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AI가 아니었다. 정체는 '앵귈라?'
[IT동아 김영우 기자] 요즘 스타트업이나 IT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독특한 패턴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도메인이다. perplexity.ai, github.io, twitch.tv, docker.sh처럼 기술 키워드를 연상시키는 2~3자리 도메인이 유독 많다. 인공지능(AI), 입출력(IO), 방송(TV), 쉘(Shell) 같은 기술 용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특정 국가를 상징하는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 country code Top Level Domain)'이다.
예를 들어 .ai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앵귈라(Anguilla), .io는 인도양 영국령 차고스 제도, .tv는 남태평양의 투발루(Tuvalu), .sh는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 소속이다.
ccTLD는 각 국가나 지역에 할당된 2자리 도메인으로, 원래는 해당 국가의 온라인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부 ccTLD가 특정 단어나 의미를 연상시키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ai 도메인의 경우, AI 붐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ai 도메인을 등록하거나 갱신할 때마다 앵귈라 정부에 수수료가 들어온다. BBC 보도에 따르면 앵귈라 정부는 2024년 약 3900만 달러(약 544억 원)의 도메인 수익을 올렸으며, 이는 정부 전체 재정 수입의 약 23%에 해당한다.
투발루 역시 .tv 도메인으로 연간 5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아마존의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Twitch가 twitch.tv 도메인을 사용하면서 투발루의 도메인 수익은 크게 늘어났다. 인구 1만 2000명에 불과한 이 나라에게는 상당한 재정 수입원이다.
검색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도메인’
사실 구글, 네이버 등의 검색엔진이 대중화된 지금, 도메인 주소를 직접 입력하는 사용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 검색을 통해 원하는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SNS, 앱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특별한 도메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브랜드 정체성 때문이다. 'company.ai'처럼 기업의 사업 분야와 직관적으로 연결되는 도메인은 그 자체로 강력한 브랜딩 도구가 된다. 명함이나 광고에서 도메인만 봐도 어떤 회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투자자나 파트너사에게 주는 인상이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세련된 도메인이 회사의 기술력이나 센스를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지기도 한다. 실제 성과와는 별개로 첫인상에서 '트렌디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세 번째는 포화 상태에 이른 .com 도메인의 이용량이다. 이미 대부분의 단어가 등록되어 있어 원하는 도메인을 찾기 어렵다. 반면 ccTLD는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고, 특정 산업과 연관된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실제로 도메인 시장에서는 여전히 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허브스팟 공동창업자 다르메시 샤는 you.ai 주소를 70만 달러(약 9억 7000만 원)에 구입했으며, cloud.ai는 60만 달러, law.ai는 35만 달러에 거래됐다. 2019년에는 voice.com이 3000만 달러, 2023년에는 ai.com이 1100만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다.
특이 도메인 도입에 따르는 리스크도 고려해야
ccTLD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리스크가 있다. 바로 해당 국가의 정책 변화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도메인 사용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ly(리비아) 도메인의 경우, 2010년 리비아 정부가 음란 콘텐츠를 이유로 vb.ly라는 단축 URL 서비스를 예고 없이 삭제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이 서비스를 이용하던 수많은 웹사이트가 갑작스럽게 접속 불가 상태가 되면서 큰 혼란이 일었다.
.io 도메인도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 도메인은 영국령 인도양 지역에 속하지만, 모리셔스와 영국 간에는 차고스 제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만약 땅 주인이 바뀌면 도메인 관리 주체도 변경될 수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제재의 영향으로 .ru나 .su 도메인을 사용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도메인을 변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들 도메인은 러시아 시장 진출이나 구 소련 지역 서비스를 위해 사용되던 것이지만, 정치적 이미지가 비즈니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ccTLD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해당 국가들이 도메인 가격을 인상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앵귈라의 경우 .ai 도메인 수요 급증으로 등록 및 갱신 비용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현재 .ai 도메인의 연간 갱신 비용은 140달러 내외로, 일반적인 .com 도메인(약 15달러)보다 10배 가까이 비싸다고 한다.
투발루 역시 .tv 도메인의 프리미엄 요금제를 도입해 인기 있는 도메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운영비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
키워드+kr 결합 신규 도메인 도입도 고려할 만
한편, 이런 해외 ccTLD의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비슷한 브랜딩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이 국내에 등장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지난해 12월 출시한 산업 키워드+한국 국가코드(kr)를 결합한 3단계 구성의 신규 도메인들이 그것이다. 'ai.kr', 'io.kr', 'it.kr', 'me.kr' 같은 형태로, 기존 ccTLD의 브랜딩 효과는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안정적인 법적 체계 하에서 관리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에게는 정책 예측 가능성이 높고, 한국어 서비스 지원이나 분쟁 해결 과정에서도 유리하다. ccTLD를 고려하는 기업이라면 해당 국가의 정치적 안정성, 도메인 가격 정책의 투명성, DNS 서버의 글로벌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결정하는 것이 좋다. 특히 중요한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비상 상황에 대비한 백업 계획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도메인 전략의 변화, 어떻게 대처할까?
ccTLD를 활용한 창의적인 도메인 전략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AI, 블록체인,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기술 분야가 부상하면서 관련 ccTLD의 인기도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기업들의 ccTLD 선택 기준도 점차 정교해지고 있다. 단순한 브랜딩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안정성과 비용 효율성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국내 도메인 등록 시장 1위 업체인 가비아의 김상민 도메인사업팀장은 "도메인의 검색엔진 노출이나 트래픽 유입 효과는 예전만큼 크지 않지만, 브랜드 아이덴티티 측면에서는 여전히 중요하다"며 "특히 B2B 기업이나 투자 유치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전문성을 어필하는 수단으로 ccTLD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만 최근에는 단순한 브랜딩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gTLD(일반 최상위 도메인)와 ccTLD, 그리고 국가별 3단계 도메인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ccTLD를 선택할 때는 단순한 브랜딩 효과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정책 안정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며, 특히 중요한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해당 국가의 법적 규제나 정치적 안정성까지 검토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기술 기업들의 도메인 선택이 실질적인 비즈니스 효과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와 리스크 관리가 결합된 전략적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균형 잡힌 접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