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태의 디지털자산 리터러시] 한국형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위한 선결 조건
[IT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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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비트코인ETF 출시를 위한 선결 조건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가 필요한 이유
건전한 디지털자산 시장을 위한 민간 중심 감시시스템 구현
디지털자산 업계의 다양성 확보와 건강한 생태계 조성
상반기 우리나라 내외의 디지털자산 산업에서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소식을 들 것이다. 그래서 1월 11일,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주식시장에 극적으로 등장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피델리티, 프랭클린 템플턴 등 11개 ETF 상품이 한꺼번에 상장하면서 첫날 거래액만 6조원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600개가 넘는 기관투자자가 약 35억달러(4조 8천억원) 가량을 투자하며 시장을 주도한다.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는 디지털자산 산업계의 오랜 소망이었다. 비트코인 신탁상품을 가장 먼저 출시한 그레이스케일 자산운용사는 2018년부터 비트코인 신탁을 현물 ETF로 전환하려 노력했다. 이후 비트와이즈, 발키리, 반에크 등 중소 자산운용사들이 ETF 상품 출시를 도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2023년 초에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블랙록의 등판으로 비트코인 ETF 출시가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결국 11개 운영사가 무더기 상장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그렇다면 블랙록이 깐깐하기로 소문난 미국 금융당국의 의지를 돌리게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이 허용된 결정적 이유
운용자산의 규모만 무려 1조달러(1경 4천조원) 이상인 블랙록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답게 오랜 노하우와 상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가장 많이 상대했기에, 그들의 요구사항을 잘 충족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ETF 출시 기대감이 커졌다. 블랙록은 2023년 6월 비트코인 ETF 상품인 ‘아이쉐어즈(iShares) 비트코인 트러스트’ 출시를 위해 SEC에 상품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구상한 상품구성, 운용방식 등 상품운용 내용은 기존 자산운용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블랙록의 전략에는 결정적 차별점이 있었다. 바로 블랙록이 나스닥 거래소, 전문수탁사와 감시공유 계약을 체결한다는 점이다. 감시공유 계약이란 시장 조작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시장 거래 활동, 고객 신원 등에 관한 정보를 믿을만한 제3자와 서로 감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 구리 현물 ETF 출시 당시 JP모건은 무려 2년간 SEC로부터 심사, 검증을 받으면서 가까스로 승인을 받아냈다.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부분이 바로 감시공유 계약이다. SEC가 그동안 구리 현물 ETF를 반려한 근거는 시장가격 조작 가능성 때문이었다. 현물 ETF는 말 그대로 현물이기 때문에 고객 투자금이 유입될 경우 동종, 동량의 구리 현물을 실제 비축해야 한다. 구리는 공급자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대규모 계약, 사전 매매만으로도 가격이 크게 요동칠 수 있고 급격한 가격 변동으로 인해 투자자가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JP모건은 3자간 감시공유계약을 제안했다. ETF 발행사와 거래소, 수탁사가 시장 상황과 가격 움직임을 실시간 조사하고 결과를 공유하여 시장가격 조작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다. JP모건은 결국 승인을 받아냈고 블랙록은 이를 그대로 벤치마킹하였다.
블랙록은 나스닥 거래소와 상장사인 코인베이스 커스터디를 감시공유 계약 파트너이자 비트코인 전문 수탁사로 지정했다. 이를 통해 SEC가 요구하는 투자자 보호를 달성하고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거스를 수 없는 전 세계적 흐름
미국 주식시장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이후, 단 하루 만에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는 이를 금지 조치했다. 자본시장이 개방됐고 주식 거래가 활성화된 요즘, 국내 증권사를 통해 해외 주식을 구매하는 것은 보편화됐다.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등 특정 종목을 비롯하여 다양한 해외 ETF까지 구매 가능하다. 지난달을 기준으로 국내 투자자의 엔비디아 주식 보유금액은 15조 원을 넘겼다. 테슬라의 보유 금액 규모도 14조 7000억 원에 달한다. 국내 단일 주식종목과 비교하더라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국내 비트코인 ETF 출시는커녕 해외 ETF 구매까지 막아버렸다. 이미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은 비트코인 선물 ETF 상품을 만들어 해외시장에 판매 중이기도 하다. 현물과 선물의 결정적 차이는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하느냐의 문제일 뿐 상품의 특성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국내 투자자도 증권사를 통해 해외 비트코인 선물 ETF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금지 조치는 다소 의아했다.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상장한 첫 국가는 아니다. 독일, 캐나다, 브라질 등에서 이미 비트코인 현물 ETF가 자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운영 중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와 주식시장 규모면에서 월등한 미국 주식 상장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 미국 이후 홍콩, 호주 등에서 뒤이어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에 동참한 바 있다. 홍콩은 한발 더 나아가 이더리움 현물 ETF 상장을 허용했다. 미국 또한 뒤이어 이를 승인함으로써 본격 상장을 앞두고 있다.
오로지 국가 이익만을 위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때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들 중에서, 이미 출시된 비트코인 현물 ETF의 단순 구매조차 막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는 비트코인 현물 ETF로 인해 디지털자산 투자심리가 제도권 금융 혹은 법인으로까지 옮겨붙어 시장이 과열되지 않을까라는 금융당국의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상품으로써 ETF의 최대 장점은 분산 투자가 가능하는 점이다. 투자자는 하나의 ETF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다양한 대상에 나눠서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다른 ETF에도 자산을 배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복합상품은 물론 인버스(역방향), 레버리지(2배수) 등 다양한 파생상품이 출시되면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사지 못하는 지금도, 세계의 누군가는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구매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업계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비트코인 ETF는 디지털자산이 기초 금융상품으로 인정받고 정식 금융시장으로 데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4월 SEC는 이더리움 현물 ETF까지 전격 승인하며 시장에 놀라움을 가져다줬다. 이더리움 현물 ETF 상장은 비트코인뿐 아니라 다른 알트코인들도 정식 금융상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게 했다. 투자자들은 이더리움 이후 솔라나, 리플 등 거대 디지털자산들의 시장 동참을 예견하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비전 실현을 단순히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 합의가 필요하다.
위험과 기회는 공존한다. 모든 위험이 다 제거된 기회는 진정한 기회가 아니다. 논란 투성이었던 금 현물 ETF가 2003년 처음으로 상장되고 나서 8년 동안 금 가격은 무려 400% 이상 상승했다. 지금이라도 오로지 국익만을 위한 영리한 정책 방향 설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 /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
시중은행 디지털금융 전략기획자 출신으로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인피닛블록’의 공동 창업자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협의회 협의회장,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이사, 한국핀테크지원센터 혁신금융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새로운 시대의 부, 디지털자산이 온다’, ‘블록체인 트렌드’ 등이 있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