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버넷 교수 “주의력 상실의 시대, AI로부터 안식처 마련해야” [GPA 2025]
[IT동아 김예지 기자]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주의력(집중력)을 착취하는 시대,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착취다. 각국의 규제 기관은 이로부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인간성 회복을 이뤄낼 안식처(sanctuary)를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지난 9월 17일 제47차 글로벌 프라이버시 총회(GPA 2025)에 기조연설을 위해 방한한 그레이엄 버넷(D. Graham Burnett)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가 IT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GPA 2025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위원장 고학수)가 9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한 세계 최대 규모 국제 협의체다. 올해는 세계 95개국 148개 감독 기관이 모여 AI 시대 개인정보 보호 이슈를 논의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버넷 교수는 주의력 상실의 시대적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막기 위한 국제적 연대와 규제 기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역사 및 과학사 분야 석좌교수인 버넷 교수는 인간의 주의력 연구를 지속하며 AI가 인문학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왔다. 지난 4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기고한 칼럼 ‘인문학은 인공지능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Will the Humanities Survive Artificial Intelligence?)’로 기술이 우리 삶을 바꾸는 방식에 대한 통념에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현재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비영리 기관 ‘스트로더 급진적 주의학교(Strother School of Radical Attention)’의 공동 설립자이자 이사로 활동 중이다.
우리의 주의력은 상품이 되었다
AI는 전례 없는 편리함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주의력을 빠르게 착취하며 중독 현상을 심화시켰다. 이제 우리의 주의력은 상품이 됐다. 즉, 어디에 시선을 두는지가 곧 돈이 되는 시대다. 버넷 교수는 땅속 자원을 캐내듯 인간의 주의력을 추출하는 ‘인간 채굴(Human Fracking)’ 문제를 지적하며, 이 현상이 단절과 고질적인 주의력 상실, 문해력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버넷 교수는 세계 빅테크가 이 강력한 도구로 주의력 착취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AI가 주의력에 대해 갖고 있는 함의는 굉장히 크다”며, “AI는 인간보다 똑똑해 사람의 두뇌와 감각까지 능가한다. 많은 사람이 주의력 저하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만, 사실 이는 구조적 착취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새로운 착취 가능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10살짜리가 하루에 9시간씩 모니터를 보는 현실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옥수수밭으로 단일화된 켄자스 평야와 250종의 야생화가 풍요롭게 자라던 과거의 평야를 비유로 들었다.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인간의 주의력을 특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유도한다. 이는 옥수수밭처럼 단조로운 문화를 초래하며,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탐구할 수 있는 야생화같은 주의력의 다양성을 잃게 만들었다.
물론 버넷 교수는 기술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기술이 해로운 게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인간을 착취하는 경제 모델이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이 아닌 노동자를 착취하는 시스템이 문제였던 것과 같다.
안식처를 제공하고 유지하라
버넷 교수는 결국 주의력 보호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주의는 의식적인 행위며, 획일화된 사회에서 사람의 다양성을 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이 집단을 이뤄 힘을 모았듯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의력 착취를 막기 위해 새로운 규제와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GPA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PIPC) 등 규제 기관의 역할이 단순히 개인 데이터 유출을 막는 것을 넘어 사람의 주의력을 지켜내는 안식처를 만들고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프라이버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본질적으로 개인을 국가나 기업의 개입으로부터 지켜내는 개념이며, 궁극적으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안식처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버넷 교수는 학교를 예시로 들었다. 학교는 무차별적인 착취로부터 보호받는 공간이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구하는 포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이미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2018년 브라질에서 시작된 ‘주의력의 친구들(Friends of Attention)’을 소개했다. 이들은 연구(study), 조직화(organizing), 안식처(sanctuary)를 주의력 보호의 세 가지 축으로 강조하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어텐시티(attensity)’라는 책을 내년 중 발간할 예정이다.
주의력의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해
버넷 교수의 화두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자유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주의력을 무분별하게 채굴하는 시스템에 맞서 집단적인 행동과 제도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몇 시간의 집중력이 아니라, 삶과 경험을 풍요롭게 할 주의력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과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
결국 버넷 교수는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을 배척이 아닌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그는 새로운 기계와 노동 형태가 출현했던 산업혁명을 극복했듯이 이 또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주의력을 둘 자유가 있고 이를 스스로 알고 있다면 착취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을 힘이 있다. 그리고 버넷 교수가 주장했듯 정부와 규제 기관, 학교가 이를 도와야 한다. 우리는 주의력을 착취 당하지 않고 인간의 다양성과 존재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IT동아 김예지 기자 (y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