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농가 위한 특산품 가공의 길 여는 '한국특산물유통' [농업이 IT(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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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남시현 기자] "충남 천안의 특산물 호두의 원물 가격은 대개 100g에 2800원 가량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호두과자로 가공하면 같은 무게에 9000원까지 가격이 오릅니다. 호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여러 특산물은 원물과 가공품의 가격 차이가 큽니다. 심하면 이 차이가 100배까지 나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 특산물로 시장에 없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 부가가치를 만들려는 생각에 사업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박경호 한국특산물유통 대표의 집안은 대대손손 농사를 지어왔고, 지금도 일가 친척들이 예산을 중심으로 농사나 과수원 등을 운영한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즈음 그의 부모님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농업을 그만뒀다. 박경호 대표 역시 학업에 열중하느라 자연스레 농삿일과 멀어졌다.
그러던 그가 지금 농업 업계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유는 산림청 지리적표시제 등록단체 경영실태조사의 담당자로 활동하면서다. 당시 전국 특산물 단체의 경영 실태조사를 담당하며 전국 농산물 유통 관련 현황을 파악했는데,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특산물을 다뤄도 실제 농가 수익은 크게 부족했다. 제품은 많은데 팔지 못하거나, 어떻게 가공할지 모르는 게 가격 경쟁력 악화로 이어졌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2019년 12월, 한국특산물유통을 창업했다.
한국특산물유통, 5년 차 유통업과 2년 차 특산물 제조의 조합
그도 처음에는 유통 경로 개선에 초점을 맞췄고, 5년 만에 기획전 매출 70억 원의 성과를 이뤄냈다. 박경호 대표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산지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대표로 자사몰 '아토람 마켓'을 운영하며, 네이버 나란히 가게의 '청정 임산물 마켓' 기획전도 운영 대행 중이다. 직접 협약을 맺은 농가 단체와 영농조합법인, 지역 농업 대표의 상품을 판매하는데 지금은 농산물 120곳, 임산물 55곳, 수산물 25곳으로 협약 범위를 넓혔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5년 차에 접어들며 사업의 방향을 유통 중심에서 특산물 가공으로 확장한다. 매출은 매년 상승하는데 비해 농가로 돌아가는 수익이 크지 않았던 탓이다. 박경호 대표는 “기존에도 한과나 다과류 등의 수제 제품을 만들어봤다. 다만 대량생산이 어렵고 제품의 균일성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농산물을 복합 가공해서 이윤을 늘리는 방식을 고민했고, 때마침 농촌진흥청에서 진행하는 농식품벤처유통사업에 선정돼 전환기를 맞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특산물유통은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에 특산물 가공 공장을, 충남 아산에 연구소를 각각 세우고 올해 안에 가동한다. 충북 진천 공장은 진천군과 함께 특산물 쌀로 라테, 제과제빵 등 쌀 가공품을 만든다. 충남 아산 공장은 특산물 땅콩으로 버터를, 통밀로 저당 제과제빵류를 만드는 거점 역할을 한다. 충남 예산 연구소는 특산물 가공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곳이다. 자사몰과 네이버 나란히 가게에서 특산물을 유통하는 한편, 이들 특산물의 가공품 시장을 넓히는 것이 박경호 대표의 전략이다.
“특산물 가공은 농가 상생을 위한 필수 과제”
박경호 대표는 특산물 가공을 수익 증대는 물론, 향후 농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로 본다. 박경호 대표는 “충북 보은은 대추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추는 1년에 한 달 정도만 원물로 팔 수 있고, 이후에는 건대추 이외에 활용할 구석이 없다. 한 달안에 못 판 원물은 건대추로 가공하고 약재상이나 가공식품 회사에 헐값에 넘겨야 한다. 대추를 1억원 어치를 생산해도 절반 정도만 팔고 나머지는 사실상 떨이로 팔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직접 연구개발을 통해 건대추를 캐러멜로 가공하는 방안을 만들었고, 농가들이 1년 내내 매출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한국특산물유통의 온라인 유통 데이터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공품을 찾고, 우리가 직접 개발하고 생산해서 유통까지 진행하는 방안이 한국특산물유통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판매되는 특산물이 너무나도 많은데, 어떤 과정을 거쳐 상품화할까? 박경호 대표는 “지난 5년간 쌓은 소비자 데이터를 토대로 특산물 가공품 신제품을 기획하고, 협약한 특산물 생산 단체와 협의한다. 이때 도움이 필요한 곳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예를 들어 최근 내놓은 산딸기 버터도 올해 산불 피해가 큰 경북 지역의 피해농가를 대상으로 상품을 수급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 180여 곳 단체와 5만여 곳의 농가로부터 특산물을 수급해 가공품을 만든 후에는 한국특산물유통이 가진 유통 판로 20여 곳에서 판매한다. 이 유통 판로는 대기업 폐쇄몰과 온라인 기획전, 기관 납품에서부터 수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개척한 판매 경로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한국특산물유통은 2년 연속으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해외수출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한 업체에 1년만 제공하나, 한국특산물유통의 제품 다양성과 역량을 높게 평가해 최초로 2년 연속 선정된 사례다. 또 중소벤처기업부 해외지사화 사업도 선정돼 카자흐스탄으로 수출 중이며, 네이버 이외에도 카카오메이커스에도 입점했다. 이를 활용해 원물 유통은 물론 산딸기 버터나 과일 진액(엑기스) 기반 상품 같은 특산물도 유통하는 것이다.
농림부의 벤처육성 지원, 농업진흥원의 기술이전 등 큰 도움
유통 산업에서 특산물 제조사로 거듭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박경호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 벤처육성사업에 세차례나 지원한 끝에 붙었다. 직접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욕심이 있어서 지원했고, 앞서 연이은 불합격에도 계속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선정의 이유였다. 덕분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재선정돼 지원을 받고 있다. 특산물 가공품 제조 과정에서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도움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한국농업기술진흥원으로부터 신규 사업에 필요한 많은 지원을 받았다. 제품 개발이나 레시피, 제품 포장 및 디자인, 해썹(HACCP) 등 필요한 인증 절차 등을 물어보면 관련 전문가를 섭외해 교육도 주선한다. 컨설팅이나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한 수요 조사도 제공한다. 제품 개발이나 식품쪽은 모르는 부분이 많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올해 두 개의 제조 공장을 차릴 수 있던 것도 한국농업기술진흥원에서 제품개발을 지원해 준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제조 사업 역시 기술이전으로부터 시작했다. 박경호 대표는 “충북 진천 농업기술센터로부터 블루베리, 멜론을 활용한 농축액 베이스 개발 기술을 이전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베리에이드를 만드는 게 시작이고, 꾸준히 관련 제조 교육 등을 통해 고도화할 예정이다. 농축액인 만큼 잼이나 스프레드, 버터도 개발할 여지가 있다. 노하우가 쌓이면 다른 과일이나 원물을 가공해 농가들을 돕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도 투자받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
한국특산물유통은 한 철에만 머무르는 농가의 수익을 사시사철로 만들고, 제값을 받기 어려운 농산품을 가공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든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회적 기업으로의 사명도 갖고 있다. 앞서 2023년에는 경력단절 여성들과 함께 ‘예당다담길’을 운영하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이번에 구축하는 충남 아산공장도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참여하는 자활형 일터로 운영된다.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으로 민관이 협업하여 자활형 근로를 진행하는 사업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사회적 기업으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서 투자까지 이끌어내는 것을 내년 목표로 잡았다. 박경호 대표는 “사회적 기업으로는 이윤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투자를 자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특산물유통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내년까지는 초기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재무 관리 등을 거쳐 시리즈 A 유치까지 생각 중이다. 이미 물류 시스템, 객체 인식 관련한 특허를 개발 중이어서 이를 기반으로 특산품 유통부터 개발, 제조, 생산, 마케팅까지 모두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라면서, “한국특산물유통과 함께하는 5만 곳의 농가와 함께 성장하고, 모두에게 이윤이 돌아갈 수 있는 상생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