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분쟁, 중요한 것은 소비자
[IT동아 권명관 기자]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이동통신사와 같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nternet Service Provider, 이하 ISP)가 데이터 트래픽 종류(콘텐츠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사용자에게 차별없이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 아래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Content Provider, 이하 CP)가 등장했고, 반세기 가까이 ISP와 CP는 서로를 보완하며 성장했다.
망 중립성의 핵심 취지는 ISP와 CP가 상호 공존하며 발전하고, 사용자에게 유용한 콘텐츠를 문제 없이 전달하는 데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ISP와 CP의 이해 관계는 충돌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콘텐츠의 용량이 늘어나고, 사용시간이 늘어나면서 ISP가 감당해야 하는 데이터 트래픽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ISP는 이러한 부담을 CP가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ISP와 CP 사이의 분쟁은 약 20년을 거슬러올라간다. 미국에서 일부 ISP가 자신들이 제공하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에 대해 특정 기기의 접속을 제한하거나, 인터넷전화(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이하 VoIP) 등과 같은 서비스의 접속을 차단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해외에서는 1970년대부터, 국내에서는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부터 ISP와 CP 간 망 중립성에 대해 충돌하곤 했다.
양측 사이에 논쟁이 점화되는 원인은 언제나 같았다. 데이터 트래픽 때문이다. 서로 논쟁을 펼치고, 때로는 정부 또는 협의체 등이 나서며 중재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다만, 서로가 펼치는 논리와 목소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타당해 어느 한쪽의 의견으로 치우치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논쟁은 매번 격화됐지만, 적정선의 합의를 통해 관계를 유지해왔다.
SKB와 넷플릭스의 소송전, 중요한 것은 소비자
그리고 지난 2020년, ISP와 CP 간의 이해 출동을 법정싸움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벌어진 SK브로드밴드(이하 SKB)와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법정 분쟁’이다. SKB가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망 사용료 협상을 중재해달라며 낸 재정 신청에서 촉발했다. 당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로 인해 유발되는 트래픽은 통신망에 큰 부담을 준다. 이에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넷플릭스는 2020년 4월 방통위의 중재를 거부하며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라는 취지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한국 법원에 냈다.
그렇게 시작한 양측의 충돌은 전세계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1심에서 패소했던 넷플릭스가 즉각 항소했고 어느새 3년째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1심의 결과도 1년 6개월 가량 지난 뒤에야 나올 정도였다. 긴 시간 이어진 소송으로 한 곳으로 모인 관심은 국내 정치권을 넘어 전 세계에서 유사한 갈등을 겪는 정부, ISP, CP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었다.
우리나라 21대 국회에서 CP의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화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며 ISP인 SK브로드밴드에 힘이 실리는 듯 하더니, 이에 맞서 사용자의 안정적인 인터넷 접속 권리를 지켜야 하다는 CP의 여론전도 등장했다.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로 인해 여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에게 부담이 가중되며 입법 논의는 멈춘 상황이다. 특히, 넷플릭스가 향후 4년간 약 3조 원의 비용을 국내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상황은 꼬였다. 양측 어느쪽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더라도 잡음은 생길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그런 와중에 지난 6월 22일, 약 7년만에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 CEO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방한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다만, 그는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성공뿐만 아니라 창작 생태계의 성공에 대해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글로벌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라며, “한국의 더 많은 창작자들이 넷플릭스와 함께 글로벌 성공을 달성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원론적인 메시지만 전했을 뿐, 소송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상황은 답보 상태다. SKT와 넷플릭스 양측 모두 망 사용료 법정분쟁에서 팽팽하게 맞선다. 기술적 근거, 정황적 판단만으로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정부도 쉽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말을 꺼내지 못하는 판국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생태계 성장을 위해 약속한 막대한 투자 금액,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등 K-콘텐츠 성장에 넷플릭스가 차지했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들어 줄 수 있는 사항도 아니다. 사용자도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다.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튄 불씨로 인해 소비자가 불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CP가 펼쳤던 여론전처럼 ISP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고가의 망 사용료 때문에 사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은 현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세기를 이어 온 이해 관계의 충돌이다. 쉽게 결론 지어질 일은 분명 아닐 테다. 다만 한가지 바람이라면, 부디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피해를 입는 일만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