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반도체 제재 뚫었나? 화웨이, 자체 반도체로 스마트폰 제조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화웨이가 지난 29일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로 인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메이트 60 프로가 탑재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자체 개발한 2세대 7나노미터 기반 기술 기반의 5G 프로세서로 알려졌는데,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한 게 사실이라면 몇 년간 이어져온 대중 반도체 제재가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막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의 흐름과 배경은?

7나노미터 기반의 고성능 반도체가 탑재됐다고 알려진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 / 출처=화웨이
7나노미터 기반의 고성능 반도체가 탑재됐다고 알려진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 / 출처=화웨이

2019년 5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를 직접 겨냥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로인해 화웨이는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전면 금지됐으며, 화웨이 제품을 취급하는 기업에까지 2차 제재를 가하기로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웨이 제품 판매가 중단됐다. 여기에 2020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한번 더 중국계 IT 기업들이 미국 기술 기반의 반도체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화웨이를 비롯한 모든 중국 기업이 미국 반도체를 쓸 수 없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기업 때리기에 그쳤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반도체를 만들 수 없도록 조치하고 나섰다. 2022년 8월 발효된 반도체 및 과학법은 미국 및 관련 반도체 기업들의 공급망을 미국 본토로 이전하고, 인프라 확충에 290억 달러(약 51조 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미국에 공장을 세워야 하고, 보조금 수령에 중국과의 관계 단절을 조건으로 걸었다. 사실상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퇴출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올해 7월부터 미국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인공지능 반도체를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차세대 기술 패권으로 떠오르면서 중국의 사다리를 걷어차겠다는 의도다. 이로 인해 엔비디아와 AMD 등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고성능 반도체를 수출할 수 없게 됐고, 중국 시장용 저사양 반도체를 별도로 설계해서 판매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중국의 반도체 무기화를 방지하고, 중국이 패권국으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메이트 60 프로의 ‘기린 9000s’ 왜 논란인가

중국 관영매체 CGTN는 X에 SMIC에서 기린 9000s가 제조되었다는 내용을 올렸다 / 출처=X
중국 관영매체 CGTN는 X에 SMIC에서 기린 9000s가 제조되었다는 내용을 올렸다 / 출처=X

이러한 가운데 화웨이가 기린 9000s라는 새로운 반도체를 공개한 것은 그 자체로도 논쟁거리다. 중국 관영 매체 CCTV 산하 영문 매체 CGTN은 X(前 트위터)를 통해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는 2020년 화웨이 제재 이후 첫 고급형 기린 프로세서이며, 중국 반도체 기업 SMIC에서 제조되었다고 밝혔다. 벤치마킹 프로그램 안투투(AnTuTu)와 긱벤치6(Geekbench 6)에 등록된 기린 9000s의 성능 테스트 결과는 현재 세대 제품과 약 2세대 정도 아래인 퀄컴 스냅드래곤 888과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놓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하이실리콘이 칩을 설계하고, SMIC가 제조했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출처=셔터스톡
중국 하이실리콘이 칩을 설계하고, SMIC가 제조했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출처=셔터스톡

일단 SMIC가 실제로 7nm 기반 반도체를 제조했을 가능성이다. 테크인사이트는 SMIC가 기존에 보유한 2세대 7나노미터 공정인 N+2를 활용해 제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품을 만들 능력이 없진 않으나 화웨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성능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벤치마크도 신뢰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SMIC 역시 기린 9000s의 제조 및 세부 사항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제조한 것이 맞다면 미국과의 경쟁에서 상당한 우위를 잡은 상황이 된다.

중국이 완전한 자체 공정이 아닌 자체 공급망 네트워크를 사용해 제조했을 가능성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반도체 산업 협회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통신 대기업들이 미국의 수출 통제를 피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칩 제조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 대기업들이 미국의 촘촘한 제재망을 우회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제조사들이 2차 제재의 위험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협력할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없진 않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보면, 기린 9000s의 성능은 퀄컴 스냅드래곤 888과 유사한 면이 많다 / 출처=퀄컴 테크날러지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보면, 기린 9000s의 성능은 퀄컴 스냅드래곤 888과 유사한 면이 많다 / 출처=퀄컴 테크날러지

마지막으로 화웨이가 탑재한 칩이 재고품일 가능성이다. 2020년 9월 이전까지는 화웨이가 TSMC를 통해 첨단 반도체를 조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화웨이는 수입 금지가 내려지기 직전에 하이실리콘 사업부를 통해 칩을 비축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재고품을 꺼내서 다시 새 제품처럼 포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성능 자체가 2020년 출시된 제품과 동급인 점도 근거가 된다. 이 경우라면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되려 중국 정부가 곤란한 상황임을 강조한 꼴이 된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굳건할까, 무너질까

결국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는 지난 몇 년간 미국 정부가 쌓아온 대중국 제재망의 성패를 보여줄 제품이다. 화웨이가 성능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자체 제조는 베일에 쌓인 상황인데, 출시일인 9월 12일 전후로 진상이 파악될 것이다. 만약 자체 제조가 맞다면 대중 반도체 제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고, 재포장 등의 이유라면 중국의 수준을 미국에 확인시켜 준 꼴이 된다.

화웨이와 SMIC 모두 자세한 성능 및 스펙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 출처=화웨이
화웨이와 SMIC 모두 자세한 성능 및 스펙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 출처=화웨이

다만 시나리오와 별개로 제품 스펙 자체가 허위일 가능성도 있다. 화웨이는 과거에도 P10 및 메이트 9 제품에 메모리와 스토리지를 섞어서 사용해 허위 스펙을 기재한 바가 있고, 스마트폰 카메라 샘플을 소개하면서 캐논 DSLR로 찍은 결과물을 낸 적도 있다. 아너 10이나 P20 프로 등 고사양 제품의 성능을 거짓으로 끌어올린 사례도 있고, P30의 방진방습 인증을 받지 않고도 받았다고 표기한 적도 있다. 메이트 60 프로도 스펙을 숨기는 등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화웨이가 제품을 공개한 날은 공교롭게도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을 시기다. 이번 제품 공개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지닌 가운데, 이번 발표가 중국의 반도체 패권의 의지를 보여줄지, 의미 없는 메아리에 그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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