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DC23] 애플의 기술 집대성했다…'애플 비전 프로' 공개
[IT동아 권택경 기자] 공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이 베일을 벗었다. 애플은 지난 5일(현지 시각) 개최한 연례 세계 개발자 회의(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WWDC23)에서 ‘애플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비전 프로는 애플이 2014년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새로운 범주의 제품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공간 컴퓨터’로 정의한다. 공간 컴퓨터는 현실의 공간과 물체를 인식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고글 형태의 비전 프로를 뒤집어쓰면 가상의 앱과 콘텐츠가 마치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앱과 콘텐츠의 배치를 자유롭게 조절하거나, 크기를 늘릴 수도 있다. 모니터나 TV 등 디스플레이의 제약 없이 공간 전체를 화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조작에는 손가락과 눈동자 움직임을 활용한다. 원하는 곳을 바라본 채 엄지와 검지를 꼬집듯 맞대면 클릭 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음성 인식으로 명령을 내리거나, 텍스트를 입력할 수도 있고 가상의 키보드를 띄어서 쓸 수도 있다.
기기 상단에는 애플워치나 에어팟 맥스에 있는 것과 같은 디지털 크라운(용두)이 자리 잡고 있다. 크라운을 돌리면 실제 현실 공간 대신 가상 공간이 시야를 채운다. 내 방이나 사무실이 아닌 한적한 호수나 바닷가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좀 더 몰입감 있는 경험을 원할 때 활용되는 기능이다. 예컨대 영화를 볼 때 주변의 환경을 차단하고 가상의 영화관에 있는 것처럼 완전 몰입할 수 있다.
비전 프로에는 3D 카메라도 탑재되어 입체감 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도 있다. 애플에서는 이를 공간 사진 및 동영상이라고 칭한다.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찍은 사진을 실물 크기로 감상할 수도 있다.
영상 통화 기능인 ‘페이스타임’도 지원한다. 페이스타임에는 ‘페르소나’가 활용된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디지털로 재현된다. 표정이나 손동작도 자연스럽게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비전 프로 내부 카메라로는 사용자 얼굴을 온전히 비출 수 없기 때문에 머신 러닝으로 재현한 일종의 디지털 아바타가 이를 대신하는 방식이다.
기기를 쓴 채 주변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아이사이트’라는 기능이 들어간 것도 특징이다. 비전 프로 외부를 덮고 있는 유리가 디스플레이 역할을 하며 착용자의 눈을 비춰준다. 비전 프로를 쓴 채로도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며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외에도 사용자가 콘텐츠에 몰입 중이거나, 영상을 촬영 중일 때 아이사이트가 빛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비전 프로는 아이폰이나 맥북 등 별도의 기기와 연동할 필요 없이 단독으로 작동한다. 공간 ‘컴퓨터’라는 명칭에 걸맞게 PC용 칩 M2가 들어간다. 이와 함께 R1이라는 별도의 칩도 탑재된다. R1은 비전 프로에 탑재된 12개의 카메라, 5개의 센서, 6개의 마이크로 입력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보안 인증으로는 그간 애플이 아이폰에 선보였던 지문 인식인 터치ID, 페이스ID 등의 생체 인식을 뒤잇는 홍채 인식 '옵틱 ID'가 새롭게 탑재됐다.
운영체제로는 비전OS라는 별도의 운영체제가 들어간다. 비전 프로 전용 앱과 함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용 앱을 그대로 쓸 수도 있다. 애플 기기인 만큼 애플 생태계와의 자연스러운 연계도 기대할 만한 부분이다. 비전 프로를 쓴 채로 맥북을 열면 작은 맥북 디스플레이 대신 거대한 가상의 디스플레이가 눈 앞에 표시된다.
비전 프로는 내년 초부터 미국에서 발매될 예정이다. 가격은 무려 3499달러(약 456만 원)으로 책정됐다. 국내 발매 일정이나 판매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애플이 하면 다르다? 게임 체인저 될 수 있을까
사실 비전 프로와 같은 MR 헤드셋은 전혀 새로운 물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비전 프로를 ‘공간 컴퓨터’라는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한 용어로 부르며 완전히 새로운 물건처럼 소개하는 애플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뻔뻔하게까지 느껴진다.
아이사이트나 홍채 인식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 혼합·가상현실 헤드셋에서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기능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비전 프로를 주목할 만한 이유는 그간 애플이 보여왔던 행보 때문이다.
애플은 그간 새로운 기술이나 기능이 다소 설익었더라도 서둘러 도입하며 이슈를 선점하는 대신, 충분히 성숙했다고 판단한 이후에나 도입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런 애플이기에 애플이 무언가를 뒤늦게 내놓으면 기존 제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높은 완성도와 매끄러운 사용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도 품게 된다.
실제로 비전 프로의 면면을 보면 기존 MR 헤드셋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간 애플이 쌓아왔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역량을 집대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스플레이만 봐도 2300만 픽셀을 지닌 마이크로 OLED로, 한쪽 눈당 약 4.5K 해상도를 구현한다. 이는 경쟁 제품이라 할 수 있는 메타의 퀘스트 프로 해상도(1800x1920)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기껏해야 스마트폰 성능 정도의 칩이 탑재되는 다른 헤드셋과 달리 PC용 칩인 M2가 탑재된다는 점도 큰 차이다. 여기에 기존 애플 생태계와의 연계까지 고려하면 비전 프로가 현존하는 MR 헤드셋 중 가장 진보한 제품이라는 데 이견이 나올 여지는 별로 없을 듯하다.
애플도 해결하지 못한 한계도 있다. 배터리다. 비전 프로는 헤드셋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인지 배터리를 내장하는 대신 외장 배터리를 연결해 쓰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렇게 배터리를 연결해 쓸 경우 최대 2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 퀘스트 프로와 동일한 수준이다. 2시간은 영화 한 편을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시간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높은 가격과 이를 합리화할 만한 용례를 제시하지 못한 점도 불안 요소다. 3499달러라는 가격과 ‘프로’라는 명칭을 고려하면 비전 프로는 전문가나 얼리 어답터와 같은 고관심 소비자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 보여준 용례는 대부분 콘텐츠 감상이나 메시지 등의 기본 앱 이용, 페이스타임 등 일상적 활용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아직 출시까지 상당한 기간이 남은 데다, 이번 WWDC를 계기로 전 세계 앱 개발자들이 비전 프로의 앱 생태계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은 기대해 볼 만한 지점이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