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펫푸드는 나쁘다?…"대체 성분으로 영양 기준 맞추면 문제 없어"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전 세계 채식 인구는 1억 8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건강, 환경, 윤리 다양한 이유로 채식에 동참하고 공감하는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화장품, 의류 등 소비재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동물권 보호를 주장하는 비건주의가 그 영역을 넓히면서다. 엄격한 비건이 아니더라도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생산 과정에서 동물성 재료 사용과 동물 실험을 배제한 비건 제품을 선호한다.

그러나 비건주의 실천을 위해 반려동물에게 비건 사료를 먹이는 건 오히려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미국 가수 케이티 페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케이티 페리는 지난 2021년 자신의 SNS에서 반려견과 함께 채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가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동물에게 채식을 시키는 건 동물 본래의 섭식 습성을 거스르도록 강요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영양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다. 동물권을 위한 행동이 오히려 동물권을 해칠 수 있다는 모순에 빠지는 셈이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하지만 국제 동물권 단체 페타(PETA)는 적절한 계획과 관리가 있으면 반려동물도 완전 채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 결과들도 나오고 있다. 영국 가디언과 뉴사이언티스트 보도에 따르면 영국 윈체스터 대학 동물복지센터 앤드류 나이트 교수는 비건 사료를 먹인 반려동물들이 육식 식단을 먹인 반려동물들만큼 건강하거나, 오히려 더 건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채식을 하는 동물은 결국 병에 걸릴 것이며, 채식 식단을 강요하는 게 학대라는 주장은 과학적 증거와 모순된다”는 것이다.

실제 나이트 교수 연구팀이 2500명이 넘는 반려견 보호자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날고기 식단을 먹인 집단의 반려견들이 가장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고, 비건 식단을 먹인 반려견들은 그 뒤를 이었다. 일반식을 먹인 반려견들은 오히려 비건 식단을 먹인 반려견들보다 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날고기 식단을 먹인 반려견들이 다른 두 집단보다 훨씬 더 어린 개체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비건 식단이 가장 좋은 결과를 보였다는 게 나이트 교수의 설명이다. 개 2300마리와 고양이 1100마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호성 조사에서도 육식 식단과 비건 식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캐나다 온타리오 궬프 대학 연구진이 1000명 이상의 고양이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엄격한 채식을 시행하는 고양이들의 평균적 건강 상태가 더 양호한 것으로 보고됐다. 고양이는 육식동물이기에 잡식성인 개와 달리 비건 식단 급여가 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는 결과다.

물론 비건 식단이 반려동물에게도 건강할 수 있다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이는 비건 식단으로 영양 균형을 맞추는 게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다. 영국 수의사 협회 회장 저스틴 쇼튼은 “비건 식단 급여로 영양 균형을 못 맞추기 십상이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제 사료가 아니라, 미국사료관리협회나 유럽펫푸드산업연합 같은 규제 당국의 영양소 기준을 충족한 기성 제품이라면 문제가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나이트 교수는 사료가 반려동물이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합되고 생산된 제품이기만 하면 재료가 식물성인지, 동물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는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는 기존 사료들 또한 원재료에 부족하거나 가공 과정에서 손실된 필수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합성 영양소를 첨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실제 올해 1월 미국서부수의과학회에서 시판 비건 사료 브랜드 ‘브이도그(V-DOG)’ 제품을 1년 동안 급여한 성견 15마리를 관찰한 결과, 영양 결핍이나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해당 연구를 수행한 웨스턴 보건 과학 대학과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연구진은 시판 비건 사료인 브이도그(V-DOG) 제품을 1년 동안 급여한 성견 15마리를 관찰한 결과 영양 결핍이나 의학적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브이도그의 해외 수출용 비건 펫푸드 브랜드인 브이플래닛(V-Planet). 출처=브이도그
브이도그의 해외 수출용 비건 펫푸드 브랜드인 브이플래닛(V-Planet). 출처=브이도그

연구는 브이도그 측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이뤄진 연구지만 업체 측은 고무된 반응이다. 브이도그 CEO 대런 미들스워스는 “영양학적으로 완전한 식물성 식단이 반려견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탄소 발자국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반려동물 보호자들에게 더 건강하고 동물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 환경과 다른 동물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비건 펫푸드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등장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비건 펫푸드의 입지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펫푸드 스타트업 PSF 또한 현재 동물성 단백질 기반 펫푸드로 한정된 제품군을 비건 펫푸드 분야까지 확장하며 국내외 펫푸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PSF는 대체 식품 전문 기업인 HN노바텍의 자회사다.

PSF는 식물성 대체육을 생산하는 대체 식품 전문 기업인 HN노바텍을 모회사로 두고 있으면서도 반려동물 식품에는 동물성 단백질을 활용해 왔다. 아직 국내에서는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한 펫푸드를 내세우는 건 시기상조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최근 PSF의 핵심 소재인 해조류 추출 아미노산 복합체 ‘ACOM-P’의 영양학적 우수성을 입증하는 국내 모 대학 연구진의 검사 결과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PSF의 식물성 대체 펫푸드 시제품들. 출처=PSF
PSF의 식물성 대체 펫푸드 시제품들. 출처=PSF

검사 결과에 따르면 ACOM-P의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동물성 단백질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라이신, 메티오닌, 페니알라닌, 트레오닌 함량이 동애등에, 어분, 가금부산물, 우모분 등 사료 재료로 흔히 쓰이는 동물성 단백질과 비슷한 함량이 검출됐다. 스피루리나, 대두박 등 식물성 단백질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글루타민산, 아스파르트산, 세린 함량 또한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PSF 측은 “검사 결과는 ACOM-P를 전통적인 단백질 공급원에 대한 알레르기나 과민증이 있는 반려동물을 위한 대체 성분으로 활용해 반려동물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향후 ACOM-P와 식물성 대체육 성분을 활용한 간식과 미국사료관리협회 영양소 기준을 충족하는 주식 제품까지 제품군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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