억 원, 2017년에는 1,000억 원까지 늘릴 예정이다. 성실하게 회생 계획을 이행하는 재기 기업인에게는 금융 이용 제한기간(현행 5년)을 선택적으로 단축하도록 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벤처 창업 생태계로 유입되는 투자 자금을 늘리고, 스타트업의 매출과 고용 확대, 세수 순증 효과 등을 기대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향후 5년 간 벤처 창업 생태계로 유입되는 투자자금은 당초 전망치 6조 3,000억 원에서 10조 6,000억 원으로 확대된다. 또한 성장 회수 단계에서 M&A, 코넥스 등을 통해 4.4조원이 회수되고, 회수 자금 중 1.7조원이 창업 성장 단계로 환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세수 측면에서 엔젤투자 소득공제, M&A 세제 감면 등에 따른 감소 요인이 있으나, 벤처기업의 성장에 따라 향후 5년 간 1.6조원의 세수 순증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취지는 좋은데 '기대 반 우려 반'
정부가 벤처 창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전국벤처기업단체협의회는 정부가 발표한 벤처 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과 관련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창업 초기 단계뿐만 아니라 창업-성장-회수-재투자의 선순환 구조에 집중하는 것과, 실패 후 재도전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 및 성공한 벤처 1세대를 중심으로 노하우를 나누도록 한 것은 긍정적이다. 융자 중심의 금융 구조를 투자 쪽으로 유도하고자 한 점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자금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일각에서는 정부가 창업에 필요한 제도나 인프라 확충보다는 직접적인 투자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자금 못지않게 인력 수급이나 해외 시장 진출 지원 등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된 제도 마련은 다소 부족한 상태다.
게다가 아직은 창업 생태계를 실무적으로 파악할 전문가나 스타트업의 자질과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구체적인 기준 등이 발표되지 않았다. 만약 이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 천억 원이 불필요한 기업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혹시라도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기업이 정부 지원금을 노리고 벤처 등록을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일부 업체가 정부 지원금을 받은 뒤 문을 닫고 사라져 버린다면 회수 및 재투자는 어려워진다.
해당 정책이 약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인데, 정부에서 장기간 일관된 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친 뒤 정치적인 이유로 해당 정책에 변동이 생긴다면, 그에 대한 혼란으로 스타트업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아직 먼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2017년 이후의 대책도 충분한 논의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실리콘밸리뱅크스 켄 윌콕스(Ken Wilcox) 회장은 "스타트업 육성은 정부가 직접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정부가 할 일이란, 합리적인 세제 시스템이나 견고한 법률 체계 등을 갖추어 기업가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른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다 정치적인 이유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창업의 특성은 정부의 행정적 문화와는 엄연히 다르므로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은행이 함께 균형을 이루고 협업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아닌 세 꼭지점이 중추를 이뤘을 때 창의적인 긴장감이 유지되고 서로 성장할 수 있다며, 이것이 지난 32년 간 벤처 투자 업계에 몸 담으며 깨달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원칙과 문화가 서도록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에는 대기업이 힘의 논리로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나 기술을 헐값으로 갈취하거나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베껴 서비스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부가 기술 유용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인다고는 했지만, 정부가 재계에 얼마나 강력한 조치를 취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갑의 횡포'가 만연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상생'을 외쳐봤자 공염불에 불과하다. 반면 해외 대기업이 정당하게 거금을 주고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뉴스 요약 서비스 '와비'를 3,000만 달러(한화 약 336억 원)에 인수했으며, 야후는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 '텀블러'를 11억 달러(한화 약 1조 2,000억 원)에 인수했다.
이 외에도 스타트업과 예비 창업자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중소기업 중 뛰어난 기업을 선정해 기술 개발을 돕고 창조 경제를 실현하는 방안도 있다. 창업의 대상을 청년층으로만 한정하기보다는 이미 업계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중장년층까지 널리 확대해, 창업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아직은 정책 초기이니만큼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벤처 버블로 경제적 고통을 겪었던 국민들의 노파심은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구체적,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진정한 '창조 경제'를 실현하길 바란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