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의실] 노이즈 캔슬링이 모든 소리를 차단하지 못하는 이유
[IT동아 한만혁 기자]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은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입니다. 대중교통이나 시끄러운 번화가에서도 오롯이 음악에 집중하도록 도와주죠. 굳이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조용한 환경을 만들 수 있어 유용합니다.
덕분에 노이즈 캔슬링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꼽기도 하더군요. 가격도 많이 저렴해 졌습니다. 한때 값비싼 고사양 제품의 전유물이었는데요. 이제는 10만 원 이하의 보급형 제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소비자가 노이즈 캔슬링에 대해 오해하고 있더군요. 광고에서처럼 주변 소음이 모두 사라지고 신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죠. 하지만 노이즈 캔슬링은 모든 소리를 다 차단하지 못합니다. 사람 목소리나 자동차 경적 소리, 문 여닫는 소리 같은 건 그대로 들어옵니다. 노이즈 캔슬링의 구현 방식 때문입니다.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 ‘상쇄간섭’
노이즈 캔슬링은 작동 방식에 따라 패시브 노이즈 캔슬링(Passive Noise Cancelling, PNC)과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ctive Noise Cancellation, ANC)으로 나뉩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흔히 노이즈 캔슬링이라고 부르는 건 ANC입니다. 기사에서도 ANC를 노이즈 캔슬링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PNC는 귀마개처럼 물리적으로 귀를 막아 소음을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디자인이나 이어팁, 이어패드의 재질과 구조를 조절해 귀를 막습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귀 형태에 딱 맞다면 상당한 소음 차단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 주변을 압박해 오래 착용하면 통증이 심해집니다. 습기가 차기도 하죠. 개인에 따라 소음 차단 정도가 달라지는 것도 단점입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파동의 상쇄간섭 원리를 이용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소리는 위아래로 진동하는 파동입니다. 하나의 파동이 완벽히 반대되는 파동을 만나면 사라지는데요. 이것을 ‘상쇄간섭’이라고 합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달린 마이크로 주변 소음을 감지하고, 내부 회로를 통해 그 소음과 반대되는 파동을 만들어 보냅니다. 반대 파동을 만난 소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소음을 수집 및 분석하고 반대 파동을 생성하기 때문에 주변 소음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요즘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능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시차가 생깁니다.
이런 이유로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소음에 효과적입니다. 버스나 지하철, 비행기 안에서는 확실한 소음 차단 성능을 경험할 수 있죠. 하지만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문 여닫는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재채기나 박수 소리 등 불규칙하고 지속적이지 않은 소음은 제대로 걸러내지 못합니다. 내부 회로가 대응하기 전에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 말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사람의 목소리라도 파동이나 음량이 다 다르거든요. 이것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활성화해도 주변 사람 대화가 들리는 이유입니다.
또한 고음보다는 저음에 강합니다. 고음은 파동 사이의 간격이 짧은데요. ANC가 반대 파동을 만들면 그 파동은 이미 사라진 뒤입니다. 하지만 저음은 파동 사이의 간격이 깁니다. 반대 파동 생성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이즈 캔슬링을 켜도 고음역에 속하는 여성이나 아이들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잘 들리는 것이죠.
노이즈 캔슬링은 내부 회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PNC의 단점을 해결합니다. 헤드폰을 꽉 조이거나, 이어폰을 더 깊숙이 넣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압박감 없이 편안한 착용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의 또 다른 효과, 청력 보호
노이즈 캔슬링의 소음 차단 효과는 청력 보호에도 일조합니다. 주변이 시끄러우면 아무리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음악이 잘 안 들립니다. 영화 대사는 더 안 들리죠. 자꾸 볼륨을 높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청력에 부담이 갑니다. 청력 손상은 물론, 난청을 유발하기도 하죠. 노이즈 캔슬링은 주변 소음을 차단하니까 볼륨을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줄여도 되죠. 덕분에 청력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하루 8시간 작업 기준으로 85dB 이상 소음이 발생하는 작업을 ‘소음작업’으로 규정하고 매년 특수건강진단을 받도록 권합니다. 그러니까 하루 소음 노출량을 85dB 이하, 8시간 이하로 권장하는 것이죠.
가급적이면 일상에서도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전문 장비가 없다면 볼륨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최대 볼륨의 80% 이하로 유지하면 됩니다. 일반적인 음향 기기의 최대 볼륨은 평균적으로 105~110dB인데요. 이 수치의 80%가 84~88dB입니다. 85dB이 속하는 구간이죠.
세계보건기구(WHO)는 더 엄격합니다. 이어폰을 사용할 때 기기 최대 볼륨의 60%를 넘지 말고 60분 이상 듣지 말라는 ‘60·60 법칙’을 권합니다. 60분 이상 사용할 경우 10분 이상 쉬라고 합니다.
주의사항 말씀드리는 김에 한 가지 더 덧붙이겠습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반대 파형을 계속 만들어 내기 때문에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귀가 멍멍해 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에 올라갈 때처럼 말이죠. 민감하신 분이라면 어지러움이나 멀미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바로 나타나지 않고 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처음 노이즈 캔슬링을 접하신다면 30분 이상 충분히 들어보고 선택하시길 권합니다.
지금까지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를 살펴 보고 노이즈 캔슬링이 모든 소리를 차단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청력 보호 효과와 적정 볼륨, 부작용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노이즈 캔슬링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과도한 기대와 실망보다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기술을 충분히 즐기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글 / IT동아 한만혁 (m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