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계산기 '키오스크'... 연령과 장애 여부 관계 없이 '모두'에게 어려워
[IT동아 정연호 기자] “50대 정도면 스마트폰을 많이 쓰기 때문에 키오스크 사용에 큰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다만, 키오스크가 복잡하면 메뉴를 찾는 게 어렵다. 할인, 카드 결제, 현금 결제 등의 복잡한 기능도 사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50대 여성인 A씨는 최근 무인계산기를 뜻하는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은” 상황이다. 처음엔 사용 자체가 어려워 조작하면서 버벅거렸지만, 이제 사용법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다만, 가게마다 키오스크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달라 처음 가는 가게에선 “주문을 할 때 다소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중장년층이 키오스크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제품이 도입되던 초기 단계부터 꾸준하게 제기되던 지적이다. 스마트폰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중년층은 키오스크 사용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지만, 키오스크도 사용 방법이 표준화되지 않아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A가게 키오스크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B가게의 키오스크가 UI가 다르면 이를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 디지털 네이티브 2030세대도 키오스크 사용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20대 후반 남성인 B씨는 앞서 소개한 A씨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키오스크는 일정한 형태가 있는 게 아니라 제품, 업체별로 다르다. 메뉴창이나 결제창이 다르면 사용할 때 원하는 제품을 찾기 힘들다”면서 “젊은 사람들도 뒷사람이 있으면 주문이 늦어질 때 조급함이 생긴다”고 말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키오스크 사용과 관련해 “조금만 주문이 늦어져도 뒷사람 눈치가 보인다”, “매장에 직원이 있는데도 키오스크를 사용하라고 한다”, “Sold out 대신 ‘품절’이라고 표현하면 되는데 굳이 영어를 쓴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키오스크 사용에 겪는 불편함…나이와 무관해
더불어민주당의 김상희 의원실에 따르면, 민간분야 키오스크는 2019년 8587개에서 2021년 2만 6574개로 약 3배 증가했다. 요식업 및 생활 편의 분야에선 같은 기간 4.1배 늘었다. 인건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사업주의 바람과 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는 집단의 증가가 맞물리면서 생긴 결과다.
하지만, 키오스크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이곳저곳에서 진통이 나타나고 있다. 키오스크 사용과 관련된 불편함은 연령대와 관계가 없다. 한국소비자원이 20~60대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이용에 대한 경험을 조사한 결과, 전체 500명 중 233명(46.6%)은 기기를 이용하면서 불편함 혹은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의 사람도 키오스크 사용 과정에서 문제를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20대는 기기 오류, 뒷사람 눈치, 조작 어려움, 설명 부족 순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으며, 30대의 경우 뒷사람 눈치, 조작 어려움, 기기 오류가 불편의 주된 이유로 나타났다. 40대, 50대, 60대가 경험한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용 중 불편함을 느꼈다고 답한 응답자 대부분(88.4%)은 이용 도중 결제를 중단한 경험도 있다고 답했다. 60대가 52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는 44명 30대는 47명 40대는 30명 50대는 33명으로 연령대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키오스크를 사용하다 중단한 일을 겪었다.
응답자들이 이용을 중단한 이유는 ‘상품‧서비스를 잘못 선택했을 때 주문 첫 화면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서(55.8%)’가 가장 많았고, 그 외의 이유로는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없어서(48.5%)’,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41.3%)가 나왔다. 20~50대까지는 ‘(서비스 사용방법)안내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고, 60대는 ‘뒷사람 눈치’가 이용 중단의 1순위 이유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불편함이 예상되는 키오스크를 사용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매장에 직원이 있는데도 키오스크를 써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기 때문. 키오스크 이용으로 불편함을 겪었던 233명 중 186명(79.8%)은 “매장 직원이 아닌 키오스크를 통해서 주문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키오스크’… 장애인에겐 여전히 ‘배리어(장벽)’인 키오스크
지난 28일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6월 공청회를 통해 이를 위한 시행령 초안을 공개했다. 시행령 초안은 △ 키오스크 전면에 휠체어가 접근할 공간을 확보 △ 키오스크 0.3미터 전면에 점자블록 설치 △ 수어로 의사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 수단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키오스크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장애인이 향유할 ‘정당한 편의’를 위한 길은 요원해 보인다. 소비자원이 서울‧경기에 있는 공공‧민간분야 키오스크 20대를 조사한 결과, 20대 모두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나 청각 콘텐츠 등의 대체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았다. 휠체어 사용자가 터치스크린을 조작할 수 있는 최대 높이는 1220mm이지만, 20대 중 17대(85%)의 터치스크린은 이 기준보다 높았다.
이러한 불편함은 일부 사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연)가 서울, 경기 등 15개 지역 공공기관 및 음식점 등 매장 키오스크 1002개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기기 중 96.9%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화면 높이 조절 기능이 없었다. 휠체어가 접근할 여유 공간이 없는 기기는 절반 이상(52.8%)이었다. 또한, 91.5%의 기기는 점자유도블럭이나 음성신호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수어가 제공되는 키오스크는 단 한 대에 불과했다.
키오스크, 누구에게나 장벽이 되지 않도록 설계돼야
한국소비자원 연구원은 키오스크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키오스크 기능이 표준화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제품별로 사용방법을 통일시키면 기계마다 주문 방식이 달라 헤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어, 한국소비자원 연구원은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민간부문은 법 시행일인 2023년 1월 28일 이전에 무인정보단말기를 설치한 경우, 배리어 프리(고령자나 장애인이 겪는 물리적 및 심리적 장애물을 없앤다는 뜻) 키오스크에 대해 3년의 유예기간을 받는다. 민간부문에서 장애인이 배리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니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를 위한 맞춤형 키오스크 교육의 필요성도 언급한다. 키오스크에 대한 심리적 저항성을 느끼는 고령자가 많아 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버튼이나 전화기를 구비하고, 이미지와 글씨 크기를 키우며, 대체가 가능한 영문은 국문으로 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