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파트의 '공간'적 가치를 재정의 하는 시대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규제의 시대, 흔들리는 아파트의 가치

최근 부동산 시장은 강도 높은 규제 정책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제한, 종합부동산세 강화, 분양가 상한제 확대 등 정부는 아파트를 투기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견제하고, 실수요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하려는 방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아파트 가격은 일시적인 하락보다 '급등을 억제하고 점진적 안정으로 유도하는'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가격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아파트를 어떤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아파트는 투자 대상인가, 혹은 삶을 담는 공간인가. 이 질문은 지금의 정책적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으며, 부동산 시장의 구조뿐 아니라 건축적, 도시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 아파트의 역사와 건축적 전개

아파트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도시화된 서구 사회에서 탄생했다. 도시 노동자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세대 공동주택은 처음에는 위생이 나쁘고 비좁았지만, 근대 건축 운동과 함께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르 코르뷔지에의 베를린 유니테 / 출처=위키피디아
르 코르뷔지에의 베를린 유니테 / 출처=위키피디아

르 코르뷔지에의 1952년 작품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는 아파트 단지를 단순한 집합체가 아닌, 인간의 삶의 방식을 체계적으로 담아내는 도시 축소판으로 설계했다. 공동체 공간, 옥상 정원, 상업시설, 교육공간까지 하나로 통합한 그의 시도는 이후 전 세계 공동주택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급속한 도시 복구 과정에서 '부흥주택'이라는 방식으로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다. 빠르고 효율적인 건설을 통해 도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이후 주택공급공단(현 UR도시기구)의 아파트는 일본 중산층의 주거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외에도 북유럽의 소셜 하우징, 미국 뉴욕의 고층 콘도미니엄, 싱가포르의 HDB 플랫까지, 각국의 아파트는 사회 구조와 문화, 정책에 따라 고유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한국 아파트의 기원과 확장

한국에서 아파트의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서울 낙원동에 지어진 '미쿠니 아파트'는 일본인 거주자 중심의 공동주택으로,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기록된다. 해방 이후에는 1958년 마포아파트가 첫 한국인 대상 근대식 아파트로 건설되며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좌원상가아파트 분양 광고 / 출처=경향신문 1971년 7월 21일 발췌
좌원상가아파트 분양 광고 / 출처=경향신문 1971년 7월 21일 발췌

1960~70년대에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주택 정책이 추진되면서, 아파트는 도시 주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강남 개발과 함께 조성된 대단지 아파트는 교육, 교통, 상업 기능이 결합된 신도시적 형태로 발전했고, 이후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하며 아파트는 단순 주거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커뮤니티 시설, 조경, 디자인, 친환경 요소가 결합되며, 아파트는 양적 공급을 넘어서 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처럼 아파트는 한국 현대사의 도시화 과정, 계층 구조, 생활문화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온 공간이다.

주거의 부동산화와 건축의 응답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가장 안정적인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아파트 가격은 투자 수요에 의해 좌우됐고, 이는 실거주자에게는 부담이자 불안으로 작용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중심지의 아파트는 투기 과열지구로 지정되며, 시장 과열과 양극화의 중심에 서게 됐다.

해외 설계사무소 쓰는 한강변 재건축단지들 / 출처=매일경제 2024년 07월 08일 발췌)
해외 설계사무소 쓰는 한강변 재건축단지들 / 출처=매일경제 2024년 07월 08일 발췌)

이러한 흐름 속에서 건축시장은 아파트의 물리적 품질 향상에 응답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국내 건설사와 협업해 아파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벤 판 베르켈은 수원 아이파크시티 설계를 통해 조형적 아이덴티티와 도시 맥락을 동시에 고려했으며, 벤 판 베르켈과 로드베이크 발리옹은 대구 월배 아이파크 프로젝트에서 입면 구성과 커뮤니티 영역의 공간 해석을 통해 기존 주거단지의 틀을 확장했다. 장 누벨은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 설계를 통해 고급 주거공간에 대한 건축적 실험을 선보이며, 국내 아파트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또한 압구정 3구역(최고 70층 추진)도 희림, 나우동인, UN스튜디오(네덜란드), 압구정 2구역(최고 70층)은 디에이건축과 프랑스 설계사 '도미니크 페로 건축사(DPA)' 컨소시엄, 압구정 4구역(50층 이상 초고층 추진) 설계사는 디에이건축, 가람건축, 칼리슨RTKL(미국) 컨소시엄 등 이 있다.

이와 함께 스마트홈, 친환경 건축자재, 입체적 커뮤니티 설계 등이 도입되며 아파트는 기능과 감성, 효율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는 건축적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파트를 '공간'으로서 다시 생각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파트를 평수, 학군, 교통, 시세라는 지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가 어떻게 '사는 방식'을 담는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좋은 아파트란 단지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곳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 이웃과 대화가 오가는 커뮤니티홀,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조경 공간. 이는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아파트가 투기 대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책, 건축, 사용자 인식의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아파트를 '부동산'이 아니라 '공간'으로, 숫자보다 이야기가 담긴 삶의 공간으로 다시 읽어야 할 때다.

글 / 정훈구 담장너머 대표 (wjdgnsrn95@naver.com)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간기획사인 담장너머의 공동대표. 연세대학교 대학혁신지원사업 전문가이며, 마포문화재단 전시 코디네이터, 하나금융 소셜벤처 창업 퍼실리테이터로도 활동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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