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신차 하자 발생 시 교환·환불에 대한 법적 기준과 현실적 대응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신차 하자 발생 시 교환·환불 법적 기준과 현실적 어려움
지난 2015년 벤츠 신차를 구매한 소비자가 주행 중 반복적으로 시동이 꺼지는 결함으로 인해 판매사에 차량 환불 또는 교환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제조사가 이를 거부하자 분노한 차주는 판매점 앞에서 직접 자신의 차량을 골프채로 사정없이 내리칩니다. 이른바 '벤츠 골프채 파손 사건' 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소비자 불만이 아니라, 제조사와 수입·판매사의 대응 문제, 그리고 결함 차량에 대한 환불·교환 제도의 현실을 드러내는 계기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9년,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됐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신차 하자 발생 시 교환 및 환불을 요구할 법적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법으로 하자 차량을 교환 또는 환불받는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법적 요구 사항과 복잡한 절차로 인해 소비자가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 기고에서는 신차 하자 발생 시 교환·환불을 위한 법적 근거와 기준을 살펴보고, 현행 제도의 한계 및 실효성 있는 대응 전략을 제시합니다.
한국형 레몬법의 핵심 요건
한국형 레몬법(자동차관리법 제47조의2)은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의 중재를 거쳐 결함이 있는 차량을 교환 또는 환불받도록 규정한 제도입니다. 심의위의 중재 결정은 법원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강력한 구제 수단입니다. 하지만 레몬법을 적용받기 위해서 몇 가지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시간과 거리의 제약…1년 이내, 2만km 미만 :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입니다. 차량 인도 후 1년 이내이며, 주행거리가 2만km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중대한 하자' vs '일반 하자' : 레몬법 적용의 핵심은 수리 횟수와 기간입니다. 여기서 하자의 성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집니다. 중대한 하자는 동일 증상으로 2회 수리 후 재발 시(즉, 3회째 발생), 일반 하자는 동일 증상으로 3회 수리 후 재발 시(즉, 4회째 발생)로 규정합니다. 하자의 종류와 관계없이 차량이 고장(하자)으로 정비소에 있던 기간이 30일을 넘으면,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요건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하자 재발 통보
많은 소비자가 간과하는 치명적인 절차적 요건입니다. 레몬법은 소비자에게 '하자 재발 통보' 의무를 부과합니다. 중대한 하자는 1회, 일반 하자는 2회 수리 후 동일 하자가 재발했을 때, 반드시 제조사에 서면(내용증명 등)으로 이 사실을 통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법의 약속과 거리가 멉니다. 2019년부터 2024년 6월까지 중재 신청 2840건 중 실제 중재판정으로 이뤄진 하자 신차 교환·환불은 단 15건, 0.7%에 불과합니다. 중재판정이 아닌 제조사와의 자발적 합의까지 포함해도 교환·환불은 약 22%에 그칩니다.
'동일 증상' 해석을 둘러싼 공방…정보 비대칭과 입증의 어려움
제조사는 종종 증상은 같아도 원인이 다르다며 '동일 하자'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시동 꺼짐이라도 첫 번째는 연료 펌프 문제, 두 번째는 ECU 오류라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또 하자 추정 기간이 연장됐지만, 여전히 기술적 정보는 제조사에 있습니다. 특히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결함이나 소프트웨어 로그 데이터에 소비자가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소비자의 대응 전략
소비자는 결함 증거를 확보하고 법적 절차를 준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제조사와 중재 전 합의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신차 하자 발생 시 소비자는 수리 기록, 정비명세서, 사진 및 동영상 등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하자 발생 후 교환·환불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하자 재발 통보서를 내용증명으로 제조사에 발송해야 합니다. 이 절차를 준수하지 않으면 중재 신청이 기각될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레몬법 시행 후 실제 교환·환불 '판정'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 이것만 보면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해결 건수 중 상당수가 '중재 전 합의'로 이뤄집니다. 제조사는 공식적인 판정 사례(선례)가 남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결론
자동차는 갈수록 IT 기술의 집약체로 발전합니다. 자율주행, OTA(무선 업데이트), 복잡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이동의 경험을 혁신했지만, 동시에 '결함'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과거 엔진오일 누유나 변속기 충격 같은 물리적 하자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원인 불명의 소프트웨어 오류나 센서 오작동이 운전자를 위협합니다. 소비자들이 레몬법 도입에도 정보의 비대칭과 입증의 어려움으로 법에서 규정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제조사가 무상수리 보증기간을 확대하며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정책은 영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처럼 제조사와 소비자가 서로 법적인 다툼을 하기 보다는 결함의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고 전환적인 방향으로 다툼의 근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