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교통안전 및 과실비율 산정에 AI 활용하는 주요국 사례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국내에서 교통 분야에 AI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여럿 나타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주요국도 교통사고 과실비율 판정 및 교통안전 분야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아직 '심판관'이라기보다 '보조자'에 가깝습니다.
즉, 현재 어느 국가에서도 AI가 법적인 과실비율을 독자적으로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보험 손해사정, 사고 재구성, 교통안전 예측 등의 실무 분야에서는 아래 사례들과 같이 이미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번 기고에서는 교통안전 및 과실비율 산정에 AI를 활용하는 주요국 사례를 살펴봅니다.
보험사의 과실 판정, AI가 맡기 시작
미국의 데이터 분석 기업 베리스크(Verisk)는 수백만 건의 보험 클레임 데이터와 교통법규를 학습한 AI 시스템으로 과실비율을 산출합니다. ▲구글 맵 위치 정보 ▲사고 당시 기상 데이터 ▲현지 도로교통법 ▲관련 판례 ▲현장 이미지까지 통합 분석해 과실 예측 결과를 자동으로 도출합니다. 보험 심사역이 수일에 걸쳐서 하던 업무를 AI가 수 분 만에 처리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시프트 테크놀로지(Shift Technology)는 보험회사들을 위한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피보험자의 사고 진술서를 읽고, 사건 경위를 스스로 해석한 뒤, 과실 당사자를 식별하고 구상권 청구 대상까지 자동으로 판별하는 수준으로 기술을 고도화했습니다.
AI로 판결문 쓰는 중국 법원
보험사를 넘어 법원까지 AI를 도입한 곳은 중국입니다. 쓰촨성 고급법원은 2017년부터 교통사고 분쟁해결 시스템(TADRS)을 교통경찰서, 법원, 온라인 조정 플랫폼에서 실제 운용하고 있습니다.
해당 시스템은 교통경찰 기록에서 날씨, 도로 상태, 차량 및 운전자 정보를 추출한 뒤 딥러닝 모델이 수만 건의 선행 판결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실비율 솔루션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미 AI가 과실 판단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선전법원은 더 극적입니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교통사고 불법행위 소송을 포함한 모든 민사·상사 재판에 체계적으로 적용했습니다. 판사가 초기 판단을 내리면 LLM이 관련 법조문을 인용한 판결 논리를 생성하고, 판사가 이를 수정해 최종 판결을 선고하는 방식입니다. AI가 단순 데이터 분석을 넘어 법적 논증의 영역까지 진입한 것입니다.
블랙박스로 과실비율 계산하는 일본
일본의 손보재팬은 2019년 세계 보험업계 최초로 AI 기반 과실비율 산정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블랙박스 영상과 GPS 데이터를 분석해 차량 속도, 물체 위치, 주변 환경, 도로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이후 과거 사고 데이터와 비교해 모든 관련 당사자의 과실비율을 산출합니다. 기존 약 두 달 걸리던 합의 기간을 1~2주로 단축했습니다. 일본 최대 보험사 도쿄해상도 AI 도입으로 클레임 평가 시간을 수 분 단위로 줄였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증거 패러다임의 전환…사후 수습에서 사전 예측으로 AI 활용
살펴본 변화의 핵심에는 '증거 패러다임의 전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실 다툼의 중심이 사람(목격자)의 진술에서 기계가 기록한 객관적인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2025년 미국 마이애미 배심원단이 테슬라 오토파일럿의 결함을 최초로 인정한 평결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밀리초(1000분의 1초) 단위로 정밀하게 기록된 2000개 이상의 차량 주행 데이터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AI는 사후 수습을 넘어 사전 예측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주 벨뷰시의 경우, 40개 교차로의 영상을 고해상도 머신비전 기술로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아 기존 경찰 통계에는 결코 잡히지 않던 '근접 위험(아차 사고)' 상황까지 포착해 냈습니다. 자전거 이용자가 자동차 운전자보다 10배 더 높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증명했습니다. 한편 미국 뉴욕대학교 연구팀은 사고가 날 뻔한 위험천만한 찰나의 영상을 분석한 뒤 그 원인을 자연어 텍스트로 자동 생성해 내는 기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속도보다 제도적 준비 시급
한국의 보험개발원 역시 AI 시스템인 'AOS α(알파)'를 통해 월 30만 건에 달하는 자동차 수리 청구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주로 차량의 파손 금액 산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AI가 과실비율 자체를 판단하거나, 사고를 사전 예측하는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 실무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로는 국내에도 AI 기반의 과실 판정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제도적 준비'입니다. AI가 제시한 과실비율에 어느 정도의 법적 효력을 부여할 것인지, AI의 판단에 불복할 경우 이의 제기 절차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편향성 검증은 누가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AI의 분석 결과가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이를 온전히 수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