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제로] 1. "제가 그 유명한 진상 민원인입니다만...!"
[IT동아]
공공기관이나 단체에 불만이나 건의, 개선 사항 등을 제기하는 행위를 ‘민원’이라 합니다. 오늘도 전국에서 수 많은 민원이 제기되고 또 처리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분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타트업 창업, 운영, 지원 등의 관련 민원이 전국의 거의 모든 지원기관에 다양하게 접수되고 있는데요. 이런 민원은 창업자 또는 민원 제기자 또는 고객의 성향과 감정이 그대로 반영되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할지 [민원제로] 기획연재를 통해 알아봅니다.
연재순서
- 집요한 불만 제기 : “제가 그 유명한 진상 민원인입니다만...”
- 무차별적 난동 :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지!”
- 충성 고객과 극성 민원인은 같다
- 민원인 유형과 대응 실제
- 불만에 대한 첫 응대가 중요하다
- 핵심성과지표를 분명히 하라
- 고객의 자발적 참여를 도모하라
- 나도 누군가에겐 민원인이다
스타트업 지원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민원인을 만났다. 대부분 스타트업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다. 필자는 그 동안 ‘민원’의 ‘민’자도 모르고 살다가, 스타트업 지원 기관에 와서 멱살도 잡혀보고 황당한 협박도 당해봤다. 최근 들어 민원 처리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며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필자가 경험한 민원 사례를 토대로 민원 제기자에게든 민원 처리자에게든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어느 날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탈락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자신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이 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사업 심사위원 정보를 막무가내로 알려달라고 했고, 그들의 심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30분 동안 격양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일단 이 ‘민원인’의 토로를 끝까지 잘 들었다. 매번 탈락해서 억울하겠다고 공감도 했다. 이 민원인이 제기한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 그가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심사위원 평을 직접 확인하겠다고 응대했다. 그랬더니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제가 바로 그 유명한 진상 민원인입니다.’라고 밝혔다. 깜짝 놀랐다. 그는 타 기관 다른 사업에서 탈락한 적 있는데, 강한 의의 제기로 해당 기관을 거의 박살(?)냈다는 무용담을 전했다. 그런 ‘진상 민원인’ 다짜고짜 필자를 찾아오겠단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그날 퇴근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잠도 오지 않았다.
일단 필자는 이 민원인의 사업계획서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남긴 심사평을 하나하나 자세히 확인했다. 심사평과 사업계획서를 비교하며, 심사위원별로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는지 연상해 봤다. 또한 사업계획서에서 빈약한 부분과 보유 기술의 수준도 필자 나름대로 유추하며 다각도로 검토했다. 이내 그의 사업계획서에서 보강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냈다.
본인 스스로 유명한 진상 민원인이라 소개한 그가 우리 기관을 방문하는 날, 정말 긴장됐다. 막상 얼굴을 보고 인사하자마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필자는 이미 사업계획서를 정밀하게 분석했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일단 자신감 있는 태도와 말투로 응대했다. 필자는 이 민원인에게 최선을 다해 응대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가 보기에도, 그는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듯했다. 그런 상황을 최대한 부드럽게 언급했다. 그리고 사업계획서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라고도 조언했다. 그의 사업이 선정될 가능성이 좀더 높은 다른 지원 사업 몇 가지도 추천했다. 결국 헤어지면서 그 진상 민원인은 연신 웃으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필자는 그에게 네 가지 대응을 했다. 1) 민원인의 사업계획서와 심사평을 시간 내서 분석한 것이다. 2) 그와 대면했을 때 그의 말을 끊지 않고 최대한 귀 기울여 경청했다. 3)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도움될 만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전달하려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4) 이후에 사업 진행 시 어려움이 있으면 편하게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진상 민원인을 대하는 방법의 정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또한 그의 입맛에 맞게 대응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다만 필자는 그를 막연히 달래려 하거나, 그렇다고 대충 적당히 대하려 하지도 않았다. 민원인 눈치를 보면서 탈락 사유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태도로 수습하려 하지 않았다. 민원인이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온 상황이기에 내 시간 만큼 그의 시간도 소중하다고 여겼고, 필자와의 만남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기대하면서 그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이런 진상 민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누군가와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어떤 부분에 신경 써야 할지 고민해보길 권한다. 자신이 맞이하는 상대 또는 고객의 유형을 떠올려 보고,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생각해보자. 물론 그리 한다 해도 민원인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이 진상 민원인의 사례처럼 그가 함빡 웃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은 늘 처음이 힘들다. 막연하다고 여기지 말고 상대에게, 고객에게 다가가 (내가 아닌) 그를 중심으로 소통을 시작하자.
글 / 김영준 ( 3dbiz@naver.com )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혁신사업실 실장. 스타트업의 글로벌 스케일업, 대기업 연계 오픈이노베이션, R&D 지원 등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맡고 있다. 국내 주요 대학이나 대기업, 여러 기관 등 대상으로 기술 트렌드, 글로벌 진출, 기업가정신 등의 주제로 100회 이상의 강연을 진행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등 수상. 주요 저서로, [3D프린팅 스타트업], [하드웨어 스타트업], [가상현실을 말하다], [민원제로] 등이 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