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앞에서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2025년 반도체 시장
[IT동아 강형석 기자] 2024년 반도체 시장의 화두는 ‘인공지능(AI)’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테슬라 등 인공지능 서비스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 속에 반도체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2025년에도 치열한 인공지능 기술 경쟁 속에 시장 성장 가능성이 예상된다. 메타는 2025년에 인공지능 인프라 확보 목적으로 최대 650억 달러(약 94조 230억 원) 투자를 약속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800억 달러(약 115조 7200억 원)를 쓸 예정이다.
하지만, 중국발 인공지능 서비스인 딥시크(Deepseek)의 등장으로 기업의 과감한 투자 행보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딥시크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규제 속에서도 뛰어난 성능의 서비스를 구현했다.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장비인 H800을 활용했고, 인공지능 훈련 비용은 미국 빅테크 기업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H800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중국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한 장치다. 2023년에 출시한 장비로 뼈대는 2022년에 공개된 H100과 같다. 다만 처리 성능을 낮추기 위해 메모리를 HBM3에서 HBM2e로 바꾸고 작동 속도를 일부 조정했다. 데이터 처리에 쓰는 코어 수도 10% 이상 줄였다.
딥시크가 적은 비용으로 최적의 성능을 보여주면서 상대적으로 큰 비용을 쓴 미국 인공지능 빅테크 기업의 투자 대비 효율에 대한 의구심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투자 시장은 즉시 반응했다. 실제 딥시크가 두각을 드러낸 2025년 1월 27일, 나스닥 100 선물 지수는 최대 5.5% 하락했다. 주식 시장도 인공지능 관련주는 일제히 하락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 118.42 달러(약 17만 1300원, 16.97% 하락) ▲브로드컴 202.13 달러(약 29만 2400원, 17.4% 하락) ▲AMD 115.01 달러(약 16만 6360원, 6.37% 하락)를 기록했다.
인공지능 반도체 업계의 기술 경쟁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지만, 분위기는 어수선할 전망이다. 먼저 엔비디아는 블랙웰(Blackwell) 그래픽 처리장치(GPU)의 뒤를 이을 루빈(Rubin) GPU를 2026년 중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블랙웰 시스템의 초기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엔비디아는 2024년 블랙웰, 2025년 블랙웰 울트라(Blackwell Ultra)를 출하한다는 청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블랙웰 울트라를 2025년 하반기에 출시하고 루빈을 2026년 하반기에 투입하더라도 결함 발생이나 외부 요인에 의한 변수로 공급 일정이 지연될 경우, ▲투자자 ▲구매자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글로벌 금융 기업 UBS는 블랙웰 생산 수율이 크게 개선됐고 이에 따른 매출 증가가 기대된다며 긍정적 의견을 제시했지만, 시장은 관망하는 분위기다.
변수가 많은 데이터센터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엔비디아가 내놓은 대안은 개인용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프로젝트 디지츠(Project DIGITS)다. 개인 혹은 소규모 연구 시장을 겨냥한 이 제품은 엔비디아가 개발한 ARM 기반 중앙처리장치(CPU) 그레이스(Grace)와 블랙웰 GPU를 조합한 소형 컴퓨터다. 소규모 환경에서도 거대언어모델(LLM) 처리가 가능하고, 성능 확장을 위해 기기 2대 연결을 지원한다. 데이터센터 구축이 어려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다.
AMD는 2024년 공개한 인스팅트 ▲MI325 ▲MI350 ▲MI355 등으로 엔비디아와 경쟁해야 된다. 문제는 2025년 중 공개될 ▲MI350 ▲MI355 등 인공지능 가속기는 아직 구체적인 언급이 안 됐고, MI325는 블랙웰이 아니라 이전 세대인 호퍼(Hopper)와 경쟁해야 된다는 점에 있다. 전반적으로 제품군 대응이 엔비디아와 비교해 한 박자 느리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도 극복해야 될 부분이다. 엔비디아는 쿠다(CUDA) 명령어 생태계를 넘어 ▲로보틱스 ▲디지털 트윈 ▲생명공학 ▲물리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서비스 중이다. 반면, AMD는 ROCm 소프트웨어 지원 생태계 정도만 구축 중인 상황이다. 기술과 생태계 격차에 속도가 붙는다면 장기적으로 투자 심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투자분석기업 울프리서치(Wolfe Research)는 AMD에 대한 투자 의견을 시장 수익률 상회(Outperform)에서 동종기업 수익률(Peerperform)로 하향 조정했다. 데이터 GPU 매출 전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이유다.
퀄컴(Qualcomm)과 브로드컴(Broadcom)은 전통적인 CPU와 GPU 시장의 틈새를 노리며 성장 중이다. 시장이 주목하는 분야는 특수목적 설계 집적회로(ASIC – 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urcuit)다. ASIC는 특정 애플리케이션 또는 기능 실행에 최적화된 반도체 집적회로다. 범용으로 쓰기 어려워도 특정 환경에서는 ▲전력 대비 성능 ▲비용 등에 이점이 있다. 기업이 인공지능 학습과 추론 등에 특화된 반도체를 만들어 구축할 경우, 장기적으로 유지보수 측면에서 이점을 갖는다.
퀄컴은 ▲스마트 기기 ▲PC 시스템 ▲자동차 전자장비 등 소형 장비에 맞춘 인공지능 최적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대규모 장비 시장에도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인텔 제온 프로세서 수석 아키텍트인 사일레시 코타팔리(Sailesh Kottapalli)가 2025년 1월에 퀄컴에 합류한 게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퀄컴은 2017년 센트릭(Centriq) 2400으로 서버용 CPU 시장에 도전장을 낸 바 있지만, 인텔과 AMD가 쌓아 온 벽을 넘지 못했다. 퀄컴이 스냅드래곤 8 엘리트 기반 데이터센터 CPU를 시장에 선보인다면 시장은 또 한 번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