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경미한 교통사고, 무거운 형사처벌…뺑소니의 함정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우리는 블랙박스와 CCTV가 도로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차량의 움직임까지 데이터로 남기는 디지털 환경에서 운전합니다. 그러나 많은 운전자의 법 인식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가 '뺑소니(도주치상)'라는 중범죄로 발전하는 안타까운 사례를 현장에서 마주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형사법정에서 이들은 한결같이 "정말 경미한 사고였는데, 형사처벌이라니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운전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경미함'의 기준과 법이 규정하는 '경미함'의 기준은 완전히 다릅니다.
뺑소니의 역설: 왜 경미한 사고가 더 위험한가
뺑소니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 따라 가중 처벌하는 중대 범죄입니다. 일반인들도 사고 후 도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뺑소니 사건의 대부분은 심각한 사고가 아닌,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입니다. 심각한 사고와 경미한 사고 모두 뺑소니로 처벌한다는 사실은 똑같습니다.
즉 뺑소니의 성립 요건은 사고의 '크기'가 아니라 사고 후 '조치 의무' 이행 여부(도로교통법 제54조는 운전자에게 ▲사상자 구호 조치와 ▲인적 사항 제공 의무를 부과합니다)에 달려있습니다.
운전자들은 "이 정도로 다칠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법원이 인정하는 상해의 기준은 낮습니다. 전치 2주의 단순 염좌나 긴장도 명백한 상해입니다. 피해자가 2주 진단서를 제출하는 순간, 사건은 특가법상 '도주치상죄'로 전환되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는 중범죄의 영역으로 진입합니다.
"사고 난 줄 몰랐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각종 증거는 냉정합니다. 블랙박스 영상의 미세한 흔들림, 충격음, 차량의 급감속 기록 등은 운전자가 사고를 인지할 수 있었음을 증명하는 객관적 데이터입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를 근거로 '도주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합니다.
인식과 현실의 괴리: 실무에서 마주하는 사례들
실무에서 마주하는 대표적인 도주의 미필적 고의 사례를 제시하겠습니다.
▲졸음운전을 하다 경미한 접촉사고 충격으로 잠이 깼으나, 사고가 난 줄 모르고 그대로 주행, 뺑소니로 재판받은 사례 ▲일방통행로에서 자동차가 후진하는데 뒤따라오던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고 항의, 자동차를 앞서가려다 포트홀에 빠져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경우. 자동차 운전자는 오토바이 운전자 혼자 넘어졌다고 생각하고 그냥 갔는데 뺑소니로 재판받은 사례 ▲택시 기사가 유턴하는 과정에서 택시를 피하려던 오토바이가 넘어진 경우, 부딪치지 않아서 그냥 갔지만 뺑소니로 재판받은 사례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이와 경미한 접촉이 있었고, 괜찮냐고 물으니 어린이가 "괜찮다"고 말해 그냥 갔는데 뺑소니로 문제 된 사례 등이 있습니다.
필자도 주행 중 차로를 변경했는데, 뒤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추월해서 차량을 세우는 바람에 보복운전으로 긴장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사과했음에도 계속 따라오더니, "사고 났는데 왜 가냐"고 항의했고, 필자는 부딪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당시 확인 없이 현장을 벗어났다면 뺑소니로 몰릴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결론
사고는 경미했는데 형사처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법이 요구하는 기본 절차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보험처리가 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의 이행일 뿐, '형사처벌'의 면죄부가 아닙니다. 형사처벌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의적 판단 절대 금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뺑소니의 시작입니다. 인적 사항 제공 및 기록 확보: 피해자가 "괜찮다"고 해도 반드시 연락처나 명함을 제공해야 합니다. 의심 시 즉각 신고: 일단 사고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신고해야 합니다.
법은 운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행된 객관적인 조치 여부로 유무죄를 가립니다. "보험이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안일함을 버리고, 현장 프로토콜을 자동반사적으로 이행하는 것만이 예상치 못한 형사처벌의 함정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 좋지 않은 일은 잊고 싶고 피하고 싶지만 교통사고에서는 그러한 생각과 행동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