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던 UMPC 시장, ‘게임기’로 부활 ‘꿈틀’
[IT동아 김영우 기자] ‘UMPC(Ultra-Mobile Personal Computer)’란 이름 그대로 매우 작은 휴대용 PC를 의미하며, 2000년대 중반을 전후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고진샤, 소니, 도시바 등의 일본 제조사들이 주축이 되어 제품을 선보였는데, 초반에는 작고 예쁜 디자인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으나 이내 반응이 사그라졌다. 성능이 워낙 낮아 활용성에 한계가 있었고, 가격 역시 너무 비쌌다. 이 때문에 2010년대 들어 UMPC는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UMPC는 부활하고 있다. 단, 이전의 ‘PC’형태가 아닌 ‘휴대용 게임기’에 가까운 모습으로 시장에 어필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게임 시장, 그 중에서도 PC 게임 시장의 규모가 크게 증가한 탓이다. 시장 조사업제 뉴주가 작년 말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게임 시장의 규모는 전년 대비 0.6% 증가한 1840억 달러에 달했으며 그 중에 PC 게임 시장은 같은 기간 대비 5.2%나 증가한 384억 달러를 차지했다.
PC 게임은 모바일 게임에 비해 높은 품질을 제공하지만, 이용 장소나 기기에 제약이 있는 것이 단점이었다. 하지만 게이밍 UMPC를 이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들 제품의 외형은 ‘닌텐도 스위치’와 같은 휴대용 게임 콘솔과 유사하지만, 내부에 탑재된 프로세서나 메모리, 운영체제 등은 PC의 것을 이용하므로 다양한 PC 게임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게이밍 UMPC는 2020년을 전후해 당초 소규모의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통해 개발되곤 했는데, ‘GPD WIN’ 시리즈, ‘아야네오(AYANEO)’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당초에는 일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다가 점차 인기가 커지자 다수의 글로벌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제품은 이하와 같다.
밸브 스팀덱(Valve Steam Deck)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을 운영하는 밸브 코퍼레이션(Valve Corporation)에서 2022년 2월에 출시한 제품이다. 그동안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게이밍 UMPC를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린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주로 노트북용 프로세서를 유용하던 기존의 게이밍 UMPC와 달리, 모바일 게이밍 특화 프로세서인 ZEN2 기반 4코어 8쓰레드 프로세서를 AMD와 공동개발해 탑재했으며, 최대 512GB의 SSD, 7인치 LCD(HD급) 등의 사양을 갖췄다.
또한, 자사의 게임 플팻폼인 스팀에 최적화된 독자 운영체제인 ‘스팀OS’를 탑재했는데, 상기의 하드웨어 스펙과 맞물려 스팀에서 서비스되는 상당수의 게임을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2023년 11월에는 고화질 화면 및 최대 1TB SSD를 탑재한 OLED 버전도 출시했다.
윈도우와 같은 범용 운영체제가 아닌, 게임에 특화된 독자 운영체제를 탑재한 덕분에 게임 도중에 언제라도 중단이 가능한 슬립 모드를 지원하며, 스팀 라이브러리를 편하게 탐색하며 게임 관리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다만, 스팀 플랫폼 이외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대단히 불편하며, 호환성 역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한계다. 또한 2024년 1월 기준으로는 스팀덱 이후에 출시된 게이밍 UMPC 대비 스펙이 낮은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게(669g) 역시 가벼운 편은 아니다. 국내 출시 가격은 58만 9000원(256GB)~98만 9000원(1TB)이다.
에이수스 ROG 엘라이(ASUS ROG Ally)
PC 제조사인 에이수스가 2023년 6월에 출시한 게이밍 UMPC로, 에이수스의 고급형 게이밍 기기 브랜드인 ROG(REPUBLIC OF GAMERS)의 제품군답게 높은 성능과 화려한 디자인을 앞세워 관심을 끈 제품이다. 스팀덱의 전용 프로세서를 개발한 바 있는 AMD에서 아예 휴대용 게이밍 기기 특화 프로세서로 새로 개발한 ‘라이젠 Z1(익스프림 버전의 경우 최대 8코어 16 쓰레드)’를 처음 탑재한 제품이기도 하다.
화면 역시 스팀덱의 HD급 보다 더 정교한 풀HD급 해상도에 2배 더 부드럽게 움직이는 120Hz 주사율의 화면을 탑재했으며, 범용성이 훨씬 우수한 윈도우11 운영체제를 적용하는 등, 여러모로 스팀덱을 의식한 듯한 한 수 위의 스펙을 갖춘 것이 ROG 엘라이의 장점이다. 보다 좋은 품질로 게임을 구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팀 외에도 MS 게임패스, 에픽 게임스토어, GOG를 비롯해 대부분의 PC 게임을 문제없이 즐길 수 있는 점 역시 차별점이다. 무게는 스팀덱보다 약간 가벼운 608g이다.
다만, 높은 성능을 갖춘 대신 상대적으로 짧은 배터리 이용 가능 시간이 단점으로 지적 받고 있다. 또한 본래 PC용 운영체제인 윈도우11의 특성상, 게임을 일시 중단하는 슬립 모드가 불완전해 편의성 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출시 가격은 99만 9000원이다.
레노버 리전고(Lenovo Legion Go)
2023년 10월, 대표적인 PC 제조사 레노버에서 출시한 게이밍 UMPC다. 경쟁 제품 대비 상대적으로 나중에 출시된 만큼, 더 높은 스펙 및 다양한 부가기능으로 승부하는 제품이기도 하다. 프로세서는 에이수스 ROG 엘라이에도 탑재된 AMD 라이젠 Z1 익스트림을 이용했지만 더 큰 8.8 인치의 화면, 그리고 풀HD급을 능가하는 2.5K급(2560x1600)의 고해상도, 144Hz의 고주사율을 표시할 수 있다.
또한, 광학 센서가 내장된 좌우측 컨트롤러를 분리해 마우스처럼 움직이며 FPS를 즐기거나 전용 안경(별매)을 이용해 큰 화면으로 게임을 즐기는 등의 독특한 부가 기능을 다수 지원한다. 배터리 용량 및 전력 효율도 우수해 이전에 출시된 스팀덱이나 ROG 엘라이 등의 다른 게이밍 UMPC이 비해 긴 배터리 이용 시간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윈도우11 운영체제를 이용하므로 게임 호환성도 높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가진 제품이지만 워낙 큰 화면과 많은 기능을 품고 있다 보니 본체 무게가 854g(컨트롤러 결합 시)에 달할 정도로 무거워졌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 받고 있다. 이 때문인지 레노버에서는 직접 들고 플레이하는 모습 보다는 본체를 세워 두고 컨트롤러를 분리해 즐기는 모습을 강조하는 편이다. 국내 출시 가격은 109만 9000원에서 시작한다.
MSI 클로(MSI Claw A1M)
또다른 PC 제조사 MSI에서도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4 행사장에서 신형 게이밍 UMPC인 ‘클로’를 공개했다. 제품의 전반적인 크기나 디자인은 앞서 출시된 에이수스 ROG 엘라이와 유사하다. 7인치의 풀HD급(120Hz) 화면을 탑재한 점, 윈도우11 운영체제를 탑재한 점 역시 ROG 엘라이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제품 무게는 스팀덱과 비슷한 675g이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프로세서다. 다른 게이밍 UMPC가 대부분 AMD의 프로세서를 탑재한 반면, MSI 클로는 인텔의 모바일 프로세서인 코어 울트라 7 155H(코드명 메테오레이크)를 탑재했다. 코어 울트라 7은 인텔의 최신 모델로, 이전의 인텔 프로세서보다 확연하게 그래픽 처리 능력이 향상된 아크(Arc)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내장했다.
인텔의 최신 플랫폼을 적용한 덕분에 와이파이7이나 블루투스 5.4, 썬더볼트4와 같은 최신 부가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게임 구동능력 외에도 전력 효율이나 발열 관리 면에서도 어느 정도 개선이 있을 지 주목 할 만 하다. 다만 2024년 1월 현재, 아직 출시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실제 성능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MSI 클로는 올 2월 중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출시 가격은 아직 미정이지만 ROG 엘라이와 유사한 가격대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