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로 위상 높아진 CVPR, 그 자리를 빛낸 국내 스타트업 세 곳은?
[IT동아 남시현 기자] 지난 6월 18일에서 22일(현지 시각) 개최된 컴퓨터 비전과 패턴 인식 콘퍼런스(CVPR)는 인공지능 혁신의 진원지라고 할 만큼 많은 내용들이 다뤄졌다. CVPR은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와 컴퓨터 비전 재단(CVF)가 개최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인공지능 학회로, 인공지능과 기계 학습(머신 러닝), 증강 및 가상 현실, 심층 학습(딥 러닝) 등의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을 발표하고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 CVPR은 9천155건의 논문이 제출돼 2천359건이 수용되었으며, △ 기술의 현실화 △ 자율 주행 생태계 △ 이미지와 언어가 통합된 기술 △ 시장 수요에 맞춘 산학협력 △기술적 관점의 다양성 및 포용성 등 핵심 동향으로 논의됐다.
CVPR이 전 세계 인공지능 기업들의 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CVPR이 인공지능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CVPR 2023은 만 명 이상의 기업 관계자 및 업계 전문가가 참석했으며, 3천여 개 이상의 기업 및 조직, 75개국의 공학 및 과학 리더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는 논문 발표를 넘어 전 세계 인공지능 전문가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학습 및 채용 등의 기회까지 제공하는 자리로 역할을 했다. 기술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CVPR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점차 참여를 넓히고 있다.
전 세계 기술 기업 참가··· 국내에선 LG전자, 현대차 등 돋보여
올해 CVPR은 메타 AI, 구글 리서치, 애플, 퀄컴, 아마존 사이언스, 도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 등을 포함한 전 세계 117개 기업 및 단체가 부스를 마련했다. 국내에서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LG유플러스, LG CNS 등 LG 주요 계열사 다섯 곳과 LG AI 연구원이 함께 CVPR에 참가했으며, 지난해 미국 자율주행 합작 법인인 모셔널(Motional)로 참가한 현대 자동차도 올해는 처음으로 채용 부스를 마련하는 등 인공지능 생태계 확보에 진정성을 보였다.
국내 양대 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참가했다. 네이버는 작년까지는 부스를 마련했으나 올해는 부스 마련 없이 8건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카카오는 카카오브레인과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이름으로 6건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의료 인공지능 기업 루닛(Lunit), 자율주행 기술기업 라이드플럭스, 머신비전 솔루션 기업 호두에이아이랩, 방문객 분석 솔루션 스타트업 메이아이, 머신러닝오퍼레이션(MLOps) 서비스 기업 베슬에이아이 등 다수 기업이 인공지능 관련 논문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푸드 비전 인공지능 기업 누비랩, 인공지능 데이터 가공 플랫폼 기업 셀렉트스타, 인공지능 반도체 제조사 퓨리오사AI 세 개 기업은 별도로 부스를 개설해 국내 인공지능 스타트업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들 기업이 말하는 CVPR의 중요성, 그리고 참가 이유는 무엇일까.
구글도 주목한 푸드 비전 인공지능 스타트업, 누비랩
누비랩은 2018년 11월 설립되었으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여 탄소를 저감 하고, 개인 식습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헬스케어 시스템까지 종합적으로 다루는 푸드 비전 인공지능 스타트업이다. 올해 2월에는 구글 ‘순환경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돼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누비랩은 푸드 비전 인공지능으로는 유일하게 CVPR에 참가했으며 2018년부터 수집해온 500만 건 이상의 자체 데이터로 고도화된 푸드 비전 인공지능 솔루션, 뉴트리비전 AI(NutriVision AI)를 선보였다.
김경덕 리더는 “누비랩 이상록 연구원이 CVPR에 제출한 ‘Decompose, Adjust, Compose: Effective Normalization by Playing with Frequency for Domain Generalization’ 논문 발표 이외에도 인재 유치 등을 목적으로 참여했다”라고 참가 이유를 말했다. 또한 “CVPR이 컴퓨터 비전 업계에서는 권위가 있으나 학술, 연구기관 등의 참여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기업이 등장했을 때 더욱 주목을 받는다. 부스를 마련한 덕분에 실제로 입사 지원까지 받았고, 또 고객으로 모시고 싶은 인공지능 기업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누비랩은 이미 해외에서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올해 2월부터 5개월 간 싱가포르 최대 국립병원 중 하나인 알렉산드라 병원과 환자의 영양 섭취 현황을 추적함과 동시에 누비랩 AI 스캐너를 활용해 병원 직원의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병원 측에서는 누비랩의 음식별 섭취 현황 정확도를 95% 이상으로 보고 스캐너 운영 병동을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올해 4분기까지 캐나다 공중보건청과 함께 환자식 관리 및 영양 섭취 현황 추적 솔루션을 공동으로 연구할 예정이다. 올해 CVPR에서 성공적으로 기술력을 선보인 만큼, 앞으로도 식사 관련 헬스케어 시장에서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경덕 리더의 설명이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로 새 시장에 도전하는 셀렉트스타
셀렉트스타는 25만 명의 작업자를 보유한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 ‘캐시미션’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개발 및 학습에 필요한 컴퓨터 비전 및 영상 처리 데이터, 인간 인지 능력 수집, 정교한 자연어 처리 등의 데이터를 수집, 가공하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가 학습할 때 필요한 공간, 깊이, 개체, 환경 정보를 정밀 가공하거나, 인공지능이 자연어를 처리할 때 더 사람처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공지능에 맞는 맞춤형 자연어 데이터를 구축하는 솔루션도 공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셀렉트스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CVPR은 북미 법인명인 다투모(Datumo)로 참가했다
셀렉트스타 황민영 부사장은 “CVPR은 전 세계 컴퓨터 과학에서 최고 수준의 권위를 갖고 있다. 자체 개발한 시각화 기반 데이터셋 분석 솔루션 다투모 스코프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성능 향상에 모델 개선보다 데이터 개선이 효율적(Data-Centric Ai)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다투모 스코프는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시각 데이터를 분석·선별하는 솔루션이다.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 중 인공지능 학습에 쓰일 데이터를 명확히 정의해 학습 품질을 높이고, 투입 비용 및 시간을 줄인다. 황 부사장은 “작년 CVPR에서는 포항공대 비전랩이 발표한 InstaOrder 연구에 활용되는 데이터셋을 지원하기도 했고, 올해 CVPR에서는 오픈AI를 비롯한 여러 글로벌 인공지능 기업들과 만나 협력 파트너십을 논의했다”라고 성과를 정리했다.
아울러 셀렉트스타는 요슈아 벤지오, 얀 르쿤, 제프리 힌턴과 함께 전 세계 4대 인공지능 석학으로 불리는 앤드류 응(Andrew Ng)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방한 일정을 함께하는 성과도 달성했다. 앤드류 응 교수는 구글브레인 설립에 기여한 前 바이두 수석과학자로, 오는 7월 21일 금요일, 셀렉트스타가 주최하는 대중 강연에 참석한다. 강연에는 카이스트 인공지능연구원장 오혜연 교수, 셀렉트스타 김세엽 대표, 황민영 부대표 등이 함께 참여한다.
하드웨어 혁신으로 인공지능 개발 가속 제안, 퓨리오사AI
퓨리오사AI는 인공지능 연산에 최적화된 신경망 처리 장치(Neural Processing Unit, NPU) 반도체 제조사다. 퓨리오사AI는 지난해 처음 부스를 설치한데 이어 올해는 테슬라, 알리바바 클라우드, 어도비와 같은 등급의 골드 스폰서십을 맺고 전용 부스를 마련했다. 부스의 설립 목적은 올해 초 양산한 비전 인식 최적화 NPU, 워보이(WARBOY) 인공지능 반도체의 현주소를 전 세계 석학들에게 소개하는 데 있다.
퓨리오사AI 김민석 매니저는 “CVPR은 인공지능 기업과 연구소 등이 주로 참가하므로 최신 인공지능 동향과 산업 환경 등을 직접 확인하기 좋다. 퓨리오사AI 역시 부스를 설치해 실시간 데모 쇼케이스를 진행했으며, 전 세계 인공지능 기업들과 미팅을 진행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라고 답했다.
퓨리오사AI가 진행한 실시간 데모 쇼케이스는 단순한 제품 소개 이상의 가치가 있다. 김 매니저는 “CVPR 등 학계 최고 전문가들이 모이는 학회일수록 실시간 제품 시연이 부담스럽지만, 퓨리오사AI는 엄격한 기술 및 고객 평가로 기술력을 입증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진행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 대상의 실시간 시연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행여 기술력으로 인한 문제나 버그 등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안부터 결과까지 낱낱이 드러날 수 있어서다.
이어서 “워보이를 활용해 객체탐지, 다중 객체 추적, 의미 분할, 개체 분할, 안면 인식, 포즈 추정 등 컴퓨터 비전 관련 AI 모델을 실시간으로 가속했으며, 워보이 기반의 데이터센터향 서버 및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도 함께 소개할 수 있었다”라며 전시 내역을 소개했다.
퓨리오사AI, “업계 전반에서 GPU 운영비에 큰 부담··· NPU에 지대한 관심”
올해 퓨리오사AI의 참가가 유독 주목을 받은 이유는 생성형 AI의 대두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김 매니저는 “현재 업계에서는 GPU를 활용한 인공지능 연산이 대세다. 하지만 인공지능 개발자 및 학계에서 연산 처리 및 하드웨어에 대한 비용 문제가 큰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며, 그런 배경 덕분에 NPU가 GPU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음을 더욱 부각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퓨리오사AI의 NPU는 AI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는 단계부터 고객이 장치를 활용해 AI 모델을 최적화하고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까지 공개하는 등 고도화된 개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비전 인식과 추론 등에서 GPU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다. 작년까지도 추론 기술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지만, GPT4나 구글 바드 등 생성형AI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NPU를 활용한 효율적인 추론 시스템과 비용 등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라며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차세대 NPU 개발에 필요한 시장 동향도 파악했다고 한다. 김민석 매니저는 “퓨리오사AI가 인공지능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반도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 동향, 모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나 학계는 일반 상용 시장보다 추세가 2~3년 가까이 앞서있는 만큼 최신의 기술력을 습득하고 받아들이기가 좋다. 이번에 확보한 데이터는 내년 3분기 중 공개할 2세대 NPU 레니게이드의 구축에 참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퓨리오사AI의 2세대 NPU ‘레니게이드’는 데이터센터를 대상으로 대형 언어모델, 멀티 모달, 자연어 추천, 컴퓨터 비전 등의 기능을 제공하며, 2025년 2분기 중 데이터센터 서버 및 엣지 서버를 위한 파생형 모델인 ‘레니게이드-S’를 내놓는다. 또한 2026년 3분기까지 3세대 NPU 퓨리오사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위상 높아진 CVPR, 국내 스타트업도 기여해
CVPR이 세계 최고 권위 학회긴 하지만, 전문가를 위한 자리인 만큼 대중에게 각인될만한 자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VPR은 구글 학술검색의 상위 저작물 중 4위에 해당하며, 컴퓨터 관련 행사로는 가장 전문성과 영향력이 큰 행사다. 행사 자체도 꾸준히 성장해 5년 만에 논문 제출 건수도 세 배가 늘었고, 지난 10년 간 회의 참석자는 5배가 늘어 앞으로 중요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입지의 행사에서 누비랩, 셀렉트스타, 퓨리오사AI를 비롯한 국내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소개하고, 전 세계 인공지능 생태계에 기여했다는 점은 기업 입장에서 큰 자산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인공지능 생태계의 저력과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욱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