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주인공, 현실 속의 게임 도심RPG 성료
"미션을 수행해 경험치를 획득하고 잃어버린 유물을 찾아라!"
지난 10월 13일, 주황색 복장의 시민들 1,500여 명이 서울시 중구에 모였다. 한 손에는 지도를, 다른 손에는 암호가 적힌 카드를 쥐고 여기저기 분주히 뛰어다니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중구 곳곳에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고 힌트를 얻은 후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때로는 독약처럼 쓴 음료를 마셔야 하고, 복잡한 퍼즐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해야 우승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발걸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온라인게임을 현실에 구현한 '도심RPG in 2012 Hi Seoul-the Beginning(이하 도심RPG)'이다.
도심RPG란 RPG(역할수행게임,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목적을 달성하는 PC게임)처럼 참가자들이 실제 도시를 누비며 미션을 수행하는 오프라인 게임콘텐츠다. 현실을 모방한 게임을 현실에서 다시 모방한 '가상의 가상현실'인 셈이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개인적 성향의 PC게임을 참가자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 및 관광콘텐츠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참가자들은 2~5명의 팀을 구성해 중구 전역의 문화재에서 미션을 수행한다. 을사늑약 조약문이 전시된 중명전, 아관파천의 아픈 기억이 녹아든 러시아 공사관, 세종대왕 동상, 덕수궁 돌담길, 명동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환구단에 도달한다. 미션에 성공하면 경험치를 획득하지만, 실패하면 경험치를 빼앗긴다.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으나 경험치를 모두 잃으면 일정 시간 감옥에 갇혀야 한다. NPC(인공지능 캐릭터)를 만나 정보를 수집하거나 PVP(참가자들간의 결투)에서 승리하는 것 또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개인의 능력보다 팀의 호흡이 중요하기에 RPG보다는 TV쇼 '런닝맨'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도심RPG는 2005년 기획되어 2006년 대구에서 처음 시연된바 있는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콘텐츠다. 초기의 모습은 단순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콘텐츠의 양과 질이 좋아졌다는 평가다. 관광콘텐츠로서의 가치가 검증됐기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게임문화페스티벌'의 메인콘텐츠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번에 중구에서 개최된 도심RPG의 경우 서울시 지역특성화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고 중구의 후원을 받아 동아닷컴과 게임동아가 주관해 개최됐다.
최종 우승은 중구 지역 직장인들이 모인 'M13'팀이 차지했다. 비결은 철저한 준비에 있었다. 행사 전날 새벽 2시까지 도심RPG 공식사이트(www.townrpg.co.kr)에 공개된 미션 장소들에 대해 철저히 공부했다는 후문이다. 2위는 평범한 4인 가족 '동글이네팀'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서울의 문화와 역사를 가족들과 함께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서 가볍게 참여했다가 예상외의 성과를 올렸다며 즐거워했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객체의 입장에서 단순 관람만 해야 했던 일반적인 축제와는 달리,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서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에게 특히 많은 지지를 받았다.
도심RPG 관계자는 "도심RPG는 일상의 공간을 재해석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 라며 "도시의 흩어진 이야기와 문화자원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콘텐츠로서 문화관광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