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P 울산] 비어포트브로이 “성심당처럼 울산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 꿈꿔요”

강형석 redbk@itdonga.com

[IT동아 x 울산시 x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울산대학교에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를 마련했습니다. 유망한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돕는 곳입니다. IT동아는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사업’ 선정 기업을 소개하고 이들의 스케일업을 지원합니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한때 한국 맥주 시장은 대기업이 생산하는 라거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정부의 규제 완화와 주세법 개정은 시장의 판도를 뒤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 2019년에는 소규모 맥주 사업자의 생산 시설 규제 및 유통업 진출 규제까지 완화됐다. 이 변화의 물결을 따라 소비자들은 비로소 다양한 맥주를 맛보게 되었다.

획일적인 맛의 맥주가 주를 이루던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다채로운 맛과 향의 맥주를 찾아 나선다. 국내 주류 문화가 마시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취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 것으로 변화하면서 수제 맥주 시장은 개성과 품질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했다.

오세영 비어포트브로이 대표 / 출처=IT동아
오세영 비어포트브로이 대표 / 출처=IT동아

이런 흐름 속에서 울산을 거점으로 23년간 묵묵히 맥주를 빚어 온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2003년 설립된 비어포트브로이(Beerport breu)다. 소규모 맥주 양조장으로 출발한 비어포트브로이는 현재 18가지 맥주를 시장에 선보일 정도로 규모가 확대됐다. 맥주 유통을 위한 트레비어(Trevier) 브루어리 프로젝트도 운영 중이다. 2025년에는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 디자인 혁신을 단행하며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비어포트브로이의 역사와 향후 성장 계획을 듣기 위해 오세영(Oh Se-Young) 비어포트브로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호기심에 시작한 양조 사업이 ‘23년 역사’로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 해외여행을 나서며 지역마다 특색을 갖춘 양조장이 많은 것을 보고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안 되나 하는 생각이었죠. 마침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소규모 양조장 설립이 가능해졌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의 흥과 즐거움을 담은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맥주 양조 사업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2003년, 울산 남구 삼산동에 문을 연 브루펍 '트레비 브로이'는 23년 역사의 첫 장이다. 하지만 개척의 길은 험난했다. 자금 확보부터 설비 운영, 레시피 개발, 판매 등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았다. 오세영 대표는 "모든 것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게 숙제였습니다"라며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비어포트브로이가 운영하는 브루펍 트레비어 / 출처=비어포트브로이
비어포트브로이가 운영하는 브루펍 트레비어 / 출처=비어포트브로이

기술 노하우가 전무했던 비어포트브로이는 정석을 택했다. 맥주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독일 출신 브루마스터를 초빙해 조리법(레서피) 및 맥주 양조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독일 맥주는 물, 맥아, 효모, 홉 등 네 가지 재료만 사용하는 ‘맥주 순수령’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세영 대표는 독일 맥주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품질만큼은 한 치의 타협도 없다는 생각에 과감히 독일식 맥주 양조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비어포트브로이가 울산 대표 맥주 브랜드로 깊이 뿌리내리는 자산이 되었다. 오세영 대표는 "독일식 맥주 양조 시스템이 때로는 우리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이 기본기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단단한 토대 위에서 비어포트브로이는 창의성을 과감하게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 3가지 독일 스타일로 시작했던 맥주는 이제 아메리칸, 브리티시, 벨기에 스타일 등을 아우르는 18가지 라인업으로 확장되었다.

‘즐거움 속에 술이 있다’ 소비 문화 혁신에 앞장서다

비어포트브로이는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매출을 위해서는 대량으로 판매하는 게 유리하지만, 소비자가 즐기면서 마시는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철학이 반영됐다. 오세영 대표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맥주는 스트레스 해소를 보조하는 수단이죠. 공간이 즐겁기만 하면 술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라고 말했다.

오세영 대표의 철학은 생산과 운영에 반영됐다. 소비를 위한 주류가 아니라 가치 있는 한 잔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맥주 개발 못지 않게 음식 개발에도 힘쓰는 이유다.

오세영 대표가 추천하는 비어포트브로이의 대표 음식은 브레드 퐁듀다. 맥주의 근원이 액체 빵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개발한 메뉴로, 빵을 치즈 소스에 찍어 먹는 스위스 음식을 국내 환경에 맞춰 개발했다. 찍어 먹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양조장과 브루펍을 함께 운영하는 트레비어 언양본점 / 출처=비어포트브로이
양조장과 브루펍을 함께 운영하는 트레비어 언양본점 / 출처=비어포트브로이

독일식 돼지고기 요리인 슈바인스학세도 인기다. 돼지 다리 부위로 만드는 음식으로 한국적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별도 훈연 과정을 거친다. 슈바인스학세와 어울리는 훈연 맥주도 개발했다. 누룽지를 품은 치킨 요리는 한식을 선호하는 고객에게 인기다. 오세영 대표는 무거운 술에는 가벼운 음식, 가벼운 술에는 무거운 음식이 잘 어울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맥주 본연의 맛을 느끼면서 음식도 즐길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비어포트브로이의 대표 음식인 브레드 퐁듀(좌)와 슈바인스학세(우) / 출처=비어포트브로이
비어포트브로이의 대표 음식인 브레드 퐁듀(좌)와 슈바인스학세(우) / 출처=비어포트브로이

비어포트브로이는 맥주 주문 방식에도 차별화를 꾀했다. 일반 주점은 한 잔 또는 한 병씩 주문하거나 피쳐(대용량)로 주문한다. 하지만 비어포트브로이는 주유소처럼 따른 만큼 금액을 지불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마신만큼 비용을 내기 때문에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 고객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 시스템은 주류 박람회에서 우연히 접한 기계를 매장에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초기 설치 비용이 높아 가맹점의 창업 비용이 올라가는 단점 보다 합리적 소비 문화에 발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히 도입했다는 게 오세영 대표의 설명이다.

‘낡은 옷을 벗고, 힙한 장인으로’ 디자인 통한 이미지 혁신 시도

23년이라는 세월은 자부심인 동시에 무게감이기도 했다. 비어포트브로이는 내부 의견을 거친 후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 구축하기로 했다. 젊은 층에게 다가가기 위한 결정이다. 오세영 대표는 “23년을 운영하다 보니 회사도 나이를 먹었어요. 맥주는 항상 새롭고 신선하고 통통 튀는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데 우리는 그대로인 게 아닐까 생각했죠. 그래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로 마음 먹었죠”라고 말했다.

이미지 변신은 쉽지 않았다. 디자인과 마케팅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고민의 돌파구는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디자인 지원 사업에서 찾았다. 비어포트브로이는 지원 사업을 통해 디자인과 마케팅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이미지 변화를 모색했다. 오세영 대표는 “단순히 디자인만 바꾸는 줄 알았는데, 디자인 개념 자체를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개인 업무와 병행하기 쉽지 않았지만 디자인과 마케팅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디자인 지원 사업에 참가한 비어포트브로이의 협업 결과물. 비어포트브로이는 그래피디자인과 협업해 트레비어 로고와 캔 디자인을 혁신했다 / 출처=IT동아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디자인 지원 사업에 참가한 비어포트브로이의 협업 결과물. 비어포트브로이는 그래피디자인과 협업해 트레비어 로고와 캔 디자인을 혁신했다 / 출처=IT동아

비어포트브로이는 리브랜딩 파트너로 디자인 전문기업 '그래피디자인(GrafiDesign)'을 선정했다. 맥주 업계와 협업한 경험이 선정 이유다. 수제 맥주와 대기업 맥주의 시장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기본 감각과 지식을 갖추고 있어 비어포트브로이의 철학을 잘 반영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그래피디자인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치며 협업은 원만하게 진행됐고, 장인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최종 선택했다. 울산이 산업도시인 만큼 제조업의 장인정신을 담되, 친근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파격적인 디자인 탓일까? 새로운 디자인은 비어포트브로이 내부 직원들의 우려를 샀다.

오세영 대표는 "그래피디자인 측은 젊은 직원들의 눈높이에 맞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설명해줬습니다. 무엇보다 변화하려면 과감해야 된다고 강조하더군요.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감을 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문가를 믿고 과감히 변화를 받아들였죠. 사실 너무 파격적으로 바뀌니까 해도 되냐, 이미지만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많았습니다. 아직 새 디자인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분도 존재하지만 열심히 설득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성심당처럼 울산 대표하는 아이콘 되고파

비어포트브로이의 오랜 철학과 양조 역량은 성과로 이어진다. 먼저 임페리얼 스타우트가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맥주 크래프트 에일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9년부터 5년 연속 대상 수상을 포함하면 6번째 수상이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여느 흑맥주와 달리 묵직하고 풍부한 맛이 특징이다. 위스키처럼 조금씩 음미하며 마시는 스타일로 에스프레소에 비유할 만큼 진한 풍미를 갖췄다는 게 오세영 대표 측 설명이다.

트레비어 가맹점 운영도 순조롭다. 2025년 기준 울산 지역 8개를 중심으로 경주, 대구, 춘천 등 전국으로 확장 중이다. 맥주 유통 사업도 울산 지역 외에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오세영 비어포트브로이 대표 / 출처=IT동아
오세영 비어포트브로이 대표 / 출처=IT동아

비어포트브로이의 목표는 울산을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이다. 대전 성심당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오세영 대표의 꿈이다. 해외 진출은 국내 입지를 충분히 다진 이후에 진행할 방침이다. 오세영 대표는 “지역을 대표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대한민국 내에서 자연스레 인지도를 얻을 겁니다. 해외는 그 때 진출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울산 지역과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양조장이 위치한 언양에서 생산된 쌀로 '우리 쌀 라거'를 개발했고, 지역 특산물인 배를 활용해 시즌 한정 맥주를 출시하는 등 지역과 상생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한다. 현재 맥주 양조에 최적화된 재료를 쓰지만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맥주 개발은 멈추지 않을 방침이다.

관광 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양조장에서 가까운 점을 활용, 양조장 투어와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했다. 비어포트브로이는 장기적으로 맥주 마을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자동차와 조선업으로 대표되는 울산의 이미지를 넘어 공예,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새로운 도시 내러티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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