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삼성전자 '마이크로 RGB TV', 4490만원의 가치는 있을까?
[IT동아 김영우 기자] 본지 편집부에는 하루에만 수십 건을 넘는 보도자료가 온다. 대부분 새로운 제품, 혹은 서비스 출시 관련 소식이다. 편집부는 이 중에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 몇 개를 추려 기사화한다. 다만, 기업에서 보내준 보도자료 원문에는 전문 용어, 혹은 해당 기업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용어가 다수 포함되기 마련이다. 이런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본지는 보도자료를 해설하는 기획 기사인 '뉴스줌인'을 준비했다.
출처: 삼성전자(2025년 8월 12일)
제목: 삼성전자, 세계 최초 '마이크로 RGB TV' 출시…프리미엄 TV 기술의 새 기준 제시
요약: 삼성전자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을 집약한 '마이크로 RGB TV'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115형 대화면에 100㎛(마이크로미터, 백만분의 1미터) 이하 크기의 초미세 RGB LED를 배열한 백라이트 기술을 적용해 빨강, 초록, 파랑 색상을 각각 독립적으로 정밀 제어할 수 있다. 'Micro RGB AI 엔진'을 탑재해 AI가 콘텐츠를 실시간 분석하고 색감을 조정하며, 저화질 콘텐츠를 고화질로 업그레이드하는 'AI 업스케일링 프로', 빠른 움직임 보정을 위한 'AI 모션 인핸서 프로' 등을 지원한다. 115형 모델의 출고가는 4490만원이며, 한국을 시작으로 미국 등에서 순차 출시 예정이다.
해설: TV의 백라이트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백라이트는 LCD TV에서 액정 패널 뒤쪽에 위치해 앞으로 빛을 비춰주는 광원을 말한다. 액정 자체는 빛을 내지 못하므로 뒤에서 빛을 비춰줘야 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백라이트다.
초기 LCD TV는 형광등 방식의 CCFL(Cold Cathode Fluorescent Lamp) 백라이트를 사용했으나, 이후 수명과 화질이 더 개선된 LED 백라이트로 발전했다. 더 나아가 삼성전자는 QLED 기술을 통해 양자점을 활용한 색 표현력 향상을 이뤘고, 최근에는 미니 LED를 통해 더욱 세밀한 로컬 디밍(구역별로 세밀하게 백라이트를 제어해 화질을 높이는 기술)을 구현했다.
이번에 출시된 마이크로 RGB TV도 이런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제품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분류의 제품인 것처럼 강조하고 있지만, 이보다는 기존 LCD 기술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결과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사실 삼성전자는 예전에도 이런 식의 마케팅을 해온 바 있다. 2010년대 초반 기존 CCFL 백라이트를 LED로 교체한 LCD TV를 'LED TV'라는 이름으로 출시했고, 2017년부터는 양자점 필름을 추가한 LCD TV를 'QLED TV'라고 명명했다. 이들 제품 역시 엄밀히 따지면 LCD TV의 개선된 버전이었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이를 LCD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기술로 인식하곤 했다.
기존 백라이트가 흰색 LED에 컬러 필터를 결합해 색상을 만들어냈다면, 마이크로 RGB TV는 빨강, 초록, 파랑 LED를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한다. 100㎛ 이하의 극소형 LED를 촘촘히 배열해 픽셀 단위에 가까운 정밀 제어가 가능해진 것은 분명한 진보지만, 여전히 액정 패널과 백라이트로 구성된 LCD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마이크로 RGB TV'라는 이름이 마치 마이크로 LED TV와 유사한 기술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삼성전자가 이미 판매하고 있는 미니 LED TV인 '네오 QLED TV'의 발전형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네오 QLED TV도 기존보다 작은 크기의 LED를 다수 배치한 로컬 디밍을 구현해 화질을 개선했는데, 마이크로 RGB TV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LED 크기를 더욱 줄이고 RGB 색상별로 독립 제어가 가능하도록 설계해 화질을 높였다.
반면 OLED TV나 마이크로 LED TV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OLED는 각 픽셀이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 발광 다이오드로 구성되어 백라이트가 아예 필요 없으며, 마이크로 LED 역시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LED가 각 픽셀을 직접 구성한다. 이들은 LCD의 기본 구조를 완전히 벗어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마이크로 RGB TV'도 과거 'LED TV', 'QLED TV'와 마찬가지로 LCD의 한계를 개선한 제품을 마치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인 것처럼 강조하는 삼성전자의 일관된 마케팅 전략으로 해석된다. 국제전기통신연합의 BT2020 면적률 100% 달성과 독일 VDE의 'Micro RGB Precision Color' 인증이 보여주듯 화질 개선 효과는 분명하지만, 소비자들이 이를 OLED나 마이크로 LED 같은 '진짜' 차세대 기술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드웨어적 혁신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AI 기술의 융합이다. 'Micro RGB AI 엔진'은 영상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색감을 최적화한다. 이는 단순히 해상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특성에 맞춰 색채와 명암을 동적으로 조정한다는 의미다.
'AI 업스케일링 프로'는 저화질 콘텐츠를 고화질로 선명하게 업그레이드하고, 'AI 모션 인핸서 프로'는 극도로 빠른 움직임의 왜곡을 보정한다. 'Micro RGB 컬러 부스터 프로'와 'Micro RGB HDR+' 기능은 마이크로 RGB 하드웨어와 AI의 결합으로 탄생한 독자적 솔루션이다.
사용성 면에서도 진화가 눈에 띈다. 자연어 처리 기반의 음성 비서 '빅스비'가 적용된 '클릭 투 서치' 기능을 통해 시청 중 궁금한 점을 즉석에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보고 있는 영화 줄거리 요약해줘"라고 말하면 화면 상단에 텍스트로 답변이 표시된다.
외관 디자인도 프리미엄다움을 추구했다. 메탈 소재 프레임의 유니바디 구조로 슬림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외관을 완성했으며, UL 인증을 받은 글레어 프리 기술로 외부 조명 반사를 줄여 실용성도 높였다.
다만 4490만원이라는 가격은 분명 부담스럽다. 참고로 같은 삼성전자의 114형 마이크로 LED TV가 1억 80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가격대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마이크로 RGB TV의 출시는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OLED TV는 뛰어난 화질을 자랑하지만 장시간 같은 화면을 표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번인(Burn-in) 현상과 상대적으로 짧은 수명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마이크로 LED TV는 이론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디스플레이 기술이지만 아직 소형화가 어렵고 가격이 극도로 비싸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로 RGB TV는 OLED의 번인 걱정 없이 높은 화질을 구현할 수 있고, 마이크로 LED 대비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을 제공한다. 각 디스플레이 기술이 가진 고유한 한계를 고려할 때,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출시라고 할 수 있다.
프리미엄 시장 공략을 통해 삼성전자는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벌리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향후 이 기술이 보급형 제품으로도 확산될 수 있을지, 그리고 LG전자를 비롯한 기존 경쟁사들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 지가 TV 시장의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다. 최근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움직임 역시 주목할 만하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