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로 가구, 소품, 화장품까지...ESG붐 타고 ‘업사이클링’ 뜬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2023년 현재,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재무적 성과를 넘어, 환경 친화성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까지 반영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거두는 것을 넘어, 사회에 및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착한’ 기업을 추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시장 곳곳에서 목격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친환경 트렌드를 적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들이다. 이는 기존의 재활용(recycling, 리사이클링)의 상위 개념이다. 이미 사용된 제품이나 폐기물을 활용해 재사용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가치를 가진 전혀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품질이 좀 미흡하더라도 환경을 보호해야 하니까, 혹은 값이 싸니까 친환경 제품을 사 달라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시장에 통하지 않는다. 리사이클링 제품들은 단순히 버려지는 폐기물의 양을 줄여 환경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납득할 만한 품질을 갖추고, 기존에 없던 참신한 형태의 경험을 시장에 제공해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하기도 한다.
제품 상자, 버리지 말고 실내 소품으로 만드세요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업사이클링 및 재활용을 주제로 한 글로벌 디자인 공모전 ‘리크리에이트 디자인 챌린지’의 우승작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주변 환경에 조화되는 금속 컨테이너 안에 스마트폰을 내장하는 형태로 업사이클링을 구현한 산불 탐지 장치, 삼성 제품에서 카메라, 스피커, LED 등의 부품을 재활용해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모듈형 키트 등이 선정되었다.
그 외에 삼성전자는 2020년부터 출고되는 라이프스타일 TV에 업사이클링 개념을 도입한 ‘에코 패키지’ 포장 박스를 적용하고 관련 아이디어의 공모전도 매년 하고 있다. 포장 박스의 각 면에 도트 디자인을 적용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으로 포장재를 잘라내 리모컨 수납함이나 잡지꽂이, 반려동물용품 등을 조립할 수 있다. 그리고 포장박스 상단에 물건의 제작을 돕는 설명서가 링크된 QR코드도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폐젓가락, 커피 찌꺼기에서 비롯된 놀라운 변화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 스타트업들의 업사이클링 제품 및 관련 아이디어도 눈에 띈다. 캐나다의 찹벨류(ChopValue)는 버려지는 나무젓가락을 수거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나무젓가락이 800억개에 이른다는 것에 착안한 사업으로, 이를 통해 책상, 서랍장, 선반 등의 가구, 그리고 도마와 같은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종류의 업사이클링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폐기된 젓가락이 비위생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불식하기 위해 수성 수지 코팅 및 고온 가열 과정을 거쳐 멸균∙항균 처리된 제품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네덜란드의 커피베이스(Coffeebased)는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업사이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커피를 추출하고 남은 커피 찌꺼기를 수거한 후, 이를 이용해 화분, 커피잔, 메모장, 노트, 가구 패널 등의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커피베이스와 제휴한 파트너사들은 비누, 양초, 커피 찌꺼기로 키운 느타리버섯 원료의 과자를 만드는 등, 관련 생태계를 확대시키는 중이다.
맥주 부산물, 꼼꼼히 살펴보니 ‘뷰티 신세계’
국내 뷰티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린바이오 스타트업 ‘라피끄’는 맥주를 제조하고 남은 부산물인 ‘맥주박’에 주목했다. 식물체 연화기술 기반의 화장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라피끄는 맥주박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자사 제품의 제조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최근 화장품 업계가 피부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활성물질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가운데, 라피끄는 맥주박에서 분리된 효모로 활성물질에서 당을 분리해 한층 높은 활성 효능을 갖게 하는 비배당체화 기술과 추출물, 스크럽, 그래뉼 등을 개발했다.
이와 더불어 맥주박에는 높은 항산화 능력 및 탈모방지 기능을 기대할 수 있는 물질도 함유되어 있어 이를 활용해 다양한 ‘업사이클 뷰티’ 브랜드의 전개가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 지난 10월 신규 업사이클 브랜드 ‘브루버드(Brewbud)’를 런칭하고 괄사비누, 핸드워시 등의 제품을 출시했다. 라피끄는 또한 맥주 부산물 외에도 감귤쥬스를 착즙하고 남은 부산물인 감귤박을 활용해 또다른 업사이클 뷰티 제품을 개발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상품성 확보, 동반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기대
업사이클 관련 시장은 ESG 경영을 확대하고자 하는 기업, 그리고 소비자 인식의 변화에 힘입어 다양한 업계 및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차별화 제품으로 폐기물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상당수준의 기술력과 더불어 기획력까지 필요하다. 아무리 환경에 기여하는 제품이라고 한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상품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 엄연한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업사이클링 시장의 확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개척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라피끄의 이범주 대표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맥주 부산물 기반 업사이클 뷰티 제품을 기획하게 된 것은 ESG 경영의 측면도 물론 있지만, 해당 성분이 우리가 추구하는 식물 원료의 효능연구에 적합했기 때문이 더 크다”라며 “원활한 재료 수급을 위해 오비맥주와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그들 역시 자사의 부산물을 재활용함과 동시에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는 ESG 경영을 실천하게 된 것에 고무적”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