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주년 맞은 리벨리온, '리벨쿼드' 앞세워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
[IT동아 남시현 기자]
“리벨리온의 한 보 전진이 대한민국 IT 산업 전반의 한 보 전진이라 생각하고 사업에 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5년이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년은 마샬 초이(Marshall Choy) 최고사업책임자(CBO) 같은 최고의 선수를 모시고 글로벌 플레이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25년 12월 16일, AI 반도체 기술 기업 리벨리온(Rebellions)이 창립 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리벨리온은 2020년 설립된 팹리스 기업으로 2021년 11월 아이온(ION) 출시를 시작으로 2023년 첫 국내 상용 데이터서버용 반도체 아톰(ATOM), 아톰 맥스를 양산하며 국산 AI 반도체 시장의 한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4년은 SK텔레콤 산하의 ‘사피온 코리아’와 합병하며 사업 추진의 원동력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올해 8월에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관련 학회인 핫칩스(Hot Chips 2025)에서 칩렛 방식과 HBM3e를 탑재한 AI 반도체 ‘리벨쿼드’를 세계 시장에 선보였다. 칩렛은 각각 서로 다른 공정에서 제조된 반도체를 하나의 칩으로 실장하는 방식이며, 리벨쿼드는 세계 최초로 UCIe-어드밴스드 표준으로 제조된 반도체다. HBM3e는 AI 가속기 내부에서 처리할 데이터를 보관하는 고대역폭 메모리다.
5년 만에 1조 9000억 원, 실사용 사례 확보에 초점
박성현 대표는 “리벨리온이 5년 만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덕분이다. 11년 간 미국에서 살고 초기 투자도 현지에서 받았지만, SK하이닉스나 삼성파운드리 등의 반도체 생태계가 한국에 있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라면서, “AI 반도체는 20년 전 메모리 반도체와 흡사하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메모리는 글로벌에서 경쟁력을 크게 인정받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인재들과 기업가 정신이 뭉쳐 지금은 세계 최고가 됐다. 리벨리온은 대한민국에서 기초체력을 쌓고 글로벌로 나아가자는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리벨리온은 KT와 싱가포르 국영 투자사 테마섹의 자회사인 파빌리온캐피탈로부터 시리즈 A 투자를 유지했고, 이후 시리즈 B에서는 KT와 KT클라우드, 사우디아람코는 물론 프랑스, 일본으로부터도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시리즈 C에서 삼성, Arm을 포함해 약 3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1조 9000억 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Arm 투자의 경우 아시아 기업 최초로 받은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리벨리온은 리벨쿼드 출시를 시작으로 글로벌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성현 대표는 “마샬 초이가 창립 멤버로 있던 삼바노바의 기업 가치는 약 10조 원 수준이다. 이제는 리벨리온이 이 사람들을 데려올 수 만큼 사업 가치가 커졌으며 글로벌로 나아가는 5년을 준비하고 있다”라면서, “지난 5년 간 내실을 다지며 사업의 기초체력과 도입 사례 등을 만드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이것을 가지고 글로벌 시장으로 가지고 나가자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도입사례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일본에 가서 NPU를 판매할 때 도입사례가 없으면 판매로 이어지기 어렵다. 리벨리온은 아톰으로 실사용자까지 대응하는 도입사례를 만들었고, 딥시크를 운용하는 화웨이 어센드 910을 제외하면 몇 안 되는 실사용 서비스를 이뤄낸 칩을 보유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제품의 성능 및 구성은 시장의 요구사항에 맞춰 구상한다. 박성현 대표는 “GPU의 요구 사항을 그대로 지원하는 것은 사실 어렵고, 오픈소스 생태계를 통해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시장에서 단일 카드 환경을 선호하는 것을 고려해 성능을 구상했다. 박성현 대표는 “예를 들어 리벨쿼드 단일 카드로 70B(700억 개 매개변수) LLM을 구동할 수 있고, 비용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인 환경이다. 엔비디아 GPU로는 H200과 비슷한 환경이다”라면서 “현재 미국의 여러 서비스 기업들과 개념증명(PoC)을 진행 중이라는 점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1세대 반도체 기업 답습하지 않은 ‘2세대 반도체 기업’ 주축 될 것”

마샬 초이 리벨리온 CBO는 “AI 시장은 학습, 추론으로 나뉘었으며 향후에 추론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게 내 견해다. 많은 기업들이 AI 서비스를 통한 수익화를 원하며 그 영역에 대응하는 것이 추론용 반도체다. 리벨리온은 설계 단계부터 추론 제공하는 것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취급하며, GPU가 이미 갖춰놓은 생태계에 잘 녹아들어서 추론 효율화와 대안 설루션을 제공한다”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선도기업이 점유율을 가져가지만 역설적이게도 AI 반도체 시장은 후발주자가 살아남는 상황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삼바노바는 1세대 반도체 기업이며, 리벨리온 같은 AI 반도체 기업들은 2세대에 해당한다. 1세대 반도체 기업들은 시장 자체가 작고 GPT 출시 이전에 등장한 편이다. 따라서 자체 반도체에만 최적화된 독점 소프트웨어가 제공됐고, 제품이 활용되지 않으면 기술 개발이 부채가 되어 역효과를 냈다. 실제로 독점 생태계를 구축하려 했던 그래프코어는 소프트뱅크에 인수됐으며, 삼바노바 역시 인텔과 인수협상이 진행 중이다.
2세대 반도체 기업들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위험 요소를 답습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샬 초이는 “리벨리온 AI 반도체의 특징은 처음부터 추론에 최적화했고, 바로 데이터센터에 적용할 수 있게 설계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AI 인프라를 확보하기 좋다. 두 번째로 사용자들은 GPU 생태계와 활용에 익숙하다. 이들이 쉽게 리벨리온 제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 프로젝트 생태계에 합류하고 있다. 세 번째는 강력한 효율성이다. 효율성이 떨어지면 기업 지출이 커지므로 뛰어난 효율을 갖도록 만들었다”라고 소개했다.

글로벌 사업 측면에서는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시장 진출에 집중한다. 마샬 초이는 “전 세계 다발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3개의 국가부터 공략한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제조업, 금융업 중심으로 돌아가며 고령화 문제 등으로 인해 AI 채택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채택률로 보자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 적극적으로 도전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처럼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는 국가고, 우리가 사우디 아람코에게 투자를 유치한 영향도 있다. 도입사례를 늘려 중동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미국은 이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며 당연히 진출해야 한다. 미국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AI 반도체 기업으로서 근본적인 경쟁력을 입증하는 방안이다. 초기에는 세 개 국가에 집중하고 어떤 산업에 집중할 것이고 어떤 수요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제한된 인력과 자본으로 가장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을 구현하겠다”라고 말했다.
2026년은 매출 창출에 사활, 대규모 계약 창출해야

질의응답에서 박성현 대표는 “신경망처리장치(NPU)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다른 차별적인 지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TPU는 구글 자체 설루션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개발한 제품인데, 리벨리온 제품은 실질적으로 많은 고객이 범용 추론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어서 더 사용자 친화적이고 추론 작업에도 유리하다. 이런 차별화가 리벨리온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글 TPU도 7세대에 이르러서야 결실을 낸 것처럼 리벨리온 역시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점도 덧붙였다. 다행히 리벨리온은 AI 기반 통화 요약 서비스 에이닷, AI 비전인식 기반 동물 진단 서비스 엑스칼리버, AI CCTV 설루션 라온로드 등을 통해 도입 사례의 시작을 끊은 상태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계 기업들과의 PoC도 진행 중이다. 다만 AWS나 구글 등 대규모 인프라 운용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하드웨어를 구축하고 있어 리벨리온 같은 기업이 파고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반도체는 이윤을 창출하기까지 많은 자원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이다. 리벨리온은 다른 반도체 기업들보다 빠르게 고성능 AI 가속기를 출시하고 글로벌에서도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등 상황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낙관적으로만 바라보기엔 AI 시장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당장 5년 전인 2020년에 그래프코어가 한국에 지사를 냈고, 2021년 KT와 NHN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다. 그러다 GPT가 등장하며 훈련 및 추론 반도체로 시장이 이원화되자 설 자리를 잃고 소프트뱅크에 합병됐다.
리벨리온은 앞서 거쳐간 AI 반도체 기업을 1세대로 보고, 2세대 반도체 기업으로서 똑같은 문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2026년에는 하이퍼스케일러, 빅테크 기업과의 협력 같은 큰 매출을 창출해 ‘결국 NPU가 옳았다’를 과감히 증명해 보이길 바란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