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교통안전 사각지대 ‘도로 외 구역’

김동진 kdj@itdonga.com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사람과 차량이 교차하는 모든 장소는 잠재적 사고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대학 캠퍼스와 아파트 단지, 산업 단지 내 도로와 같은 ‘도로 외 구역’은 일반적으로 사유지이자 폐쇄적 구조로 운영되는 탓에 기존 도로교통법의 전면 적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중대한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처벌이나 과실 인정에 있어 제한이 따르거나 책임 소재가 모호합니다. 적절한 행정제재도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사각지대입니다.

예컨대 ‘도로 외 구역’에서 일어난 사망사고가 ‘12대 중과실’로 연결되지 않아 처벌 수위가 크게 낮아지는 사례도 빈번했습니다. 사고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같은 교통사고인데 왜 이렇게 처벌이 다르냐”고 억울함을 호소해 왔습니다.

작년 6월에는 부산대학교 캠퍼스에서 지게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여대생을 치어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는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운전자에게 금고 8개월, 집행유예 1년형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습니다.

도로 외 구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도로 외 구역은 대부분의 경우 도로로 규정된다고 생각하지만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횡단보도, 신호등, 중앙선을 위반해도 처벌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횡단보도나 신호등, 중앙선 위반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12대 중과실 교통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가해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보험처리로 끝날 뿐 별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사고유형을 보면 차대차 사고보다는 차대 보행자, 차대 자전거 사고와 같은 교통약자와의 사고 발생이 높습니다. 사실 일반 도로보다 더 보호받아야 하는 곳이 도로 외 구역이므로 사고 시 운전자는 더 무겁게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처벌할 수 없거나 상대적으로 처벌이 더 가볍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교통안전법: 강화된 교통안전 관리의무

도로 외 구역에 대한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교통안전법은 공동주택단지와 대학 캠퍼스 도로를 ‘단지 내 도로’로 재분류합니다. ▲통행방법 게시 의무화 ▲안전시설물 설치를 의무화 ▲지자체에서는 실태점검을 실시해 책임자에게 시설개선을 권고하도록 규정, 교통안전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책임자는 단지 내 도로에서 교통안전을 위해 자동차운전자가 준수해야 할 통행방법을 정하고 운전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게시해야 합니다. ▲횡단보도 ▲일시 정지선 등 안전표지와 ▲과속방지턱 ▲어린이 안전보호구역 표지 ▲도로반사경 ▲조명시설 등 교통안전시설물 설치를 의무화했습니다.

차량이 보행자 통행로를 침범하는 등 사고 우려가 있거나 과속의 우려가 있는 경우 ▲시선유도봉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보행자 방호울타리 등의 설치도 의무화하고 했으며, 관할 시·군·구청장은 단지 내 도로의 실태 점검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결과에 따라 책임자에게 시설 개선을 권고할 수도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27조에서도 도로 외 구역에서의 보행자 보호의무 규정을 2022년 신설했으며, 손해보험협회의 과실비율인정기준에서도 도로 외 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행자 무과실로 보아 보행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출처=과실비율정보포털
출처=과실비율정보포털

하지만 도로 외 구역이 교통안전법상 단지 내 도로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는 아니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상의 제재와 12대 중과실 형사처벌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어 보완이 필요합니다.

‘도로 외 구역’이라는 사각지대가 교통안전법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것은 교통안전 법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는 보행자와 차량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그간 사유지라는 명분으로 제대로 된 제재와 관리가 미흡했던 곳이었습니다. 이제라도 ‘단지 내 도로’라는 이름 아래 면밀히 관리·감독하고, 사고 예방 인프라가 갖춰지는 것은 다행입니다.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모든 도로 외 구역에서도 보행자가 우선되는 교통질서가 정착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교통사고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라는 공동의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길 기대해 봅니다.

글 /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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