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를 한 대도 판매하지 않는 애플이 PC시장 1위가 된 아이러니
PC를 판매하지 않는 애플이 PC시장 1위에 등극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라고 반문할 사용자들이 많을 듯하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풀어보자.
지난 6일, 미국과 중국에 거점을 두고 시장을 분석하는 통계기관 카날리스(Canalys)가 2012년 4분기 PC 출하량을 공개했다. 카날리스는 "애플이 2012년 4분기 전체 PC출하량 1억 3,400만 대 가운데 2,700만 대를 판매해 전체 시장의 20%를 점유했고, 이에 따라 업계 1위를 3분기 연속으로 차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에 PC를 구매한 6명 가운데 1명은 애플의 제품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또한 "2,000만 대를 판매해 점유율 15%를 기록한 레노버가 2위, 1,500만 대를 판매해 점유율 11%를 기록한 HP가 3위를 달성했다"며, "4위는 1,170만대를 판매해 점유율 9%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어 "PC 시장의 전통적인 강호 델은 970만 대를 판매해 점유율 7%로 5위를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수치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카날리스의 집계에는 가트너(Gartner), IDC, SA(Strategy Analytics) 등 기존 시장분석기관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PC 출하량에 태블릿PC 출하량을 포함시킨 것.
카날리스의 PC 출하량 집계는 4,620만 대에 이르는 4분기 전체 태블릿PC 출하량을 포함한 수치다. 카날리스는 애플의 태블릿PC 출하량을 2,300만 대(49%)로 집계했고, 삼성전자의 태블릿PC 출하량을 760만 대(16.5%)로 추산했다. 애플 태블릿PC 출하량의 대다수는 '아이패드 미니'라고 전했다.
PC의 기준이 대체 뭐길래…
카날리스는 왜 태블릿PC를 PC에 포함시켰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PC의 정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PC(Personal Computer)를 개인이 사용하는 소형 컴퓨터로 정의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20년 넘게 그러한 뜻으로 이해해 왔으니까.
하지만 PC의 정확한 이름은 'IBM호환 PC'다. IBM이 기본 개념을 고안해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견인해온 표준 규격이다. 불과 25년 전만해도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은 확립돼 있지 않았다. 여러 회사에서 내놓은 컴퓨터가 각자의 규격을 바탕으로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국 1988년을 전후로 IBM호환 PC가 경쟁자를 밀어내고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을 차지했고, '개인용 컴퓨터=PC'의 공식을 세우기에 이른다.
가트너, IDC 등은 이러한 IBM호환 PC의 정의에 입각해 인텔 프로세서(정확히는 X86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윈도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으면 PC로 규정한다. 지금도 이에 맞춰 PC시장 출하량을 집계하고 있다.
한데 카날리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카날리스는 PC를 개인이 사용하는 소형 컴퓨터로 정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태블릿PC도 훌륭한 PC다. 단지 X86 프로세서 대신 ARM 프로세서를, 윈도 운영체제 대신 iOS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사실 용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게임, 문서 작업, 애플리케이션 실행 등. 태블릿PC가 PC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단지 형태와 입력장치가 조금 다른 것 뿐이다. 게다가 '윈도8 태블릿PC'가 등장함에 따라 PC와 태블릿PC의 경계도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다만 카날리스의 PC 정의에는 한가지 맹점이 있다. 태블릿PC를 PC에 포함시킨다면 대체 왜 스마트폰은 포함시키지 않는 걸까. 스마트폰도 훌륭한 PC다. 태블릿PC와 프로세서 및 운영체제 그리고 내부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단지 크기 때문에 PC 출하량에서 제외시켰다고 하기에는 석연찮다.
단순히 태블릿PC를 포함하고 포함하지 않고의 문제는 아니다. 태블릿PC 포함 여부에 따라 PC 시장 점유율은 크게 변한다. 태블릿PC를 PC에서 제외하면 점유율이 레노버, HP, 델, 에이서의 순으로 변한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기타로 급 추락한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이 대두됨에 따라 전통적인 PC의 정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과연 사용자들이 PC의 정의를 무엇으로 규정할지 지켜볼 일이다.
"기사 제목에 애플이 PC를 한 대도 판매하지 않는다고 적어두고 실제로는 400만 대 가까이 PC를 판매했지 않느냐"고 화낼 독자가 있을까봐 사족을 단다. 애플은 자사 제품에 PC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맥(Mac)이라고 부른다. 80년대 후반 IBM 호환 PC에 패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Macintosh)'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 전까지 PC와 맥은 전혀 다른 제품이었다. 하지만 애플이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하드웨어적으로 맥과 PC는 동일해졌다. 맥북에어, 맥북프로에 윈도를 설치할 수 있는 이유다. 때문에 가트너, IDC, 카날리스 등 시장조사기관은 맥북에어, 맥북프로 등을 PC에 포함시키는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애플 관계자들은 꿋꿋이 주장한다. "저희 회사 제품은 PC가 아니라 맥입니다" 애플 관계자의 의견을 존중하면 애플은 단 한 대의 PC도 판매하지 않는 셈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