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곳에서만 소리 듣는 ‘초지향 음향’ 시대 열린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소리가 뻗는 방향과 주파수를 조절해 특정한 방향에서만 뚜렷하게 듣는 기술 ‘초지향 음향’ 시대가 열린다. 이미 횡단보도의 통행 알림, 터널의 졸음운전 경고 방송 등 우리나라 곳곳의 공공 영역에서 활약한 기술이다. 초지향 음향 기기는 작게 만들기 어렵고, 표현 가능한 음역대가 좁아 일반 음악 재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단점을 가졌다. 업계는 기술을 고도화, 소형·경량에 음역대가 넓고 가격도 저렴한 ‘초지향 스피커’를 공개하며 활용 영역을 넓히려 한다.

초지향 음향 기술을 탑재한 '초지향 스피커'를 사용하면 소리를 원하는 곳으로만 보낸다. 하지만, 이 때 필요한 소리의 변조 알고리듬은 만들기 어렵다. 초지향 스피커는 음질 특성이 까다로운데다 기기 가격도 비싸 지금까지 공공이나 산업 영역에 주로 쓰였다. 세계 주요 음향 기업들도 초지향 음향 기술과 스피커의 연구 개발을 2순위로 미뤘다. 만들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활용 영역이 좁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세계 음향 스타트업과 음향 전문 기업들은 십수 년 전부터 초지향 음향 기술을 연구 개발했다. 높은 개발 난이도와 비싼 가격 등 단점을 해결하고 기기를 보급하면, 초지향 음향 기술의 쓰임새가 많이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해서다. 덕분에 최근에는 PC 스피커나 가정용 사운드 바 수준으로 부피가 작고 음질도 좋은 초지향 스피커가 속속 등장했다.

초지향 스피커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공공 기관은 초지향 스피커로 쓰레기 무단 투기자, 주차 위반자에게만 들리는 경고 방송을 한다. 초지향 스피커는 소리를 특정 방향으로만 전달하므로 소음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가 밀집 지역이나 아파트, 지하 주차장 등에서 활용하기 좋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전시품 앞에 선 관람객에게만 설명이 들리도록 초지향 스피커를 배치하면 된다.

특정 방향으로만 소리를 전달하는 초지향 스피커는 여러 부문에 적용 가능하다 / 출처=제이디솔루션
특정 방향으로만 소리를 전달하는 초지향 스피커는 여러 부문에 적용 가능하다 / 출처=제이디솔루션

소상공인의 매장에 설치된 키오스크에 초지향 스피커를 연결하면, 주변의 환경이 시끄러워도 소비자에게 키오스크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 가능하다. 키오스크의 터치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노년층 소비자, 키오스크를 처음 다루는 소비자에게 목소리로 사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같은 이치로 외국인에게만 들리는 통역 서비스도 만든다. 매장 문 앞에 초지향 스피커를 설치하면 그 앞을 지나가는 소비자에게만 소리를 전달한다. 소음 공해를 일으키지 않고 음성 광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독특한 기술이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중대형 매장 내부에서의 활용 방안도 다양하다. 일본의 한 대형 편의점 기업은 초지향 스피커를 매장 상품의 도난 방지와 소비자 안내에 활용 중이다. 상품을 훔치거나 훼손하려는 등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 상품을 찾는 사람에게만 들리도록 방송을 하는 원리다.

초지향 스피커는 개인·가정용 음향 기기로도 알맞다. 텔레비전에 초지향 스피커를 연결하면, 소리를 부엌이나 거실의 소파로만 전달하고 공부방에서는 들리지 않도록 설정 가능하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쓰기 알맞다. 같은 이치로 게임을 즐기거나 영화를 볼 때 소리를 특정 방향에서만 듣도록 설정하는 것도 된다.

캠핑장의 소음 문제도 초지향 스피커가 해결한다. 음악을 틀어도 소리가 특정한 방향 혹은 실내에서만 들리는 덕분이다. 블루투스 무선 연결을 지원하는 초지향 스피커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캠핑용 모니터와 연결 가능하다. 덕분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나만의 콘텐츠를 오붓하게 즐기도록 돕는다.

초지향 스피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세계 음향 스타트업과 음향 전문 기업은 속속 제품을 선보이고 활용 범위를 넓힌다. 미국 포커소닉스(Focusonics)는 지향성 스피커 ‘모델 A·B(Model A, Model B)를 개발하고 미술관, 박물관의 도입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 홀로소닉스(Holosonics)도 초음파 빔 방식 지향성 스피커 ‘오디오 스팟라이트(Audio Spotlight)’를 용도에 따라 맞춤형 설계해 판매 중이다. 유럽 제조사 ‘울트라소닉(UltraSonic)’도 ‘어쿠스페이드(Acouspade)’와 같은 초지향 스피커를 개발, 판매한다. 다만, 이들 제품은 대개 가격이 900유로(약 130만 원) 이상으로 비싸다. 몇몇 제품은 부피가 휴대 불가능할 정도로 크거나, 유선 연결만 가능해 사용상 제약도 있다.

보급형 초지향 스피커 브릭 / 출처=제이디솔루션
보급형 초지향 스피커 브릭 / 출처=제이디솔루션

우리나라 종합 음향 기술 기업 제이디솔루션도 초지향 스피커 ‘브릭’을 앞세워 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2009년부터 초지향 음향 기술을 연구 개발한 이들은 횡단보도 통행 알림, 터널 안의 졸음운전 경고 방송용 초지향 스피커를 우리나라 곳곳에 1500대 이상 설치했다. 브릭은 초지향 스피커의 장점을 고스란히 발휘하지만, 본체 부피는 휴대 가능할 정도로 작다. 가격도 수십만 원 선이어서 기업은 물론 소상공인, 개인 소비자도 사서 쓰기 좋다.

제이디솔루션은 브릭의 음역대 표현 능력을 강화했다. 음역대가 넓은 소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기존 초지향 스피커의 단점을 해결한 것. 덕분에 이 제품은 사람의 목소리와 영화의 음향, 가요와 같은 음악 모두 원활히 재생한다. 유선은 물론 블루투스 무선 연결도 된다. 입력과 출력 지연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활용 범위가 산업 현장, 소상공인의 매장이나 공공 기관, 교회나 사무실, 가정 등으로 넓다.

제이디솔루션은 브릭을 보급해 초지향 음향 기술의 장점을 일반 소비자에게 알릴 각오다. 초지향 음향 기술을 응용한 '입체 음향 기술'과 '소형 입체 음향 스피커'도 곧 선보인다. 특정한 방향으로만 소리를 보내는 초지향 스피커의 특성을 활용하면, 사람의 주변 360도 전방위로 소리를 전달하는 입체 음향을 기기 하나로 구현 가능하다. 사용자는 소형 입체 음향 스피커의 배열을 바꾸거나 여러 개를 조합해 자신만의 입체 음향을 만든다. 제이디솔루션은 소형 입체 음향 스피커를 2024년 열리는 CES 2024에 출품, 초지향 음향 기술력을 과시할 예정이다.

제영호 제이디솔루션 대표는 “10년 이상 지향성 음향 기술을 연구 개발, 세계 수위의 제품을 선보였다. 음질과 기능 모두 우수한 범용 초지향 스피커 브릭은 우리 일상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줄 제품이다. 협업을 제안한 국내외 대기업과 함께 세계 시장에 음향의 새 기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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