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무력화된 인터넷 실명제, 폐지효과는 미미?
지난 8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제한적 본인확인제, 즉 인터넷 실명제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인해 앞으로는 인터넷 게시판에 게시물을 올리거나 댓글을 남기고자 할 때 실명 확인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실명 및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이트에 등록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의 가면을 쓰고 게시판에서 인신공격을 하거나 명예 훼손을 하는 등의 사이버 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2007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도입 당초부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사이버 폭력을 예방하는데 나름의 효과를 인정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 환경이 점차 변화하면서 부작용이 점차 부각됨과 동시에, 제도 자체의 효용성도 상당부분 무력화 되기 이르렀다.
이미 발가벗겨진 국민들의 신상정보, 실명제 의미 퇴색
가장 먼저 부각된 부작용은 사이트 운영자 측에서 실명 인증의 필요성을 이유로 과도하게 많은 신상정보를 사이트 이용자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점이다. 이용자들의 거의 모든 정보가 사이트 운영자에게 공개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다 보니, 이것이 노출될 경우 이용자들이 받게 되는 불이익은 막대한 수준이었다.
사이트 운영자들이 이용자들의 신상정보를 몰래 팔아 넘기거나 사이트가 외부에서 해킹을 당해 이용자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했으며, 이렇게 유출된 신상정보는 불법 마케팅이나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되곤 했다. 2011년 7월, 대형 포탈사이트 네이트가 해킹을 당해 무려 3,50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엔씨소프트, 넥슨 등의 대형 게임 업체에서도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나는 등, 대다수 인터넷 이용자들의 신상정보는 이미 발가벗겨진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이렇게 유출된 신상정보로 거짓 실명 인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실명제의 의미는 크게 퇴색되었다.
SNS의 등장으로 변한 인터넷 환경
또한, 포탈사이트나 기업사이트의 게시물이나 댓글 작성이 인터넷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예전과 다르게, 최근에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쪽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인터넷 실명제의 효용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외국계 SNS는 실명 인증 없이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포탈의 게시물이나 언론사의 기사에 SNS로 댓글을 작성할 수 있는 기능이 더해지게 되면서 굳이 실명인증까지 하면서 특정 사이트에 가입할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는 사실상 무력화 되었다고 상당수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인터넷 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악성 댓글을 작성하는 등의 사이버 범죄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도 여전히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높아진 자율성, 그리고 책임의식
실명 인증을 받지 않은 게시물을 작성한 이용자를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IP(Internet Protocol) 추적이 대표적이다. IP란 인터넷 상의 컴퓨터를 구분하는 일종의 주소와도 같은 것으로, 이를 분석하면 해당 컴퓨터 사용자의 위치를 분석할 수 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다. 다른 지역, 혹은 다른 국가에 위치한 IP를 쓰는 것처럼 위장하여 실제 컴퓨터의 IP를 숨기는 프록시(proxy) 서비스를 이용하면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고려했는지 2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브리핑을 통해 이번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인터넷 실명제의 강제적 의무화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각 포탈을 비롯한 인터넷 사업자들은 실명제 적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판결이 난 이후에도 일부 인터넷 사이트는 여전히 실명 확인 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포털을 비롯한 상당수의 인터넷 사업자들은 인터넷 실명제의 폐지를 환영하는 추세다. 인터넷 실명제 의무가 없어지면 복잡한 가입 절차 없이 이용자들을 쉽게 유치할 수 있는데다 사용자들의 신상 정보를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의 폐지로 인해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허위사실 유포 등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마련이 상대적으로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는 특히 포털을 비롯한 인터넷 사용자들의 책임 있는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용자들의 윤리의식 강화가 필수인 만큼, 앞으로도 한동안은 관련 사항에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율성이 높아진 만큼, 그에 어울리는 책임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