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성·비용 효율성 좋은 스테이블코인, 명확한 규제 필요한 시점”
[IT동아 한만혁 기자]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고정된 가치로 연동된 가상자산이다. 기존 가상자산 대비 변동성이 적어 교환 매체나 가치 저장 수단으로 적합하며, 결제 및 송금에 활용할 경우 기존 금융 시스템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덕에 스테이블코인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관련 생태계도 발행, 거래, 수탁, 결제, 송금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 역시 지난 1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입법 방향을 제시했고, 4월에는 하반기 입법 목표로 세부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가 4월 23일 ‘스테이블코인의 역습: 금융 질서의 재설계’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협회 소속 디지털자산인프라협의회와 서울국제금융오피스가 공동 주최 및 주관한 이번 행사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시장 동향과 글로벌 규제, 산업 전망 등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은 “세계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확립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제도권 대응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국가 경제 발전,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 ‘확장성·비용 효율성’
기조 발제를 진행한 이종섭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쩐(錢)의 전쟁’'을 주제로 스테이블코인의 정의와 특징, 글로벌 금융질서에 미칠 변화에 대해 발표했다.
이종섭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를 토큰화한 것"으로 정의하고, 명목화폐담보형, 멀티애셋담보형, 가상화폐담보형으로 분류했다. 명목화폐담보형은 일반 화폐를 예치하고 일련번호를 만들어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형태로, 테더 USDT, 서클 USDC가 대표적인 예다. 멀티애셋담보형은 블랙록 비들(BUIDL)처럼 채권, 국채 등을 활용하는 형태다. 가상자산담보형은 가상자산이나 가상자산 기반 금융상품을 담보로 맡기는 형태다. 메이커 DAI나 이테나 USDe가 여기에 속한다.
이어 이종섭 교수는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이다. 확장성이 좋지만, 거래 속도가 느리고 보안이나 안정성이 떨어진다. 또한 익명성이 보장되고 개인 거래 내역을 노출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 및 관리하는 것으로, 허가받은 이용자만 참여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확장성이 떨어지는 대신 거래 속도가 빠르고 보안이나 안정성이 높다. 단 중앙은행이 개인의 모든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종섭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CBDC에 비해 확장성 측면에서 강점을 갖는다”라고 강조했다.
이종섭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으로 확장성과 함께 비용 효율성을 꼽았다.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면 해외 결제 시 환전할 필요가 없고 중개 사업자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보다 시간 및 비용 절감 등 비용 효율 측면에서 유리하다”라며 “스테이블코인의 이런 장점은 통화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섭 교수는 “지금은 디지털 금융이 급변하는 격동기”라며 “편리하고 효율적인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지급결제 시스템이 필요한 시기”라며 “이는 국내 금융 산업을 활성화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테이블코인 법적 지위 및 명확한 규제 필요
이어 연단에 나선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스테이블코인 글로벌 규제 상황 및 사업자 대응 방안’을 주제로 주요국의 규제 현황을 공유하고 국내 규제 방향을 제안했다.
한서희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연방정부의 통일된 법률은 없고, 주 단위 규제만 있는 상태다. 이들 규제는 대부분 자금세탁방지(AML), 고객 확인(KYC), 거래 보고 등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준비금 보유 방식이나 이용자 보호에 대한 구체적 요건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 2월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인 GENIUS 법안이 미국 상원에 올라갔다. 이는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차원의 규제 틀을 제시하는 법안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GENIUS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미국 달러 등 법정화폐에 1:1로 연동된 가상자산이라고 정의하고, ▲발행자에 대한 허가제 도입 ▲발행량과 동일한 가치의 준비자산 보유 ▲시가총액 100억 달러(약 14조 2600억 원) 초과 시 연방 규제기관 감독 ▲연방준비제도, 미국 통화감독청(OCC),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 등이 발행사에 대한 검사·제재 권한 보유 ▲고객 자산 별도 보관 및 보호 요건 ▲스테이블코인은 증권이 아니며, SEC 증권 규제에서 제외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23년 6월 자금결제법 개정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은행, 신탁회사, 자금이체업자로 제한되며, 스테이블코인 유통 및 교환, 관리 중개업자는 전자결제수단 교환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일본 역시 스테이블코인을 증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개정도 추진 중이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3월 자금결제법 개정안 제출하고 준비금 요건을 완화했다. 또한 법정화폐뿐 아니라 국채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가능하게 했다.
한서희 변호사는 글로벌 규제 동향 분석과 함께 국내 규제 방향도 제시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고 지적하며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정의 및 법적 분류 ▲발행 허용 주체 및 라이선스 요건 ▲준비금 및 자산 보유 조건 ▲환매 및 이용자 보호 기준 ▲AML 및 KYC 등 준법 요건 등을 명확하게 정립할 것을 요구했다. 스테이블코인의 명확한 법적 지위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이익을 얻거나 손실을 회피할 목적이 없고, 원본 손실 가능성이 없으며 채무증권과의 유사성이 없으므로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서희 변호사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경우 발생할 산업적 이점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라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되면 지갑, 보관(커스터디), 은행업 등 다양한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