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카파바이오사이언스 [1] 신소재 합성 기술로 원료의약품 혁신 이끈다
[스케일업 x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스케일업코리아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함께 스케일업을 진행합니다. 인터뷰로 스타트업의 기술과 계획을 소개하고, 비즈니스모델을 분석해 성장의 기회를 찾습니다. 이어 전문가 조언으로 도약을 이끄는 프로그램입니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우리 몸으로의 바이러스의 침입과 질병 발병을 막는 백신,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 덕분에 사람의 삶의 질은 많이 좋아졌다. 이전보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바이오 기술 연구진은 새로운, 효과가 더 좋은 백신과 의약품을 만들 원료의약품을 연구 개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백신과 의약품을 만드는 절차는 아주 복잡하다. 질병의 종류와 강도, 환자의 특성을 조사하고 가장 효과를 잘 낼 만한 후보 물질을 찾는다. 후보 물질을 분석·조합·합성해서 동물과 사람 대상으로 철저한 안전성 실험까지 거쳐야 비로소 만들어진다. 분석과 조합, 합성과 안전성 실험 중 탈락하는 후보 물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십수 년 이상 의료·바이오와 관련 기술을 연구하던 전문가들이 모였다. 연구하기 힘들고 실패할 확률도 높은 백신과 의약품 개발 과정을 개선할 플랫폼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그 동안 쌓은 경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의료계에, 사회에 공헌하자는 공통 목적을 세운 이들은 2022년 4월, 의료·바이오 스타트업 ‘카파바이오사이언스’를 세웠다.
수십년 간의 의료·바이오 연구 경력 합쳐 원료의약품·LNP 한계 돌파 선언
카파바이오사이언스 임직원 5명의 나이 평균은 50대다. 오랫동안 업계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은 셈이다. 먼저 박원철 대표는 유기화학 박사다. 천연고분자 접합체와 비타민 계열 유도체, 항산화 모사체의 합성과 디자인 경력을 가진 천연물 유도제 전문가로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연구를 책임진다. COO는 분자 시뮬레이션, 인공지능 연구 개발자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초기 원료 물질의 검증과 상품화 역할을 맡았다.
CCO는 회계 전반을 책임진다. 해외에서 오랜 시간 화장품 사업을 이끌어 온 유통 전문가도 최근 합류했다. 마케팅 이사는 미국에서의 MBA 경력을 살려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사업 개념과 연구 기획을 세우고, 제품 생산과 브랜딩, 판매 영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관리 중이다. 주주 가운데 유기화학소재 전문기업 (주)바이오맥스도 참여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사업계획서 작성 실무 교육과 사업 리뷰, 멘토링과 입주공간을 지원하며 힘을 더했다.
이들을 한 데 묶은 것은 ‘백신, 의약품의 소재인 원료의약품 개발의 한계를 깨자’는 일념이었다. 기존의 백신 개발의 한계는 ‘LNP(지질 나노 입자, Lipid NanoParticle, 바이러스 유전 정보를 담은 mRNA를 보호하는 약물 전달 매개체)’의 효능이다.
지금까지 나온 LNP는 안정성이 낮고, 항원을 움직이게 하는 항원 발현 효율도 낮았다. 백신 전용으로 설계된 LNP가 아니어서다. 게다가, 어떤 약물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가장 알맞은 LNP를 써야 효능이 나는데 이것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LNP의 일부 성분이 우리 몸에 들어와 역효과를 내는 일도 있었다.
의약품 개발의 한계는 ‘API(원료의약품,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다. 의약품을 만들 때 쓰는 이 재료의 80% 이상이 수입산이다. 이는 국가간 의약품 무기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 의약품 기업이 항생제와 항염증제를 만들려 노력했으나, 해외 API 기업이 공급을 중단한 사례가 있다. 자연스레 기술 개발 속도도 더디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임직원들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20여 년 동안 쌓은 경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방안을 궁리했다. 신소재를 개발하고 원료의약품을 개발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면 환자의 증상에 따라 맞춤형 설계한 LNP를 만들 수 있다. 분자 시뮬레이션 기술에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API 개발도 문제 없을 것으로 계산했다.
부작용 적고 흡수율 높은 신소재와 고효율 합성 기술 확보
박원철 카파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이미 ‘VITA-HA 400/800’을 개발해 기술이전을 이미 진행했다. 생리활성 물질인 비타민 C와 히알루론산의 접합체로 만든 피부질환 치료 소재다. 이어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CAPA-X’와 ‘CAPA-Y’를 각각 구상했다.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은 CAPA-X다. 우리 몸 속의 여러 대사 활동에 쓰이고 남은 ‘활성 산소’는 노화를 가속하고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졌다. CAPA-X는 이 활성 산소를 줄이는 항산화 물질로 잘 알려진 비타민 C에 신소재 ‘스퍼미딘(Spermidine)’을 합성해 만든다. 포도 열매에서 주로 추출하는 스퍼미딘은 세포 성장과 성숙, 항노화와 항산화, 나아가 각종 스트레스를 완화해 면역력까지 높이는 물질이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비타민 C와 스퍼미딘을 합성, 95% 이상의 순도를 나타내는 신소재로 만드는 특허 기술을 가졌다. 생산 수율도 높다. 이렇게 만든 신소재는 우리 몸 속의 세포들을 원활히 투과하고 효소에 분해된다. 즉, 흡수가 잘 되고 효력을 잘 낸다. 따라서 효능이 더 좋은 의약품과 기능성 화장품을 만드는 데 좋다.
이에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CAPA-X를 화장품 소재로 먼저 활용한다. 세계 화장품 소재 시장의 규모는 약 36억 달러, 약 4조 9,360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크다.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피부를 보호하는 화장품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 자체로도 항노화와 항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데다 흡수율도 높은 CAPA-X의 잠재력을 발휘할 만한 부문이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우리나라 파트너 기업과 함께 신소재와 화장품 공동 생산·판매 방안을 마련 중이다. 나아가 비타민 C의 흡수율을 높인 화장품과 건강 식품 등, 일반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제품도 기획 중이다. 이렇게 CAPA-X의 실력을 알린 후, 임상 성과와 함께 자연스럽게 의료 소재 시장으로 진입 예정이다.
CAPA-Y도 CAPA-X와 같은 원리로 만든다. 이 소재를 난소암 세포에 주입하면 사멸 효과를 내는 것을 확인했다. 나아가 백신용 CAPA-LNP 연구 개발도 진행 중이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합성 기술로 만든 LNP는 보다 안전한 mRNA 전달체가 될 전망이다. 그 자체로 항염증과 면역력 강화 효능을 내며,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역효과를 내는 물질도 포함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 옥스포드대학교의 한 논문은 ‘스퍼미딘이 면역 세포의 활동을 유지하고 백신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신소재에 힘을 싣는 주장이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태어난 지 반 년 남짓 지난, 신생 스타트업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정부 지원 과제에 참여하고 의약품 제조 기업으로부터의 연구 의뢰를 받는 등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올해 이들 과제와 의뢰를 마무리한 후,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2023년 신소재와 기술의 국제 특허 출원을 마치고 주요 비즈니스모델인 원료의약품 개발 플랫폼 구축을 가속화한다.
특허·인력·투자·홍보 등 의료·바이오 스타트업 앞에 놓인 험준한 장벽
의료·바이오 기술의 연구 개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험 자체가 하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실험 중 실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특허나 약물성 부적합 등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맞닥뜨릴 때도 잦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먼저 부딪힌 장벽은 ‘특허’였다. 이들의 장점인 합성 기술은, 다른 기업들도 촘촘하게 특허 장벽을 짜 놓은 상태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비타민 C와 스퍼메딘의 성분을 변형, 기존 특허를 우회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새로운 후보 물질로 만든 상품의 특허 출원도 진행 중이다. 한편으로는 자신들도 굳건한 특허 장벽을 만들어 경쟁력으로 삼을 전략도 세웠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CAPA-X의 연구 개발을 12월에 마치고, 2023년부터 동물 임상 실험을 시작한다. 원료 물질의 효능을 검증하고 상품화를 도울 파트너는 이미 확보했다. 이어 우리나라 주요 병원의 교수, 연구진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실험에 임할 예정이다.
의약품 임상 실험은 결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파이프라인도 진행 중이어서 수익을 만들기 어렵다. 이에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CAPA-X를 먼저 화장품 원료로 활용해 수익을 거둘 계획을 세우면서도 내심 고민한다. 의약품의 혁신 원료로 CAPA-X를 제공하려 했지만, 사정상 그보다 앞서 화장품의 원료로 쓰게 됐다. 자칫 원료의약품 개발 플랫폼 기업이 아닌, 화장품 소재 기업이라는 오해를 사는 것을 꺼린다.
이 오해를 풀려면 CAPA-X 연구 개발을 서둘러 완료하고, 이것을 유효하게 알릴 ‘홍보 마케팅’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 전략에는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기술력은 물론 제품의 안전성, 기대 효과와 활용 범위가 모두 담겨야 한다. 이제 막 문을 연 의료·바이오 스타트업을 보는 업계의 시선을 의심이 아니라 놀라움, 확신으로 바꿀 것도 이 전략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고민, ‘인력 확보’와 ‘투자 유치’ 문제도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주요 과제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원료 의약품 납품 외에 설계와 생산, 브랜딩 등 의약품 개발의 모든 과정을 제공하는 플랫폼, 반도체 업계의 팹리스 기업을 꿈꾼다. 그러려면 새로운 전문가, 의약품 사업을 잘 이해하고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설계 가능한 인력을 초빙해야 한다. 이를 잘 알리고 영업할 인력도 마찬가지다.
투자금 유치도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고민이다. 2022년~2023년까지의 성장 계획을 현실로 이끌려면 투자금 유치는 필수다. 더군다나 의료·바이오 스타트업은 실험을 하거나 설비를 갖출 때 많은 자금을 써야 한다. 각종 인증과 검증, 임상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TIPS를 포함한 정부 지원 과제에 참여해 기술을 다듬으며 투자금 문제를 조금씩 풀 계획이다.
카파바이오사이언스는 자신의 원료의약품 개발 플랫폼이 이론상 모든 의약품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도 만들지 못한 것이 원료의약품 개발 플랫폼이기에 이 주장이 좀처럼 시장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인식과 싸우면서 플랫폼을 고도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카파바이오사이언스가 해결할 가장 큰 과제다.
스케일업코리아 팀은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역사와 계획, 성과를 들었다. 이어 비즈니스모델 검증과 진단, 수정 전문가 황현철 인사이터스 대표를 초빙해 그에게 카파바이오사이언스의 진단을 자문했다. 다음 기사에서 진단 결과와 해법을 살펴본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