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구의 인터'스페이스'] 성수동 젠틀몬스터, 감각이 만든 가장 거대한 브루탈리즘
[IT동아]
구글이 투자한 브랜드
지난 6월, 구글은 젠틀몬스터의 모회사 아이아이컴바인드에 1억 달러, 한화로 약 1,450억 원을 투자했다.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약 4%의 지분을 확보했고, 양사는 AI 기반 스마트글라스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패션 브랜드가 글로벌 테크 기업의 파트너가 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구글이 주목한 건 젠틀몬스터의 '감각적 언어'였다. 젠틀몬스터는 오랫동안 시각, 후각, 미각, 촉각까지 인간의 감각 전체를 디자인해왔다. 안경에서 시작된 브랜드는 이제 감각을 설계하는 기업으로 진화했다. 테크가 기술의 언어를 쓴다면, 그들은 감각의 언어로 기술을 번역한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 감각의 총합
2025년 9월, 서울 성수동 한가운데 새로운 건물이 문을 열었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HAUS NOWHERE SEOUL)'. 젠틀몬스터가 수년간 구축해온 세계를 한데 모은 복합 공간이다.
1층은 전시와 협업이 열리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2층은 젠틀몬스터의 플래그십 매장, 3층에는 자매 브랜드인 탬버린즈·어티슈·누플랏, 5층에는 누데이크 티하우스가 자리한다. 각 층마다 향의 농도, 조명의 온도, 소리의 질감이 다르다. 층이 바뀔 때마다 향의 밀도, 빛의 각도, 공기의 속도도 다르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마치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탬버린즈(화장품/향수 코스메틱 브랜드)의 공간은 제목부터 서사다. 향의 조합과 설치물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어딘가 몽환적이고, 기이하게 따뜻하다. 그 속을 걷다 보면, 마치 개 한 마리의 꿈속에 들어온 듯 기억의 잔향이 길을 안내한다.
어티슈(패션/잡화 브랜드)의 공간은 전혀 다른 감정이다. 니트 대신 차가운 금속의 하드웨어가 벽과 천장, 전시대 사이에 놓여 있다. 각각의 금속은 조형적 언어처럼 배치되어 있고, 형태는 동양의 야사(夜史)에 등장하는 어떤 신화적 생물의 실루엣을 닮았다. 단단하고 차가운데 이상하게도 인간적인 이질감 속에서 어티슈는 물성과 정서의 균형을 찾아낸다.
누플랏(다이닝/식기 브랜드)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다. 그들의 식기들은 실용적인 도구가 아니라, 프랑스의 오래된 아트무비 속 한 장면에 내가 들어간 듯한 감각을 준다. 빛이 오브제 위를 미끄러질 때마다 장면이 흘러가고, 손끝이 오브제의 질감에 닿을 때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잠시 흐려진다. 식기가 아니라 장면, 오브제가 아니라 감정이다.
그리고 마지막, 5층의 누데이크 티하우스(디저트/티 브랜드). 그곳은 젠틀몬스터의 세계가 완성되는 마지막 장면이다. 문을 열면 거대한 파티, 아니 영화 속 무도회에 초대된 듯한 감정이 밀려온다. 높은 천장과 거울, 천천히 움직이는 조명, 디저트는 테이블 위의 주인공이 아니라 춤추는 조각 같다.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연극 속 인물처럼 존재한다. 이곳은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이 맞닿는 한 장면이다.

건물보다 브랜드가 먼저인 시대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외관은 금속과 유리가 겹겹이 접힌 형태다. 낮에는 햇빛을 반사하고, 밤에는 그림자를 쌓는다. 겉으로는 차갑지만, 안쪽으로는 섬세하다. 공장의 뼈대를 남기되 감각의 조율을 덧입였다. 이중적인 긴장은 젠틀몬스터의 태도와 닮아 있다.
설계는 젠틀몬스터의 오랜 파트너, 더시스템랩이 맡았다. 그들은 젠틀몬스터와 함께 성수의 도시 풍경을 재구성해왔다. 탬버린즈, 누데이크 플래그십을 비롯해 우란문화재단, 팩토리얼 성수(올리브영 N 성수 입점 건물), 코너 50 등 성수의 주요 건물 다수가 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더시스템랩은 건축을 '감정의 구조'로 본다. 낡은 콘크리트와 새로운 소재를 섞고, 빛의 결과 그림자의 방향으로 공간의 표정을 만든다. 그들의 방식은 파괴가 아니라 기억의 리뉴얼이다. 그래서 성수의 풍경은 공업의 잔향과 예술의 긴장이 공존한다.

젠틀몬스터의 다음 실험
젠틀몬스터는 이제 또 다른 감각의 층을 준비하고 있다. 공식 발표는 없지만, 청담과 성수 일대에서 호텔형 공간 설계 특허와 부지 매입이 포착되고 있다. 패션에서 향, 디저트로 이어진 감각의 흐름이 이제는 '머무는 경험'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Aēsop(코스메틱 브랜드)이 호텔에서 향을 전시하고, Acne(패션 브랜드)이 일상을 전시하듯, 젠틀몬스터의 호텔은 숙박이 아니라 하루의 감각을 체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침대의 높이, 조명의 각도, 음악의 속도까지 브랜드가 설계하는 세계. 그건 상업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시나리오다.
감각이 도시를 편집할 때
젠틀몬스터가 바꾼 것은 풍경이 아니라 공기의 결이다. 성수의 골목은 여전히 콘크리트와 벽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틈새에 흐르는 감정의 농도가 달라졌다. 빛이 유리벽에 닿는 속도, 음악이 골목을 빠져나오는 방식, 심지어 사람이 머무는 자세까지 도시의 리듬이 바뀌었다.
젠틀몬스터는 도시를 재개발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방식으로 도시의 감각 체계를 다시 써 내려갔다. 그들의 공간은 구매를 유도하지 않는다. 대신 '머무름'을 설계한다. 도시의 상업적 욕망을 감정의 질서로 치환하는 일, 그것이 젠틀몬스터가 성수에서 실험한 브랜딩의 방식이다.
이제 성수는 서울에서 가장 '느린 도시'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아니라, 감정이 번지는 속도로 공간이 작동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카페를 찾는 대신, 하루의 분위기를 찾는다. 그 자체가 도시의 새로운 소비 단위다.
도시가 브랜드를 품은 게 아니라, 브랜드가 도시를 하나의 감각으로 완성했다. 그 위에서 젠틀몬스터는 공간을 예술로, 예술을 경험으로, 그리고 경험을 다시 도시의 정서로 되돌리는 순환을 만든다.
성수의 본질은 땅값이 아니라 온도다. 빛이 닿는 각도, 향이 남는 거리,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 젠틀몬스터는 그 온도를 가장 정교하게 설계한 브랜드다. 그들의 건축은 결국 도시의 심박수를 바꿔놓았다.
글 / 정훈구 담장너머 대표 (plus82jh9@gmail.com)
담장너머의 공동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와 '굿디자인 어워즈'에 선정된 바 있으며, 다양한 공간기획 프로젝트를 통해 창의적인 공간과 경험을 제안, 구축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