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2. 기후변화의 바이블? IPCC 보고서 '제대로' 활용하기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현대인은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 사이에서 서로 다른 정보를 내세우며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정보의 신뢰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필자는 칼럼을 연재하며 다양한 정보를 참고할 것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다.

출처=제미나이로 이미지 생성
출처=제미나이로 이미지 생성

‘기후변화의 바이블’ 혹은 ‘골드 스탠다드’, ‘UN의 기후과학 랜드마크 보고서’, IPCC 보고서를 뜻하는 별칭들이다. IPCC 보고서는 기후변화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자료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사람들은 종종 두 극단으로 나뉜다: 절대적 권위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정치가 과학을 덮었다며 부정한다. 하지만 진실은 대체로 양극단 사이에 있다.

IPCC 보고서는 완벽하지 않지만, 전 세계 기후 지식을 넓은 범위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국제 평가 시스템이다. 다만 구조적 한계가 있고, 과거에 일부 문구와 수치에서 오류가 드러난 적도 있다.

IPCC의 정체: 연구기관이 아니라 평가 시스템

IPCC는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설립한 정부 간 기구이다. 중요한 점은 IPCC가 새로운 실험이나 관측으로 과학적 사실을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은 이미 발표된 논문과 보고서, 관측 자료를 종합해 무엇이 비교적 확실한지, 무엇이 불확실한지를 평가한다. 즉, IPCC는 정책을 지시하기보다, 정책 선택의 근거와 조건을 정리해 제공하는 데 가깝다.

IPCC 보고서가 신뢰받는 이유: 절차가 만든 신뢰

IPCC 보고서가 신뢰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절차이다. 보고서 초안은 여러 차례 전문가 검토를 거치며,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SPM, Summary for Policymakers)’은 각국 정부 대표가 문장 단위로 승인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저자인 과학자들이 승인 과정에 함께 참여해 요약 문구가 본문 근거와 어긋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장치도 존재한다.

실제 오류와 한계: 왜 특정 시기에 문제가 더 크게 드러났나

물론 IPCC에 오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오류 사례는 2007년 4차 평가보고서(AR4) 시기, 특히 영향·적응·취약성(WGII) 영역에서 두드러졌다. 히말라야 빙하 관련 잘못된 문구나 네덜란드 침수 위험 표현의 부정확성이 대표적이다.

왜 2007년 4차 평가보고서에서 많이 발생했을까? 영향·적응·취약성(WGII) 영역은 물리과학(WGI) 영역에 비해 자료 간 이질성이 높고, 동료평가를 거친 논문만으로 모든 지역과 분야를 촘촘히 덮기 어렵다. 비동료평가 자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방대한 분량과 촉박한 일정, 수만 건에 이르는 검토 의견이 겹치면서 오류가 남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사건이 절차를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후 IPCC는 오류 제기와 정정 절차를 공식화하고, 정오표를 공개하는 체계를 강화해 왔다.

IPCC는 정답이 아니라 기준선이다

IPCC는 기후 논쟁을 끝내는 최종 판결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과 산업 전략, 기술 로드맵이 출발할 때 참조해야 하는 ‘국제 합의된 지식의 기준선’에 가깝다. 신뢰도는 높지만 무오류는 아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독법이 필요하다. 첫째,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과 함께 본문에서 근거와 불확실성 표기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둘째, 전지구적 물리과학 결론과 지역 단위 영향 결론은 자료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셋째, 시나리오는 확률로 오해하지 말고 조건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가 할 일

중요한 것은 IPCC에 대한 맹신이나 음모론이 아니라, 무엇이 강한 근거이고 무엇이 약한 근거인지 구분해서, 한국의 배출 구조, 에너지 시스템, 산업 특성, 정책 일정, 기술 성숙도에 맞게 정책을 재계산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다. 결국 기후와 에너지의 승부는 정책 구호가 아니라 기술과 실행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이 크고 산업 전환 압력이 높은 나라에서는 IPCC가 제시하는 방향과 한국의 가능한 속도를 분리해 설계하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출처=전남대학교
출처=전남대학교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으로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 분야에서 3년 연속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며 기후 에너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