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크리에이티브 “일하기 좋은 직장? 보여주기식 복지에서 벗어나야”
[IT동아 권택경 기자] 지난해만 해도 채용 시장은 ‘개발자 모시기’ 경쟁으로 뜨거웠다. 비대면 경제, 디지털 전환이 화두가 되면서 업계를 불문하고 개발자 수요가 치솟았던 탓이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경기침체 우려가 겹치면서 빅테크 기업에 감축 칼바람이 불었고,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채용문을 좁히는 추세다.
원래부터 개발인력 의존도가 높은 게임 업계 입장에선 다행인 면도 있다. 파격적인 연봉이나 입사 보너스를 제시하면서까지 사람을 구하는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이 뛰어난 고급 개발자를 구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처럼 비교적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대기업과 불리한 경쟁에서 인재를 쟁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실제 최근 구직자들은 직장 선택을 할 때 성장성, 비전보다는 연봉,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복지 혜택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를 희생하는 대신 미래를 약속하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은 항상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바일 게임 ‘에픽세븐’ 개발사로 알려진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성장성, 비전과 더불어 파격적인 근무 여건과 복리후생까지 내세우며 채용난을 타개하고 있다.
업계에서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이미 ‘일하기 좋은 회사’로 유명하다. 요즘 구직자들이 직장 선택 기준 중 하나로 삼는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의 기업 리뷰 사이트 평점도 4.5점 이상으로 높다. 주 37.5시간 근무제, 야근 여부와 무관한 석식 지원, 복지포인트 지급, 무이자 사내 대출 등 알려진 복리후생 제도만 봐도 체급이 더 높은 기업들과 견주어도 아쉬울 게 없는 수준이다.
슈퍼크리에이티브가 이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데는 남다른 철학을 지닌 정제균 최고경영책임자(COO)의 영향이 크다. 정제균 COO는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드는 돈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며 “뛰어난 인재의 업무 효율이 1%라도 오른다면 오히려 들인 비용보다 얻는 게 더 많다”고 말한다.
2018년 무렵부터 슈퍼크리에이티브에 합류한 정제균 COO는 회사 운영 실무 전반을 책임지는 살림꾼이다. 슈퍼크리에이티브의 조직 문화와 복리후생 제도도 모두 그의 손끝을 거친다. 슈퍼크리에이티브 합류 전에 몸담았던 아이덴티티게임즈에서도 회사를 포춘코리아 선정 ‘일하기 좋은 한국기업 50’ 리스트에 올리는 성과를 냈다.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내로라할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정 COO가 강조하는 건 ‘디테일’이다. 겉보기에 화려한 복지제도를 갖춘 기업은 많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구성원들에게 실제 혜택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보여주기식 제도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돈은 돈대로 들이면서도 직원들 만족도나 능률을 개선하는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게 철저한 관찰과 피드백, 혜택의 개인화이다. 직원들 수요를 면밀히 조사하고, 그에 맞는 개인화된 혜택을 제공한 뒤 불평불만 사항은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디테일이 잘 드러나는 단적인 사례가 ‘의자’다.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선 고가 브랜드 의자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일이 있었다. 마치 의자가 좋은 복지제도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정 COO는 고가 브랜드 의자를 일괄 지급하는 복지는 보여주기식 복지에 그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급 브랜드 의자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자 하나도 회사가 일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원하는 걸 고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정 COO가 엄선한 허먼 밀러, 스틸케이스, 오카무라, 포르마 등 고급 브랜드 의자들을 내부 테스트한 후, 그중 가장 평가가 좋았던 제품들로 샘플을 마련해두고 있다. 직원들이 샘플에 앉아보고 자신에게 맞는 의자를 고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브랜드뿐만 아니라 목 받침 유무와 같은 옵션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조식 구성에도 이런 디테일이 묻어난다. 직원들 기호에 맞춰 샌드위치, 샐러드, 김밥, 유부초밥, 과일 등 다양한 메뉴를 준비한 건 물론이고, 메뉴 하나에도 작은 배려를 더해 선택권을 넓혔다. 예컨대 김밥은 오이나 당근을 못 먹는 직원들을 배려해 해당 재료가 빠진 제품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마찬가지 원칙에 따라,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입사자들에게 지급하는 모니터, 노트북 등의 업무용 장비도 회사가 임의로 일괄 지급하는 대신 철저히 맞춤형으로 지급한다. 입사 전 사전 설문에서 원하는 장비를 선택하면 입사일에 맞춰 이를 준비해주는 방식이다. 만약 본인에게 어떤 장비가 잘 맞고 필요한 지 모른다면 입사 후 회사 내 구비된 샘플을 사용해보고 요청할 수도 있다.
정 COO가 강조하는 또 다른 원칙은 ‘선제 대응’이다.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이미 지난 2019년 일찌감치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3N’으로 불리는 대형 게임사들에 뒤쳐지지 않는 발빠른 행보다. 지금은 여기서 더 나아가 주 40시간 근무제가 아닌 주 37.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단순히 끼니 때우기에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보장하는 취지다. 물론 줄어든 근무 시간을 연봉이나 수당에서 벌충하지도 않는다. 정 COO는 “기본적으로 야근을 지양하지만 불가피하게 초과 근무가 발생할 경우, 주 37.5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는 모두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직 내 갈등 해소에서도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고 정 COO는 설명한다. 현재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상호 존중을 위한 존댓말 정책을 시행하며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구성원도 다양해지면 자연스레 사소한 갈등이나 잡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내 여론을 모니터링하다 불평불만이 감지되면 미리미리 개입해 갈등을 해소하거나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정 COO는 “불만이 공개적으로 들려온다는 건 이미 문제가 만연했다는 의미”라며 “불만이 싹트기 시작할 때 미리 조치해야 더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크리에이티브의 퇴사율은 2%다. 10% 이상으로 알려진 업계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높은 평판 덕분에 직원 채용을 할 때도 지원자 부족으로 허덕이는 일은 없다. 하지만 정 COO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복리후생을 계속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현재 1만 원인 식대는 오른 물가를 반영해 내년부터 1만 3000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또한 개인 통화나 업무용 통화를 하려 빈 회의실을 전전하는 직원들을 위해 현재 사무실에 방음부스를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방음부스는 1인 화상회의나 개인 업무 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도록 최고급 제품으로 준비했다.
정 COO는 “휴가 때 사용할 수 있는 콘도나 리조트 제공 혜택 또는 사내 어린이집 운영처럼 아직 회사 구성원 수가 부족해 지원하지 못하는 혜택도 있어 아쉽다”면서 “준비 중인 신작이 크게 성공해 회사 규모가 한층 더 커지면 이런 부분까지 혜택을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