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지' 디자이너가 '폰케이스' 만들게 된 사연 - 제누스 & 월넛 김도연
흔히들 '패션'이라 한다면 옷이나 가방, 지갑 등의 아이템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패션아이템의 범주 역시 조금씩 변한다. 특히 최근 들어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이 훌쩍 커지다 보니 기능과 뿐 아니라 디자인과 소재까지 고려한 모바일 액세서리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다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패션과 IT가 교집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패션업계에 있던 디자이너가 모바일 액세서리 업계로 자리를 옮기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IT동아가 지난 2월 28일 만나본 제누스와 월넷(법인명 경진앤우전)의 김도연 디자인 총괄 상무(54세)도 그런 경우다. 김도연 상무는 유명 패션 잡화 브랜드였던 '쌈지'의 디자인 총괄 이사로 근무하며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스마트폰 케이스, 태블릿PC 케이스 등을 디자인하고 있다. IT동아는 김도연 상무가 전하는 모바일 액세서리의 디자인 철학, 그리고 제누스와 월넛 브랜드의 향후 전개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1986년 '쌈지'에서 2013년 '제누스'로 오기까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김도연 상무는 1986년부터 쌈지에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쌈지의 주력 제품이라면 가방이나 지갑과 같은 일반적인 잡화 제품이었는데, 2013년 1월, 돌연 모바일 액세서리 업체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쌈지 시절부터 이미 휴대폰용 케이스나 지갑을 디자인 한 경험이 있습니다. LG전자나 삼성전자 같은 큰 기업들의 제품 개발에 참여한 적도 있고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구상한 것들이 많은데, 이를 실현하는데 제누스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 사장님의 의욕에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요"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제누스, 트랜디한 월넛
2013년 현재 제누스(Zenus)와 월넷(Walnutt)이라는 2개의 모바일 액세서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경진앤우전 본래는 가죽 및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다루는 소재 전문기업이었다. 베트남에 1,200명 규모의 공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규모도 크다. 때문에 제누스와 월넛 브랜드로 출시되는 모바일 액세서리 제품들도 소재를 중시한다. 경쟁사 대비 어떠한 소재로 차별화를 하고 있으며, 두 개의 브랜드가 지향하는 철학의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제누스는 가죽 소재를 중심으로 고전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면을 강조하는 것이 콘셉트입니다. 이탈리아 등에서 수입한 소재도 다수 이용하며, 장어 가죽과 같은 독특한 소재가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소재를 폰케이스에 적용한 건 아마도 제누스가 거의 처음일 겁니다. 소재 차별화 1세대인 셈이죠. 그리고 월넛은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주로 사용하며, 사출 기법으로 제조됩니다. 제누스에 비해 좀 더 젊고 트랜디한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죠"
소재와 제작기법을 차별화하면서 비용은 최소화한 비결
제누스와 월넛의 제품은 소재뿐 아니라 제작 기법도 타사 제품과 차별화된다고 김도연 상무는 강조했다.
"특히 제누스 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타이다잉(tie-dyeing) 염색기법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소재의 제한이 없는데다 결과물도 정형화 되어있지 않죠. 그리고 양가죽에 열 압축을 가해 자연스럽게 주름을 가해주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제작된 제품은 같은 공정을 통해 제작하더라도 세부적인 디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은 자신의 개성을 과시할 수 있죠"
다만, 차별화된 소재와 제작 기법을 사용하면 그만큼 생산에 드는 비용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김도연 상무는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저희 제품은 제조 중에 수작업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좀 더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높은 재질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발 품을 파는 것은 기본이고 제작 공정을 단순화하기 위해 디자인도 최대한 심플하게 하려 합니다. 그리고 월넛의 제품을 살펴보면 한 제품에 두 가지 컬러가 소재가 동시에 쓰일 때가 있는데, 이는 이중 사출 기법으로 한 번에 찍어낸 것입니다. 때문에 경쟁사 제품 제품처럼 각기 다른 컬러의 소재를 따로 사출해서 결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죠. 덕분에 보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데도 유리하고요"
대기업들의 압박에 대한 돌파구는 해외시장 개척
제누스와 월넛의 최근 고민이라면 중소기업의 영역이었던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에 대기업들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삼성물산은 '플레오맥스'라는 브랜드로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으며, LG전자의 경우 '옵티머스뷰2' 등의 스마트폰에 아예 케이스를 포함해 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도연 상무는 활발한 해외진출로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누스와 월넛은 현재 70여 개 해외 바이어와 협력 중 입니다. 특히 동구권과 북미,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 활발하게 제품을 판매 중이지요.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지사를 설립하기도 했고, 올 1월에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도 제품을 출품한바 있습니다. 대기업의 액세서리 시장 진출에 대비한 해외 시장 개척은 필수입니다"
이렇게 활발히 해외에 진출하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특히 각 지역별 소비자들의 취향 차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소비자들은 가볍고 트랜디한 제품을 선호하는 반면, 유럽은 다소 보수적입니다. 심플한 디자인에 깊은 느낌의 컬러를 갖춘 제품이 잘 팔린다는 의미죠. 그리고 북미 소비자들은 디자인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각 지역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타사에서 복제품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이에 대응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저희들은 새 트랜드를 품은 신제품을 더 빨리 내놓는 것이 낫다고 판단, 한층 개발 속도를 높였습니다"
패션 아이템과 폰케이스, 디자인 감성은 대동소이
앞서 소개한대로 김도연 상무는 본래 패션 업계에 종사하던 사람이다. 모바일 액세서리 분야로 옮기면서 어려움을 겪었을 만도 한데 정작 본인은 그런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에도 휴대폰 케이스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을 뿐 아니라, 어떤 제품이건 고객들이 원하는 감성은 비슷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바일 액세서리의 디자인 트랜드도 결국은 의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에 따라 향후 시장에서 유행할 모바일 액세서리의 디자인은 어떤 것인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2013년 현재 제누스와 월넛은 스마트폰 및 태블릿PC용 케이스가 주력 제품이다. 하지만 향후 점차 제품군의 범위를 넓힐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경쟁업체들처럼 문어발식의 확장은 지양한다고 김도연 상무는 강조했다.
"경쟁사들은 너무 많은 범주의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도 폰케이스 외에 액정보호 필름이나 거치대 등을 공급하고 있으며, 일본 '파이널오디오'의 이어폰도 출시했습니다. 그 외에 향후 디지털카메라용 케이스 등도 출시할 예정입니다만, 무리한 사업 확장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범주의 제품을 개발할 계획은 있지요. A와 B의 형태를 합친 C라는 제품을 창조하는 식입니다. 이를테면 몸에 부착하는 케이스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 저희는 실용신안에 등록할 수 있을만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백팩(배낭)을 기획 중이니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혼잡한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 선택 기준을 제시한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김도연 상무는 IT동아의 독자들과 소비자들에게 부탁의 말을 남겼다.
"요즘은 모바일 액세서리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입니다. 제품을 선택할 때 디자인과 소재를 꼼꼼히 따져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항상 이를 연구하고 있고, 이를 통한 기술 혁신도 이뤘습니다. 제누스와 월넛의 제품에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모바일 기기 시장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 바로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이다. 정말로 많은 제품이 시장 쏟아지고 있고, 시장의 트랜드 역시 워낙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제품 선택이 쉽지 않다. 이런 와중에 제누스와 월넛은 '소재'와 '디자인'이라는 선택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패션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도연 상무와 같은 디자이너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