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취약 극복] 리보 “세계 시각장애인 위한 스마트폰 도우미”
※기술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장애인과 노약자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은 아직 기술의 효용을 충분히,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IT동아는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기술·기기를 만들어 모두가 차별 없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힘쓰는 이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오늘날 현대인은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정보를 검색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어딘가 이동하면서 목적지를 찾고 결제를 할 때, 여러 서비스를 쓰면서 콘텐츠를 보고 듣고 즐길 때 스마트폰을 꼭 쓴다.
스마트폰의 장점은 대부분 ‘큰 화면’에서 발휘된다. 따라서 화면을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은 스마트폰의 장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여러 가지 접근성 기능을 마련해 장애인의 사용 편의를 높이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결국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눈으로 보고 활용해야 하는 탓이다.
이 한계의 장벽을 허물고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원활히 다루도록, 장점을 많이 활용하도록 도우려는 스타트업이 ‘리보(Rivo)’다.
리보는 회사 이름과 같은 시각장애인용 스마트 컨버전스 기기 ‘리보’를 만든다. 손바닥 절반 가량의 부피에 1~0까지의 숫자 키 열 개, 특수 버튼 여러 개와 사이드 버튼을 탑재한 리모콘 모양 기기다. 생김새는 간결하지만, 리보를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연결하면 풍부한 기능을 발휘한다.
리보는 스마트폰의 화면 속 아이콘과 기능을 목소리로 읽어준다. 스마트폰 화면에 앱 아이콘 여러 개가 있다고 가정하자. 리보의 숫자 키는 상하좌우 화살표 이동 커서(입력 위치 표지)의 역할을 한다. 숫자 키를 눌러 커서를 옮기면, 커서가 머무른 위치에 어떤 앱이 있는지 알려준다. 이것만으로도 시각장애인은 스마트폰 앱의 위치를 한결 간편하게 찾아 사용 가능하다. 자주 활용하는 앱을 특정한 숫자 키에 입력해 단축 버튼으로 쓰는 것도 된다.
정보를 검색하려고 ‘크롬’ 앱을 선택, 실행했다고 가정하자. 리보의 숫자 키는 영문자와 한글 입력에도 대응한다. 기기 크기는 작지만, 버튼이 큼지막하게 만들어져 시각장애인이 의도와 다른 버튼을 누를 우려도 적다. 검색 창을 커서로 찾고 검색하려는 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그러면 검색 결과를 스마트폰이 목소리로 읽어준다.
전화를 걸고 싶다면, 리보 본체 옆 사이드 단축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러면 전화 설정이라는 점을 리보가 알려준다. 시각장애인은 숫자 버튼으로 전화번호를 입력하거나 단축 버튼에 저장한 전화번호를 바로 불러내 통화하면 된다.
메신저도 지원한다. 단축 버튼에 미리 할당한 메신저 앱을 켜고, 숫자 키를 커서처럼 사용해서 대화할 상대를 찾거나 검색한다. 그리고 내용을 숫자 키에 할당된 한글 키로 입력하고 보내면 된다. 상대가 보낸 메시지도 리보로 간단히 찾아 읽는다.
리보의 또 하나의 장점은, 스마트폰 자체의 기능을 활용할뿐만 아니라 주변 IoT 기기와 무선 연결해 제어 가능한 점이다. 아파트의 월패드, 특정 종류의 스마트 가전과 연결해 스마트폰과 같은 방식으로 조작 가능하다. 리보의 숫자 키를 화살표 이동 커서처럼 활용해 월패드나 가전의 기능을 지정하고 실행하는 원리다. 물론, 이 경우 리보가 해당 기능이 무엇인지 읽어준다. 지금 리보는 IoT 기기를 최대 9대까지 연결 가능하다.
리보를 스마트폰과 IoT 기기에 연결하려면 오로지 블루투스 연결만 하면 된다. 별도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이나 IoT 기기가 기본 탑재한 장애인 접근성 편의 기능들을 리보가 스스로 파악, 알맞게 동작하는 덕분이다. 단, 모든 IoT 기기와 호환되지는 않는다. 리보는 호환 대상 기기를 꾸준히 늘리고 있으나, 결국은 IoT 기기 제조사가 접근성 기능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리보의 목소리는 본체 내장 스피커로 들어도, 유선 이어폰을 연결해 들어도 된다. 스피커뿐만 아니라 마이크도 탑재한 덕분에 전화 통화와 음성 검색도 된다. 물론 삼성전자 빅스비, 애플 시리와 같은 음성인식 서비스와의 연동도 가능하다.
리보는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의 기능 대부분을 원활하게 쓰도록 돕는다. 무선으로 연결하는 제품이라,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나 가방 안에 둔 상태에서 리보만 켜서 스마트폰 앱과 기능 모두를 쓰도록 돕는다. 단, 잠금 해제 방식은 패턴이나 지문 입력이 아닌 숫자 입력으로 설정해야 한다. 스마트폰과 연결해서 쓰다가 주변 IoT 기기에 접속하는 것도 손쉽다.
리보를 만들고 보급하는 안재우 대표는 엔지니어 개발자로 일했다. 당시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쓸 때 무선 풀 키보드를 주로 활용했는데, 휴대하기 번거롭고 원활하게 쓰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다고 한다. 안재우 대표가 떠올린 해결책은 ‘리모콘’과 같은 기기였다. 스마트 TV를 리모콘으로 쓰듯,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리모콘 개념으로 만든 것이 리보다.
스마트폰이 가진 다양한 편의와 풍부한 기능을 시각장애인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려고, 안재우 대표와 리보 임직원들은 여러 아이디어를 냈다. 2018년 리보 첫 제품을 만든 후, 꾸준히 새 기능을 더하고 활용 편의를 개선했다.
리보가 가진 잠재력은 이내 인정 받았다. KB로부터 임팩트 투자를,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로부터 투자를 각각 받은 리보는 차근차근 성장했다. 2022년 디테크 기술공모전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과 대상을 받았고, 보조공학기기공모전에서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근에는 SKT ESG 프로그램에 참여, MWC 2023에서 세계 시장에 리보를 선보였다. 해외 이동통신사로부터의 협업 제안도 여러 건 받았다.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있는 장애인고용공단 보조공학센터에 가면 리보를 체험 가능하다. 우리나라 곳곳의 보조기기센터에도 리보가 보급됐다. 안재우 대표는 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리보를 전파한다. 시각장애인의 직업 생활에 필요한 기기로 인정 받은 덕분에, 대상자는 100% 지원금을 받아 리보를 무료로 산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2023년 현재 세계 55개 나라의 시각 장애인 약 1만 명이 리보를 써서 스마트폰을 원활하게 다룬다. 안재우 대표는 UN을 포함한 세계 장애인 복지 기관과 손 잡고 리보를 세계 시각장애인에게 전파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리보와 안재우 대표가 넘을 산은 높고 험준하다. 먼저, 나날이 발전하는 스마트폰의 서비스와 기술을 시각장애인이 쉽게 쓰도록 개량할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다. 반도체 수급난과 같은 변수에 대응하고 제품 생산 일정을 조율하는 등, 소규모 스타트업이 쉬이 풀기 어려운 문제도 고민이다.
이 가운데 리보가 가장 풀기 어려워하는 것은 편견이다. 많은 사람들이 리보를 그냥 만들기만 하면 되는, 기능이 아주 단순한 보조 기기로 여긴다. 반면, 리보를 쓰는 시각장애인들은 호평한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만 주고 받던 한 시각장애인은 리보를 만나 각종 앱과 기능을 원활하게 쓴다고 칭찬했다. 리보로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쇼핑과 음식 배달, 인터넷 뱅킹과 택시호출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한 시각장애인의 호평도 있다.
안재우 대표는 실제 소비자인 시각장애인들의 반응을 토대로 리보의 성능을 더욱 강화한다. 먼저 연동할 기기의 종류를 늘린다. 스마트 가전 제품에 이어 노트북 PC와 스마트 워치, 나아가 키오스크와의 연동을 시도한다. 그러면, 리보를 가진 시각장애인은 키오스크를 한결 원활히 다룰 것이다. 이미 리보는 인천국제공항과 함께 시각장애인의 길잡이 기능을 함께 연구 중이다.
리보의 원래 역할, 시각장애인들이 정보를 더 쉽게 찾고 배우고 활용하도록 이끌 방법도 더욱 강화한다. 시각장애인과 사회와 정보를 하나로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정보 차별이라는 장벽을 낮추고 이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리보의 목표다.
안재우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포함한 정보통신기기들을 원활히 쓰도록 돕겠다. 세상의 모든 기기와 시각장애인을 연결해 차별과 정보 격차를 없애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 리보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