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도 안 되는 채굴용 그래픽 카드··· 혹해서 사면 '낭패'
[IT동아 남시현 기자] 지난 9월 15일, 암호화폐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의 검증 방식이 작업 증명에서 지분 증명으로 전환됐다. 작업 증명이란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인 블록을 생성하기 위해 해시값을 찾는 작업을 수행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과정을 뜻한다. 반면 지분 증명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지분율에 비례해 의사결정 권한을 주는 방식이다. 이더리움의 증명 방식 변환은 암호화폐는 물론 컴퓨터 업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작업 증명이 지분 증명으로 변경되면서 그래픽 카드를 활용해 암호화폐를 만들어내는 ‘채굴’의 채산성이 떨어졌고, 채굴에 쓰이지 않게 된 그래픽 카드가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채굴’ 그래픽 카드란 무엇인가?
작업 증명 방식의 채굴은 데스크톱 CPU와 그래픽 카드, 그리고 주문형 반도체인 ASIC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CPU는 초창기에 활용된 방식이지만 작업 증명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사장된 방식이고, 이후에는 병렬 연산 처리 기능이 뛰어난 그래픽 카드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ASIC 방식은 해시 계산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활용하는데, 개인이 아닌 반도체를 별도로 주문할 수 있을 정도 규모의 기업에서 활용한다. 따라서 개인부터 규모가 큰 작업장은 모두 그래픽 카드를 활용해 채굴을 해왔다.
작업장에서 그래픽 카드를 활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래픽 카드 여러 장을 하나의 데스크톱으로 구축한 다음, 암호화폐 획득을 위한 연산을 처리한다. 하지만 모든 작업자들이 투입된 금액과 시간 효율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그래픽 카드를 최대 성능으로 24시간 내내 돌리는 게 보통이며, 이 과정에서 특수한 개조나 내구성에 문제를 주더라도 효율을 더 끌어올리는 방식 등도 동원된다. 암호화폐 가치가 높았던 시절에는 그래픽 카드를 과부하로 쓰고, 고장나면 새로 구매하는 게 이득이라 일회용품처럼 사용됐었다.
하지만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가 더 이상 그래픽 카드를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됐고,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다른 암호화폐도 채산성이 크게 떨어지면서 사업장을 접는 작업자가 많아졌다. 적게는 수십 대에서 수천 대의 그래픽 카드가 시장에 풀리면서 그래픽 카드의 중고 가격은 폭락했고, 몇 년 간 그래픽 카드의 높은 가격에 허덕이던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중고 거래가 기본, 가격도 신품의 절반 이하
채굴에 사용된 그래픽 카드가 워낙 많고, 또 상태와 무관하게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다 보니 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장도 형성돼있다.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인 다나와에서는 중고 그래픽 카드를 구매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고, 채굴 여부나 브랜드까지도 묻지마 방식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도 새 제품과 비교하면 절반에 가깝고, 일반 개인이 사용하던 중고 그래픽 카드와 비교해도 10~30%까지도 더 저렴하다.
이전 세대 최상급 제품 중 하나인 엔비디아 RTX 3080 10GB 제품은 신제품 가격이 115~130만 원대에 형성돼있고, 중간 급 성능인 RTX 3060 Ti 8GB는 55~70만 원대다. 반면 채굴에 사용된 RTX 3080 10GB는 64만 원대, RTX 3060 Ti는 36만 5천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다나와가 아닌 채굴 용도로 쓰던 제품을 직거래로 구매한다면 이보다 10~20만원 더 저렴하다. 1비트코인이 8천만 원대를 달성했던 시기에 RTX 3080의 가격이 250만 원을 넘겼으니 거의 5배 이상 폭락한 셈이다. 운이 좋아 제대로 된 제품만 고를 수 있다면 이득이다.
문제는 암호화폐 채굴에 사용된 제품의 품질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채굴 용도로 사용된 제품일 경우 얼마동안 가동됐는지 짐작할 수 없다. 사용 시기가 상당하다면 내부에 열전도 물질인 서멀 페이스트나 서멀 패드를 교체해줘야 하고, 쿨링팬의 윤활유도 재도포해야 한다. 그런데 제품 브랜드마다 보증 조건이나 기간이 다 다르므로 섣불리 제품을 뜯어서 소모품을 교체할 수도 없다.
만약 제품의 소모품 교체 및 청소를 거쳤다고 해도 다가 아니다. 채굴용 그래픽 카드는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 내구성을 깎으면서도 성능을 더 발휘하는 펌웨어가 설치돼있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사용자가 직접 펌웨어를 순정으로 교체해야 한다. 게다가 제품에 따라서 디스플레이 기능이 막혀서 일부 단자가 동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시스템이 하드웨어를 인식하지 못해 드라이버가 정상적으로 설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모품을 교체하더라도 온도가 정상 범주를 넘어서 스스로 꺼지거나, 다이렉트X 11 게임은 되는데 12 게임은 안 되는 등 어떤 문제가 어떻게 발목을 잡을지 알 수 없다. 처음 몇 주에서 몇 달은 잘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장 날 수 있다.
그래도 구매하겠다면 핵심 따져봐야
이미 구매했거나, 비용적인 문제로 인해 구매할 예정이라면 제품 성능부터 불량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보증 여부를 확인하고, 보증이 없거나 끝난 제품이라면 분리 후 소모품을 교체한다. 소모품은 서멀 페이스트와 서멀 패드가 필요하며, 분해 중 제품이 파손될 수 있으므로 가능한 경우에만 분해한다. 그 다음 컴퓨터에 연결하고 장치 관리자를 실행해 그래픽 카드 및 디스플레이 연결 상태를 확인한다. 만약 느낌표가 떠있다면 그래픽 드라이버를 설치해보고,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바이오스 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바이오스 및 펌웨어는 ‘GPU-Z’를 실행해 확인하고, GPU-Z를 서비스하는 Techpowerup 홈페이지 내 ‘Video BIOS Collection’ 항목에서 제품 펌웨어를 검색해 상세 항목을 비교하고 순정 여부를 확인한다. 이때 바이오스를 찾을 수 없다면 판매자에게 문의하는 방법밖엔 없고, 확인된다면 ‘NVIDIA NVFlash’ 및 ‘AMDVBFlash’ 프로그램을 활용해 순정 펌웨어로 덮어 씌우면 된다. 참고로 바이오스 변조는 대다수 브랜드가 A/S를 거부하는데, 채굴용 제품을 선택할 때 이런 부분도 감안해야 한다.
펌웨어 자체에 문제가 없고, 또 소모품 교체까지 끝났으면 제품의 불량 여부를 판단한다. 제품의 불량 여부는 그래픽 카드에 부하를 걸어 성능 및 온도를 확인하는 유니진(Unigine)의 ‘슈퍼포지션’을 활용하자. 온도나 동작 상 문제가 있다면 테스트 중 시스템이 꺼지거나 블루스크린이 발생할 것이고, 정상적으로 테스트가 끝나면 제품의 온도가 나오는데, 정상 온도와 비교해 15도 내외의 차이인지 구분한다. 이후부터는 영상이나 렌더링 등 여러 작업을 실제로 활용하며 불량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단 기간 내에 문제가 없더라도 비 채굴 제품과 비교해 금방 고장 날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자.
채굴용 그래픽 카드는 쉽게 말해 침수 차량이다. 차량이 굴러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언제 어떻게 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본인이 정비 경험이 있고 문제점을 즉각 파악할 수 있다면 싼값에 사서 어떻게든 쓰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속수무책이다. 채굴 그래픽 카드도 본인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수리할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다. 그마저도 언제 고장 날지는 알 방법이 없다. 결국 채굴용 그래픽 카드는 저렴한 제품이 아니라, 반값이지만 초기 불량을 포함한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감당해야 하는 도박성 물건이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다면 구매를 피하고, 있다 하더라도 문제점을 감안하고 구매해야 한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