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구의 인터'스페이스'] 서울숲, 성수동 잇는 '거리 설계'의 실험장
[IT동아]
성수의 흐름은 어디를 향하는가
성수동은 더 이상 '뜨는 동네'가 아니다. 이미 한 차례의 정점을 지나, 이제는 다음 방향을 묻는 단계에 들어섰다.
성수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은 충분히 밀집되었고, 임대료는 높아졌으며, 거리의 밀도는 오히려 숨이 찬 상태다. 이런 국면에서 상권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 다음은 어디인가?'
그 답 중 하나가 서울숲이다. 그리고 이 흐름을 가장 전략적으로 읽은 기업이 바로 무신사다.

무신사는 서울숲 아틀리에길 일대 공실 상가 약 20여 곳을 매입하거나 장기 임차했고, 투자 규모는 1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숫자만 보면 큰 투자지만, 공간을 다루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건 부동산 투자가 아니라 '거리 설계'에 가깝다.

브랜드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공간'
브랜드는 대개 자리를 고른다. 하지만 무신사는 반대로 움직였다. 공간을 먼저 확보하고, 그 위에 브랜드를 얹는 방식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단순하다. 지금의 패션 브랜드, 특히 온라인에서 성장한 브랜드들은 오프라인을 원하지만, 기존 상권에서는 실험할 여지가 없다. 임대료는 비싸고, 실패의 비용은 너무 크다.
서울숲 프로젝트는 그 부담을 구조적으로 낮춘다. 공간을 먼저 확보함으로써, 브랜드는 '들어올지 말지'를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 차이가 거리의 성격을 바꾼다.
이 지점에서 서울숲은 단순한 확장 지역이 아니라, 성수 이후의 실험장이 된다.
앵커 공간이 만드는 거리의 중심 – 푸마(PUMA) 스니커박스
거리에는 중심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우연히 지나치기보다,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앵커 시설이다.
서울숲 프로젝트에서 푸마는 그런 역할을 한다. 푸마의 스니커박스 매장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 국가로 한국에서 문을 연다. 이 공간은 단순히 '또 하나의 매장'이 아니라 '두 번째 시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중요한 건 '글로벌'이라는 수식어가 아니다. 왜 서울이었고, 왜 서울숲이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글로벌 브랜드가 중국 다음 진출 국가로, 그중에서도 서울숲을 선택했다는 건, 이곳이 더 이상 변두리나 대안 상권이 아니라 전략적 거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프로젝트의 공간 기획과 구현을 필자가 속한 담장너머가 담당했다. 서울숲이 단순히 브랜드를 소비하는 장소를 넘어, 공간 자체가 메시지를 만드는 장소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숲은 이미 선택받은 동네다
서울숲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명 연예인들을 포함한 자산가들이 서울숲 일대 건물을 인수했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오르내린다.
이런 움직임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사람들이 북적이기 전에, 간판이 생기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것은 공간을 늘 오래 바라보는 자본이다.
서울숲은 공원이라는 강력한 인프라를 품고 있고, 성수동이라는 이미 검증된 상권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무신사의 대규모 투자가 더해지면서, 서울숲은 이제 '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이미 선택된 곳'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무신사의 투자로 서울숲 거리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패션 브랜드들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다시 이 동네를 목적지로 삼을 것이다. 거리는 활발해지고, 콘텐츠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간기획가의 시선에서 보면, 진짜 질문은 그 다음이다. 그동안 이 공간에서 공존하던 F&B와 로컬 콘텐츠는 어디로 가는가.
패션만 남은 거리는 오래가지 않는다. 브랜드는 트렌드를 따라 이동하지만, 동네는 사람의 일상으로 유지된다. 서울숲이 하나의 '마을'로 남을지, 혹은 잘 설계된 '야외 백화점'으로 수렴할지는 어떤 업종을 남기고, 어떤 리듬을 허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신사의 이번 투자는 단순한 상권 확장이 아니다. 이 투자가 성공한다면, 서울숲은 성수 이후의 새로운 도시 실험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저 또 하나의 유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서울숲은 지금, 그 갈림길의 초입에 서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거리가 어떤 공간으로 기억될지를 함께 지켜보고 있다.
정훈구 담장너머 대표 (plus82jh9@gmail.com)
담장너머의 공동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와 '굿디자인 어워즈'에 선정된 바 있으며, 다양한 공간기획 프로젝트를 통해 창의적인 공간과 경험을 제안, 구축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