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주요 쟁점 뒷전, 아쉬운 국정감사
[IT동아 한만혁 기자] 2023 국정감사(국감) 주요 일정이 마무리됐다. 국감은 국회가 전반적인 국정 운영 사안 실태를 파악하고 잘못된 부분을 적발 및 시정 요청함으로써, 입법, 예산 심사, 국정 통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매년 국감이 시작되면 국회는 다양한 분야의 주요 사안을 검토한다. 가상자산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해마다 주요 이슈를 되짚어 보고 관계자들을 소환해 잘잘못을 따졌다. 하지만 올해는 당초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최종 승인된 증인 명단에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한 명도 없었고, 언급된 사안은 가상자산 거래소 준비금 적립 현황, 해외 발행 가상자산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 등 일부에 불과했다.
가상자산 업계 증인 ‘0명’
올해 국회가 확정한 증인 중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석우 DAXA 의장 겸 두나무 대표가 증인으로 신청됐지만 최종 협의 과정에서 제외됐다. 지난해에는 시세 폭락으로 투자자 피해를 야기한 테라·루나, 가상자산 거래소 FTX 파산 등의 이슈로 가상자산 거래소, 블록체인 투자사, 블록체인 프로젝트 등 다양한 업계 관계자가 국회에 소환됐다.
증인이 없다는 것은 국감에서 논의될 가상자산 관련 사안이 적다는 의미다. 실제로 공론화된 내용도 그리 많지 않았다. 가상자산 관련 사건·사고, 토큰증권 및 가상자산 관련 제도 등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준비금·예치금 현황
지난 8월 은행연합회는 가상자산 실명계좌 운영지침을 발표하며 가상자산 실명계정을 확보한 거래소에 이용자 손해배상 책임을 명목으로 준비금 적립을 요구했다. 준비금은 이용자 손해배상 책임을 이행하는 용도로, 은행연합회는 30억 원 이상 최대 200억 원으로 규정했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근거로 실명계정을 확보한 5대 거래소의 준비금 적립 현황을 공개했다. 업비트의 준비금이 200억 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빗썸 100억 원, 코인원 73억 원, 코빗과 고팍스는 각각 30억 원이다.
이와 함께 김희곤 의원은 케이뱅크의 경우 가상자산 예치금 비율이 약 20%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은행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 건전성이나 투명성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함인데 현 상황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해당 부분은 인식하고 있으며 실태를 면밀히 파악 후 금융위원회나 금융정보분석원과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투자자 피해 야기한 버거코인, 방관하는 거래소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감독원 국감에서 “해외에서 발행한 가상자산인 ‘버거코인’ 시세 하락으로 투자자 피해가 늘고 있다”라며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소속 대형 거래소들은 거래 수수료, 예치 이자 등 수익만 챙기고 투자자 피해는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버거코인이라도 국내 투자자 비중이 높다면 금융감독원이 시세 조작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병덕 의원이 사례로 든 것은 ‘수이코인(SUI)’이다. 수이코인은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가 진행하던 블록체인 프로젝트 디엠(구 리브라) 출신 인력이 설립한 수이재단의 가상자산이다. 지난 5월 처음 발행했으며 이후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에 상장됐다. 상장 직후 업비트 기준 2000원 이상 치솟기도 했지만 유통량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9월 500원대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이복현 원장은 “유통량 조작이나 불공정 공시가 있다면 DAXA 측과 협의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상자산법) 1단계 법안에 발행시장 관련 규제가 충분하지 않아 강제적 통제 권한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상자산법이 시행되는 시점에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감에서 수이코인 유통량 의혹이 언급되자 수이재단은 공식 엑스(구 트위터) 채널을 통해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수이재단은 “초기 커뮤니티 액세스 프로그램(CAP)을 통해 판매한 것 외에는 수이코인을 판매한 적이 없다”라며 “수이코인 이동 상황은 블록체인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CAP은 수이 블록체인 초기 기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특별 판매 프로그램이다. 또한 “가상자산 유통 일정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DAXA 및 회원사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쟁점 뒷전, 아쉬운 국감
올해도 가상자산 업계는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입출금 중단으로 인해 적지 않은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고, 가상자산 관련 살인사건, 보이스피싱 등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 논란, 가상자산 상장 수수료 논란도 이슈였다.
정책 부분도 마찬가지다.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의 경우 올해 초 발표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고 가상자산법은 아직 세부 시행령이나 2단계 법안이 나오지 않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가상자산 업계는 국감에서 다양한 사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사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준비금과 예치금, 버거코인만 언급됐을 뿐이다. 국정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입법, 국정 통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국감의 취지를 생각할 때, 올해 가상자산 분야 국감은 적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국회는 가상자산법 1단계 법안 세부 시행령과 가상자산 사업자 및 거래소 규제에 해당하는 2단계 법안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비록 국감에서 공개적인 논의는 없었지만 가상자산 업계 현실을 반영하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다양한 화두를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내년 국감에는 올해 지나친 사안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지 않기를 기대한다.
글 /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