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 대규모 감원까지··· 격랑의 AI 반도체 시장
[IT동아 남시현 기자] AI 반도체 시장의 가능성을 업고 상승 랠리를 이어오던 반도체 기업들이 그간의 주가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지난주 금요일, 미국의 7월 일자리 창출분이 시장이 예상했던 17만 5000개보다 적은 11만 4000개에 불과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동시에 인텔과 아마존이 실적 악화로 인해 각각 26%, 8.8%씩 하락하며 AI 반도체 수요에 대한 회의감을 가중시켰다.
월요일에는 일본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캐리 트레이드로 대규모 자금이 유출됐고, 이스라엘-이란 간의 전쟁 가능성과 미국발 경기 침체에 대한 목소리가 확대되며 전 세계 주가에 대규모 조정이 시작됐다.
나스닥은 장중 6% 떨어졌고, 일본 닛케이 지수는 12% 폭락했다. 코스피와 코스닥도 각각 9%, 11% 폭락하는 등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피해가 집중됐다. 다행히도 다음날 폭락분의 일부를 회복하며 우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빅테크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회의감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직원 15% 감축·배당 철회, 50년 만에 최대 낙폭겪은 인텔
지난 2일(현지 시간), 인텔의 주가는 하루 만에 26.05% 폭락해 50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가총액은 2020년 1월 2920억 달러(약 401조 원)의 3분의 1에 불과한 1141억 달러(156조 8875억 원)로 내려앉았고, 배당금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의 2분기 매출 기대치는 129억 4000만 달러(17조 7925억 원)였으나, 실제로는 128억 3000만 달러(17조 6412억 원)로 예상치를 밑돌았다. 3분기 매출도 예상치에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100억 달러(13조 7500억 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전체 직원의 15%인 1만 5000명을 감원하고, 4분기 배당금 지급 유예하는 등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인텔의 주가는 1년 새 -43.71%가 빠져 1997년 당시 수준으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파운드리 수주는 물론, 출시 예정 제품 모두 시장에서 대성공을 이뤄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인텔의 로드맵, 상황은 어떨까? 인텔은 코드명 루나레이크를 오는 9월 3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공개한다. TSMC에서 생산하는 만큼 인텔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긴 어렵고, AI PC 시장 점유율 확보에 의의가 있다. 또 고성능 노트북 및 데스크톱 프로세서인 코드명 애로우레이크는 연말에 출시될 예정인데, 이 제품까지 출하되더라도 시장을 만족시키긴 어려운 상황이다.
인텔은 올해는 넘기고 내년을 기약하는 상황이다. 인텔은 18A 공정 주력의 코드명 팬서레이크 프로세서, 그리고 서버용 프로세서인 클리어워터 포레스트 시험 버전의 부팅을 끝내고, 내년에 본격 생산에 들어간다. 두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둬 18A 공정의 성능이 입증되면 그때는 파운드리 수주로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는 AI PC 시장의 빠른 변화, 아일랜드 생산 시설에서 다룰 인텔 4 및 인텔 3 생산 비용 상승, 비 핵심사업 등의 비용 증가 등이 이익 감소에 영향을 미쳤고, 또 가격 및 제품 경쟁력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물이 다 엎질러진 만큼, 내년 출시 제품으로 반전을 노리는 방법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펫 겔싱어 CEO가 부임 당시 내세운 반도체 및 파운드리 전략인 IDM 2.0은 지체없이 진행되고 있다.
예상외의 체력 보여준 AMD, 사업 순항할 듯
인텔이 50년 만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경쟁사인 AMD는 예상외의 견조세를 보여줬다. AMD의 지난 분기 매출이 시장이 예상했던 57억 달러(7조 8375억 원) 보다 높은 58억 달러(7조 9750억 원)를 기록했고, 특히 데이터센터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28억 달러(3조 8500억 원)를 기록했다. 덕분에 나스닥 상장 주 91.8%가 폭락하는 가운데서도 1.75% 상승 마감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물론 한 달 사이 주가가 -27.15% 내려앉긴 했으나,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한 셈이다.
AMD는 7월 초 열린 2024 테크데이 이벤트에서 젠 5 아키텍처 기반의 신형 라이젠 9000 시리즈 프로세서와 노트북용 프로세서인 라이젠 AI 300 시리즈를 공개했다. 하반기 중에는 최대 192 코어 구성의 5세대 에픽 프로세서, AI 가속기인 AMD MI300X 시리즈의 후속인 MI325X를 각각 출시할 예정이다. PC 시장에서는 13세대 및 14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로 인한 공백을 공략하고, 서버 시장에서는 인텔 CPU와 엔비디아 GPU와 각각 경쟁하며 수익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블랙웰 출시 3개월 밀려··· 증명의 굴레에 빠진 엔비디아
AI 반도체가 주목받으며 엔비디아의 주가도 꾸준히 올랐지만, 그만큼 피로도도 쌓이는 모양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2분기에 매출 260억 4400만 달러(35조 8105억 원), 영업이익 169억 900만 달러(23조 2498억 원)로 전년 동기대비 매출 262%, 영업이익은 690% 상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시장에서 엔비디아 하드웨어의 대체제가 마땅치 않고, 품귀현상으로 인해 가격이 오르며 엔비디아의 수익성도 오른 덕분이다.
3분기 들어서는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서버용 반도체 제조기업 슈퍼마이크로의 2024년 2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대비 142.95% 증가한 53억 819만 달러(7조 2987억 원)를 기록했다. 시장 전망치에 비해 소폭 낮다. 델 테크놀로지스의 1분기 실적도 시장 전망인 241억 9164만 달러(33조 2635억 원)에 8.05% 부족한 222억 4400만 달러(30조 5788억 원)를 기록했다. 엔비디아가 오는 28일(현지 시각) 예정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AI 시장 전체가 부진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IT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반도체인 코드명 블랙웰의 출시가 약 3개월 지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초 블랙웰은 올해 말 인도될 예정이었지만,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내년으로 판매가 밀릴 예정이다. 이로 인해 올해 4분기 매출에 타격을 주는 건 물론, 각 기업에서 개발 로드맵도 지연될 전망이다. 게다가 AI의 경제적 이점이 없다는 시장의 의문도 더욱 길어지게 된다.
이미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2년 주기였던 신제품 출시 주기를 1년으로 단축했고, 지난 3월에 블랙웰을 공개한 이후 3개월 만에 그다음 세대 제품인 ‘루빈’까지 공개했다. AI 시장 수요에 선제 대응하고, 시장의 기대가 누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그만큼 출시 주기에 따른 압박감이 크고, 또 세대마다 제품 성능을 계속 올려야 해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AI에 대한 가능성과 의구심, 해결의 실마리 나올까
AI 반도체 및 기술 기업을 대상으로 AI 기술 수익화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질 않는다. 세쿼이아캐피털은 AI에 대한 빅테크의 연간 투자 비용은 6000억 달러(824조 8200억 원)인 반면, 수익은 높게 잡아도 1000억 달러(137조 4700억 원)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나마 선도적인 오픈AI만 해도 올해 지출 예상액이 85억 달러(11조 6849억 원), 연간 수익이 35억~40억 달러(약 4조 8000억~5조 4980억 원)로 예상될 정도다.
그렇지만 AI에 대한 시장 가능성을 증명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AI를 활용해 공공 정보를 분석하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는 2분기에 고객 수는 41%, 매출은 27%가 늘었으며, AI 플랫폼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AI 기술이 실제 환경에서 의미 있고, 경제적 가치가 분명한 결과를 내놓고 있음을 증명했다. AI 관련 업계 모두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2024년 3분기, 엔비디아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AMD는 상승 기류를 타는 상황이다. 인텔에게는 특별히 어려운 시기다. AI에 대한 시장의 시험을 이겨내고, AI 반도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다행히 AI 산업은 대체불가능토큰(NFT)나 메타버스와 달리 충분히 상업적이고, 성공적인 기술로 거듭나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 혼조세가 이어지며, 때에 따라선 폭락도 발생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름세를 기록하지 않을까.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