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콘텐츠 투자 확대 예고한 넷플릭스…"지금까지는 수박 겉핥기 수준"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그동안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과 넷플릭스는 훌륭한 파트너십을 이어왔지만 한국 콘텐츠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해 온 것도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이것이 앞으로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하려는 이유다”

22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책임자(CEO)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 확대 의지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공동 CEO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방한한 서랜도스 CEO를 비롯한 넷플릭스 관계자들과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이 참여했다. 4년간 25억 달러(약 3조 2350억 원)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던 넷플릭스가 이에 앞서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였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

서랜도스 CEO는 인사말에서 “지난해 기준 넷플릭스 회원의 60% 이상이 한국 콘텐츠를 시청했고, 지난 4년간 한국 콘텐츠 시청 수가 6배 증가했다. ‘카터’,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등 작품이 90개국 이상에서 넷플릭스 톱 10 진입을 달성했다”며 한국 콘텐츠의 성과를 치켜세웠다.

앞서 전날 박찬욱 감독과 함께 국내 영화학도들을 만났던 테드 서렌도스는 이날도 국내 작가와 감독 양성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랜도스 CEO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질 한국 콘텐츠 다섯 편 중 한 편은 신예 작가 혹은 감독의 데뷔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와 협업한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 대표들과의 대담도 진행됐다. 대담에는 ‘콜’, ‘20세기 소녀’ 등을 제작한 용필름 임승용 대표, ‘오징어게임’ 제작자인 김지연 퍼스트맨 스튜디오 대표, ‘D.P’, ‘정이’ 등을 제작한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 ‘솔로지옥’를 제작한 김수아 시작컴퍼니 대표가 참여했다.

국내 콘텐츠 창작자들과 대담에 나선 테드 서랜도스 CEO
국내 콘텐츠 창작자들과 대담에 나선 테드 서랜도스 CEO

이들은 넷플릭스의 체계적인 제작 방식이나 적극적인 마케팅 지원, 전 세계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작품이 바로 전달되는 점을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얻었던 긍정적 경험으로 꼽았다. 임승용 대표는 “‘20세기 소녀’를 공개하고,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미국에 있는 조카가 작품을 보고 울었다는 문자를 보내더라. 공개한 날 전 세계 사람들이 작품을 본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수아 대표는 “그간 주당 한 편, 일 년에 오십편씩 제작하는 예능 제작 환경에서 일해왔는데, 넷플릭스와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사전 제작 형태를 경험하게 됐다. 기획이나 구성, 사후 작업에 창작자들이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크리에이터들이 큰 방송사나 네트워크 없이도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환경이어서 예능 생태계가 많이 바뀌고 있다”며 “예능은 글로벌화 안 된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있었는데, 글로벌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동기 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제작자들은 아쉬웠던 점이나 바라는 점도 솔직히 털어놨다. 변승민 대표는 “시청자 이탈률에 신경 쓰다 보면 장르적 접근을 하게 되거나 자극적 요소를 가미할 수밖에 없다”면서 “창작자로서는 좀 더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 플랫폼이 지속 가능하고 많은 사람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려면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시각효과(VFX) 스튜디오인 웨스트월드 손승현 대표가 대담자로 나서 현장에서 ‘스위트홈’ 촬영에 사용된 실시간 VFX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손승현 대표는 “넷플릭스와 함께하면서 2018년 설립 당시 3명이었던 직원이 191명으로 늘고, 담당 작품은 7편에서 57편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은 2018년 대비해 74배 증가했다. 저조차도 놀라운 수치”라고 말했다.

웨스트월드가 현장에서 실시간 VFX 기술을 시연했다
웨스트월드가 현장에서 실시간 VFX 기술을 시연했다

함께 대담에 나선 넷플릭스 자회사 스캔라인VFX 아이라인 스튜디오 코리아의 홍성환 지사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한국 아티스트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전파진흥협회와 VFX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맞춤형 인재를 발굴하고 있다”면서 인력 양성에 넷플릭스가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서랜도스 CEO는 지난달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 104개 국가에서 시행한 계정 공유 유료화가 국내에는 언제 적용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오늘 발표할 것은 없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다만 “글로벌하게 지속할 방침”이라며 국내에도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을 시사했다.

국내 이동통신사와 진행 중인 망사용료 분쟁에 관한 질문에도 이전과 같은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서랜도스 CEO는 넷플릭스가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인 ‘오픈 커넥트’에 10억 달러(약 1조 2945억 원)를 투자한 사실을 강조하며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 통신사업자(ISP)와 콘텐츠 사업자(CP)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공정 논란이 일기도 했던 수익 배분 문제에 관해서도 해명했다. 넷플릭스는 제작사 마진과 배우 출연료 등을 모두 포함한 제작비를 사전 지급하고, 흥행에 따른 인센티브는 일절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계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랜도스 CEO는 “다른 플랫폼과의 경쟁을 뚫고 협업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시장 최고 수준의 보상을 주기 때문”이라며 “작품이 성공해서 시즌2가 나올 경우, 이전 시즌의 인기를 시즌2에서 반영해서 보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문제에 관해서는 “불법복제는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을 0으로 만들기 때문에 생태계를 해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업계의 모든 이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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