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 반복…"기술 활용한 대응 시급"
[IT동아 김동진 기자] 지난 주말 서울 영등포에 시간당 50㎜가 넘는 ‘극한호우’가 내리는 등 올여름 매우 강하고 많은 비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사고를 포함, 전국적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점점 더 빈번해지는 극한호우와 이로 인한 홍수와 침수, 산사태, 도로 유실 등으로 매년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자연재해 예보 및 신속한 대응에 첨단 기술을 하루빨리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사람에게 의존하는 기존 재난 대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과 주요국도 속속 자연재해 대응에 기술을 활용하고 나섰다.
글로벌 기업·주요국…홍수 예측·사방댐 설계 등에 기술 적용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에 주요국과 글로벌 기업은 홍수 예측과 산사태를 막아줄 사방댐 설계 등에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11월, 연례 컨퍼런스를 통해 AI 기술을 홍수나 산불 등 인류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자연재해 대응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예로 구글은 자사 AI를 활용, 홍수를 예보하는 시스템인 ‘플러드허브(Flood Hub)’를 개발했다. 머신러닝을 통해 관련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현재 기상정보와 상황 및 강의 수위를 예상해 홍수 경보를 내리는 방식이다.
2017년부터 플러드허브를 운영한 구글은 해당 시스템을 강화하는 동시에 브라질·콜롬비아·스리랑카·가나·나이지리아·라이베리아 등 18개 국가로 추가 적용하기로 했다. 구글은 "홍수 조기 경보 시스템을 통해서 사망 사고의 43%, 경제적 피해의 35~50%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글은 위성 이미지를 학습한 AI가 실시간으로 산불을 추적 관찰하고 확산 여부를 예측하는 시스템도 개발했다. 해당 시스템을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일부 국가와 지역에 제공 중이다.
토사가 흘러 내려가는 것을 방지해 산사태를 막는 ‘사방댐’ 설계에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프랑스 소프트웨어 기업 다쏘시스템은 자사 디지털트윈 기술인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활용, 일본의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인 퍼시픽 컨설턴트의 사방댐 설계 효율을 높이고 있다. 디지털트윈은 가상의 공간에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진행, 결과를 미리 예측해 실제 위험을 피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일본은 국토의 4분의 3이 산과 언덕으로 덮인 나라로, 독특한 지형과 함께 잦은 태풍과 지진으로 홍수와 산사태에 특히 취약하다. 사방댐 설계 효율을 높이는 작업에 매진하는 이유다. 이에 일본 기업 퍼시픽 컨설턴트는 다쏘시스템의 디지털 트윈 기반 3D 모델링 기술을 사방댐 설계 작업에 적용했다.
기존에 주로 사용하는 건축 정보 모델링(BI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은 대부분 2D 도면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예컨대 사방댐을 설계할 때 제안된 높이를 기준으로 도면을 작성한 다음,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을 디지털 트윈 기반의 3D 모델링으로 전환해 모든 데이터를 중앙에서 관리하면, 3D 모델의 일부를 변경해도 자동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더 이상 구조 설계와 모든 출력 도면을 수동으로 하나하나 업데이트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인프라 설계와 분석 결과 도출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예컨대 2D 도면으로 사방댐 건설에 필요한 퇴적물 부피를 계산할 때, 단면에 따라 부피가 달라지므로 다양한 패턴을 만들려면 여러 개의 도면을 만들어야 했고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쏘시스템 관계자는 “2D 도면만 사용했을 때는 댐 하나에 대한 퇴적물의 양을 계산하는 데 한 시간 정도가 필요했다면, 디지털 트윈 기반의 인프라 설계 및 엔지니어링 기술로 몇 초 만에 동일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며 “도로 설계를 위해 한 줄로 300미터에 해당하는 흙양을 계산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는데 이제는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효율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빛을 발한다. 예컨대 산사태와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해 최대한 빨리 댐을 복구해야 할 때 혹은 유실된 도로를 복구할 때와 같은 상황이다.
디지털 기술 활용한 자연재해 예방 속도 내야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원인을 놓고 네 탓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에게 의존하는 데서 나아가 기술을 활용해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이제는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포항 냉천 범람으로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홍수 예보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까지 해당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안타까운 인명사고는 오송에서 또 되풀이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환경부는 현재 디지털 트윈 기반의 '스마트 침수 예측·대응 시스템'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며, 지난해 광주광역시에 도시 침수 대응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경북 포항과 경남 창원에도 해당 시스템을 내년까지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광주와 포항, 창원까지다. 주요 강에 적용할 홍수 예보 시스템과 달리, 전국 단위 스마트 도시침수 예측·대응 시스템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편 자연재해에 기술을 적용하는 각종 사업의 주무부처가 과기정통부와 행정안전부, 환경부 등으로 분산돼 있어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연재해 대응이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각종 사업에서 도출되는 데이터를 하나로 취합해 여러 기술이 맞물려 움직여야 하므로 의사결정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자연재해 대응에 기술을 적용하는 각종 사업이 주무 부처별로 나눠 진행되는 방식은 예컨대 기술 관련 부처가 기획안을 짜 놓으면 이를 실행해야 하는 부처에 사업을 이관해 진행하는 방식이다. 의사결정 체계를 일원화하면 사업에 속도가 붙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관련 법안과 제도 안에서 주무부처를 정해야 하므로 의사결정 체계를 일원화하는 방안은 쉽게 도출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 빨리 자연재해에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