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교통사고 과실비율 판단의 변수들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내 과실이 잡히죠?” 교통사고를 겪은 운전자들이 종종 터뜨리는 억울한 하소연입니다.
블랙박스 영상도 있고 상대방 잘못이 분명해 보이는데, 보험사나 경찰은 “운전자에게도 과실이 있다”면서, 8:2나 9:1처럼 책임을 나누는 경우도 많습니다. 같은 유형의 사고라도 작은 변수 하나로 결과가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도로 위 100 대 0 사고는 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최근 판례들은 달라진 경향을 보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날씨와 같은 외부적인 요소들, 블랙박스 증거의 역설, 비슷한 사고에 대한 다른 판단, 고의가 개입된 교통사고 등 교통사고 과실비율 판단의 변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빗길과 악천후: 자연재해가 아닌 ‘과실비율 가감요소’
운전자들은 “비 때문에 미끄러진 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법원은 악천후를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상황으로 봅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일반적인 제한속도 규정뿐만 아니라 노면이 젖으면 제한속도의 20%, 안개·폭설 시 제한속도의 50%까지 감속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반면, 비 오는 밤 갑작스러운 무단횡단 사고 시에는 운전자에게 ‘예견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무과실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결국, 같은 비라도 상황에 따라 ‘면책 사유’가 되기도 하고 ‘가중 책임’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블랙박스의 역설
블랙박스 영상은 만능 증거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해석과 맥락이 필요한 ‘데이터’이며, 오히려 제출자에게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블랙박스 화각과 운전자 시야의 차이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합니다.
대부분 블랙박스는 120도 이상의 광각 렌즈를 사용합니다. 이는 실제 운전자 시야(약 60도)보다 훨씬 넓고 물체를 더 멀어 보이게 합니다. 한 판결에서는 블랙박스에 선명히 찍힌 보행자를 운전자가 발견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보아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있습니다.
종종 내 블랙박스 영상이 내 과실을 증명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예컨대 상대방의 주의의무 위반을 입증하려고 제출한 영상에서 정작 내가 제한속도를 20km/h 넘게 초과한 장면이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과실이 대폭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사고의 주된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인정되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사고 다른 판단
교통사고 과실비율의 최종 판단은 결국 법원에서 이뤄집니다. 다만 사건마다 판단자인 법원이 다르기에 비슷한 사고라도 과실비율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가 소송을 벌이다 보면, 겉보기에 비슷한 사고라도 담당 판사가 어떤 법적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과실비율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가령 ‘신뢰의 원칙’을 중시하여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에 대해 운전자의 무과실을 적극 인정하는 판사가 있는가 하면, ‘교통 약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어 운전자에게 가혹할 만큼 높은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판사도 있습니다. 흔히 이를 판사복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기계적인 공식이 통하지 않는 법원의 영역입니다. AI가 주도하는 시대에 이같은 법원의 과실비율 판단은 얼핏 보면 일관성도 없고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다만 모두가 합의한 사법제도에서 도출된 결과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의가 개입된 교통사고: 보복운전, 보험사기
과실비율은 ‘쌍방의 실수’를 전제로 ‘교통사고에서 과실비율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보복운전이나 보험사기와 같은 고의 교통사고의 경우는 과실을 이용하는 교통범죄에 불과합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용해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가 감형을 주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의가 개입된 교통사고인 보복운전이나 보험사기의 경우는 외형상 쌍방과실 사고라 하더라도 가해자에게 전적인 과실이 주어질 것입니다.
결론
교통사고 과실비율 판단기준은 교통법규 위반여부, 사고 예견 가능성, 사고 회피 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며 이를 기초로 과실 유무 및 과실의 정도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적 원칙들을 실제 사고 현장에서 수학 공식처럼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습니다. 빗길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내 과실을 가중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블랙박스가 오히려 나의 방어운전 소홀을 증명하는 부메랑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사고라 할지라도 재판부의 판단 성향이나 사고에 개입된 고의성 여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운전자들은 “나는 신호를 지켰으니 문제없다”라는 안일한 확신을 갖기보다, 억울한 과실비율 분쟁 자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고 후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아닙니다. 악천후에는 속도를 더 줄이고 상대방의 돌발 행동까지 염두에 두는 철저한 ‘방어운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