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소식과 영상..."과하게 접하면 트라우마 위험있어"
[IT동아 정연호 기자]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해, SNS로 공유되는 사건 영상과 사진이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피해자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접하는 사람들도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이 없는 재난 소식도 계속 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재난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재난과 관련된 충격적인 소식과 현장 사진 등을 접하면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재난을 간접적으로 목격하는 재난피해 복구 자원봉사자, 구호전문가, 피해자 가족들도 재난 이후로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접하는 사람들도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한다.
큰 사건의 부정적인 영향이 계속되는 트라우마가 심해지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인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지게 된다. PTSD 환자는 본인이 겪은 사건에 공포감과 고통을 느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1개월 이상 트라우마가 지속되면 PTSD를 의심해야 한다.
이태원 사건 이후로 SNS에선 참사 피해자들의 사진과 영상이 빠르게 공유됐다. 사람들은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된 현장 사진을 접하게 됐다. 사건 목격자와 피해자가 당시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글을 작성한 걸 읽고서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태원 사건과 관련된 성명문을 통해서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이는 고인과 피해자 명예를 훼손할 수 있으며, 다수 국민에게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행동은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제해야 합니다”고 촉구했다.
단국대학교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의 의학적 진단 기준인 DSM-5에 따르면, 미디어의 반복적이고 간접적인 재난 소식으로도 PTSD가 생길 수 있다. 최근엔 ‘미디어 바이올런스(미디어 폭력)’라고, 미디어가 유발한 폭력이란 단어도 생겼다. 당연히 SNS를 통해 접하는 재난 사진과 영상도 사람들의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영상과 사진이 없는 뉴스를 접한다고 해서 PTSD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재난 소식 자체가 시청자의 불안을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전달되는 이태원 참사 소식을 계속 접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 임명호 교수는 “학회에서는 시간을 정해서 뉴스를 듣는 게 좋다고 권고한다. 개인마다 취약성이 다르기 때문에 뉴스를 반복해서 접하는 것을 괜찮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한국갈등관리연구소의 박성우 부대표도 재난에 대한 간접적인 노출이 과하면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박성우 부대표는 “학교 폭력의 경우에도, 폭력 피해자뿐아니라 폭력을 목격한 학생도 정신적 충격을 받고 트라우마가 생긴다. 재난 영상이나 뉴스 보도를 봐도 트라우마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부대표는 “트라우마의 주요 증상은 일상 생활을 하면서 편안하지 않고, 불안하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과 관련된 꿈을 계속 꾸는 것도 증상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재난이 발생했는데 웃으면서 살아도 되나?’, ‘이렇게 위험한 세상에 살아서 뭐 해?’와 같은 생각을 계속하는 것도 트라우마의 전조 현상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트라우마 반응엔 재난과 유사한 환경에서 심하게 놀라거나, 극심한 배고픔이나 두통 혹은 위장 장애를 겪는 것 등이 있다. 초기 치료를 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미디어 뉴스를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정신적인 건강에 좋지 않다는 미국 텍사스 공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팀은 성인 1100명을 대상으로 뉴스 소비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강박적인 뉴스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사건 소식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더 많은 뉴스를 소비하며, 뉴스 소비와 관련된 통제력을 잃고 이로 인해 다른 일상도 방해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자 중 16.5%는 강박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이 중 73.6%는 종종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고 답했다. 강박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 중 61% 신체적인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 이후의 정신적 불안과 스트레스, 가볍게 넘겨선 안 돼
전문가들은 재난사건의 목격자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난 이후로 웃고 일상을 즐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희생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잠자는 시간, 식단, 운동시간, 교류 등을 최대한 재난 이전의 일상과 동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난으로 인한 과도한 분노에 대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분명한 문제에 대해선 분노를 표출하는 게 필요하지만 과도한 분노와 상호비방,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한 분노는 위험하다.
임명호 교수는 “분노가 공포, 공황, 정신혼란 등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감정이 과하게 느껴진다면 주변 사람과 충분히 소통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서 “분노가 타깃을 찾게 되면서 차별이나 혐오로 이어지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노는 주로 약자를 탓하게 된다. 분노를 피해자들처럼 약자에게 투사해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유족들을 비난하는 것은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우 부대표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계속 얘기해야 한다. 사건에 대해 계속 말하는 건 상처를 헤집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해서 그 이야기가 무뎌지게 해야 한다. 보통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불안감을 고백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뭐가 힘드냐?’ 이런 식의 부정적인 반응이 오면 오히려 더 상처를 받게 된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재난 이후로 스트레스를 계속 받게 되면 심호흡, 복식호흡, 착지법, 나비 포옹법 네 가지 행동을 권고한다. 심호흡은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후~’하고 소리를 내면서 풍선 불 듯 천천히 숨을 내쉬는 행위이다. 가슴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집중하면서 숨을 내쉬면 된다. 복식호흡은 숨을 들이쉴 때 아랫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고, 숨을 내쉴 때 꺼지게 하는 것이다. 코로만 숨을 쉬면 된다.
착지법을 할 땐 발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발이 땅에 닿아 있는 느낌에 집중해야 한다.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쿵’ 내려놓고, 발뒤꿈치에 지긋이 힘을 주면서 단단한 바닥을 느끼는 것이다. 나비포옹법은 두 팔을 가슴 위에서 교차시킨 상태에서, 양쪽 팔뚝에 양손을 두고 나비가 날갯짓하듯 좌우를 번갈아 살짝살짝 10~15번 두드리는 것이다. 스트레스 극복이 어렵다면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통합심리지원단(1577-0199)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을 권한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